"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의 차이" / 요한복음 14:4-9 - 이관택 전도사

by 좋은만남 posted Jan 2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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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일 주현절후 제2주일 좋은만남교회 낮 예배 설교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의 차이

 

이관택

 

본문: 요한복음 14:4-9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도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이미 보았다." 8 빌립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어린이 동화에는 체셔 캣이라는 말재주가 좋고 꾀가 많은 고양이가 등장합니다.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찾다 갈림길에서 체셔 캣을 만나 길을 묻습니다. “고양이야 어떤 길로 가야하니?” 체셔 캣은 앨리스에게 오히려 되묻습니다. “지금 어딜 향해서 가는데?” 앨리스는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체셔 캣은 웃으면서 너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면 아무 데도 갈 수 없어라고 대답합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인생의 목적지를 정해놓고 잘 가고 계십니까? 답을 알고 싶은 열정이 없으면 질문이 희미해집니다. 그리고 질문할 의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답을 알려준다고 해도, 이미 답이 아닌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은 열정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내 삶의 문제들을 해결할 답들을 하나씩 하나씩 주고 계시는데, 그 답들이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나요? 하나님께서 주신 2013년의 새날을 의미심장하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 시간이 답답하고, 길 잃고 방황하는 것 같은 우리 삶에 하나의 표지판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이에 앞서 내가 가야할 목적지를 모르는 사람은 표지판을 아무리 봐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먼저 내 인생의 목적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바라옵기는 생명과 평화되시는 하나님의 포근한 꿈, 사랑의 꿈을 함께 꾸길 원하는 좋은만남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여러분 혹시 길을 잃어버려서 낭패를 경험한 적이 있으신가요?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테두리가 있습니다. 대부분 익숙한 길을 가고, 익숙한 삶의 공간을 살아가기 때문에 길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웬만해서는 하지 않습니다. 길을 잃어버리는 경험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정말 당황스럽고, 절망적인 일입니다. 제가 군대 가기 보름 전 친한 친구와 10일 동안 배낭과 텐트를 매구 전국 여기저기를 여행하였습니다. 당시가 2000년도였으니까, 네비게이션도, 스마트 폰도 없던 시대 아닙니까. 진짜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떠났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군대 가기 전의 마지막 자유를 누리는 여행이니까요. 그런데, 땅 끝 마을 해남의 한 시골에서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가도 가도 길이 나오지도 않았고, 표지판도 보이지 않고,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미 정해놓은 곳을 갈 시간은 한참을 지나 버렸고, 배는 고프고, 짐은 무겁고, 날은 어두워지고, 다 큰 장정 둘이 있었는데도,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길을 잃어버린 사람은 심정이 어떠합니까? 먼저 자책을 하게 됩니다. 내가 미리 세밀하게 준비하지 못해서 잘못된 길을 온 것이 아닐까! 왜 표지판을 진작에 확인하지 않았을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그 막막함, 그 당혹스럼과 공포의 시간 가운데 먼저는 자기 자신을, 그 다음엔 함께 동행한 친구를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하나님까지 원망하게 되지요. 천국같던 시간이 순식간의 지옥의 시간으로 변합니다. 그 날 우리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길을 찾지 못하고, 그 자리에 결국 텐트를 쳤습니다. 그 날 밤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바람 소리가 그렇게도 끔찍하리라곤 이전엔 미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길을 잃어버리는 경험, 오늘 날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이 이례적이어야 경험을 너무 일상적으로 자주하는 느낌입니다. “더 이상 길이 없다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요. 경제 위기, 정치위기, 도덕적 위기, 신앙의 위기, 가정의 위기. 이런 온갖 위기 투성이인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이유들을 언급합니다. 그 이유들을 찾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살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무력해 집니다.

정혜신 박사는 죽어가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보면서 심리적인 큰 문제를 발견하고, 와락 상담센터를 만들었습니다. 길을 잃은 이들에게 왜 길을 잃었는지, 길을 잃은 이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라,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길을 잃었다는 그 사실에, 그 절망에 우리가 함께 공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더 이상 사람들은 길을 잃었다는 당혹스러움과 절망감을 자체를 버텨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길을 잃은 경험을 많이 하니까, 너무 힘드니까 이성적인 이야기들은 이제 더 이상 귀에 안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한국을 비롯하여 미국, 독일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심리 분석과 치유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이유를 들먹거려도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옳다라고 이야기해도 옳긴 하지만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벌써 수많은 실패로 무기력해졌기 때문입니다. 요즘을 젊은이들에게 3포시대라고 하지요. 결혼 포기, 취업포기, 출산포기! 불확실성이 판치는 세상에서 모두가 길이라고 하지만 결국 길이 아니었다는 경험을 너무 많이 한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길이 없어진 것 같은 세상 아닙니까?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을 보면 길을 잃어버린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라는 대단한 사람을 쫒아다니지만, 지금 뭔가 잘 모르겠다고 예수님께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도마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도마는 열정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갈릴리 어부 출신으로 예수님께서 병든 나사로를 방문하려고 할 때, 다른 제자들이 주저하고 있는 그 때에,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우리가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했던 사람입니다. 아마도 베드로만큼이나 다혈질이었고, 의리파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벌써 몇 년 째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는데, 점점 기쁨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처음에는 즐거운 일도, 많이 있었는데, 그것도 어느새 익숙한 일상이 되어갔고, 뭔가 큰 일을 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은 것입니다. 행복하고, 좋은 일보다는, 점점 고통스럽고 천대받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점점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되어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이 길이 아닌가보다아마도 다른 제자들의 마음에도 이런 생각들이 엄습해 올 때, 특히나 의심이 많았던 도마는 예수님께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구원의 길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또 다른 제자 빌립도 거듭니다 예수님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십시오! 당신이 갈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십시오아마도 이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절박했을 것입니다. 지금 이들은 길을 잃은 듯 영적으로 방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자신이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아무 의미도 없게 느껴집니다. 십자가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에겐 구원의 증표요. 믿음이 없는 이에겐 그저 죽음의 형틀 아닙니까? 어느샌가 제자들에게 예수를 따르는 일이 그리 느껴진 것입니다. 구원의 길이 아니라, 절망의 길로 말입니다. 이들은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큰 소리로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못 견디겠습니다. 하나님을 보여주십시오. 우리의 갈 길을 보여주십시요!”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너희가 이미 충분히 보았다. 내 자신이 길이고, 생명이고, 진리이다. 나와 함께 하는 것이 이미 구원의 길이다. 나를 보는 것으로 너희는 하나님을 충분히 보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으로 가는 길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구원입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에게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선생님 평화로 가는 길을 어디에 있습니까? 간디는 이렇게 말합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평화가 곧 길입니다사실 이 유명한 말의 원조는 예수님이 오늘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구원의 길을 묻고 있는 이 때, 예수님 자신이 곧 구원이자 길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 너희 자신이 이미 구원의 길을 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길을 잃었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아니야 넌 지금 충분히 옳은 길, 맞는 길, 참 길을 가고 있어. 사람들이 너희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손가락질 하더냐? 잘못된 길을 간다고 이야기 하더냐? 아니야 나와 함께 있는 이 시간이 구원의 시간이야. 이 시간이 생명의 시간이야. 걱정하지 마라. 충분하다. 하나님이 지금 너희 안에 있어. 길 잃었다고 절망할 시간이 아니야. 우리는 지금 기쁜 찬송을 부를 때란 말이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명확하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이제 제자들에게 그런 예수님의 말씀이 명확하게 들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을 때, 내가 너희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라고 하신 그 말씀은 너무나 명확하게 들렸는데, 이제 예수님이 다시한번 나와 함께 하는 이 길이 바로 생명의 길, 진리의 길,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도, 잘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너희가 나와 오랫동안 지냈는데도 아직 날 알지 못하느냐?라고 안타까워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바로 그 길이라고 우리가 지금 말씀하고 계시시만 제자들은 길을 알려달라고 할 뿐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의 차이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 더스토리라는 신앙서적을 읽고 있습니다. 책은 창세기부터 시작되는 성서를 이야기식으로 쉽게 풀어나가는 특별할 것 없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 동안 읽었던 그 어떤 신앙서적보다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흔히 우리는 모세오경을 모세가 썼다고 여기지만 신학을 공부하면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수요성서대학을 통하여 이미 많이들 공유하고 있지요. 다양한 사람들의 신앙고백이 모여서 토라(모세오경)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이스라엘 나라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간 이들이 주말마다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고 있는 상황을 주요 내용으로 합니다. 한 노인이 앞에 나서고, 많은 사람들이 노예로서의 삶에 절망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큰 질문은 바로 이겁니까? 우리는 왜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가? 하나님은 지금 무엇을 하시는가? 이에 노인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대답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주셨다.” 그리고 주구장창 창세기 11절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하시는가? 그것이 바로 성서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을 때,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얼마나 고마울까요? 하지만 우리는 길을 아무리 알려줘도 그것을 깨닫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밤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줘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 의심하고, 또 다른 하나님을 찾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제자들과 동행하고 있건만 그 사실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길을 알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실상 길은 아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옳은 길이라고 믿을 때 그 길은 진짜 길이 됩니다. 지금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지금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는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믿음을 잃은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지금에 대해 확신이 없을 때, 하나님께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순간이 바로 길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의 차이는 너무나 명확합니다. 길을 아는 것은 막연하지만, 길을 걷는 것은 현실입니다. 오늘 겨울놀이로 북한산 둘레길을 걷게 됩니다. 혹시 환상이 있으신 분들게 미리 말씀을 드립니다. 현실은 별것 아니게 느껴집니다. 둘레길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길에 숨겨진 하나님의 신비를 발견한다면 그 길은 평생 기억에 남을 길이 될 것입니다. 제가 두 번이나 답사를 했기 때문에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함께 길을 걷는 은혜와 기쁨이 가득한 시간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또한 오늘은 용산참사 4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아직까지 진상조차 규명되지 못한 이 억울한 일을 기억해 주시고, 다시금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하여 걸으면서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시를 한편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처음 가는 길 - 도종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