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런 기도는 없다! 불편한 진실?
성서 : 누가복음 22,39-46
39 예수께서 나가시어,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그를 따라갔다. 40 그 곳에 이르러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하신 뒤에, 41 그들과 헤어져서, 돌을 던져서 닿을 만한 거리에 가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하셨다. 42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 43 [그 때에 천사가 하늘로부터 그에게 나타나서, 힘을 북돋우어 드렸다. 44 예수께서 고뇌에 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서 땅에 떨어졌다.]] 45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 제자들에게로 와서 보시니, 그들이 슬픔에 지쳐서 잠들어 있었다. 46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왜들 자고 있느냐?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서 기도하여라."
들어가며 : 언제나 크고 깊으신 사랑과 자비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참된 삶의 의미를 구하며 머리 숙여 찬양하는 좋은만남의 성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는 버스에서 있었던 일이랍니다. 믿거나 말거나이긴 합니다만, 한 버스가 사람이 많이 기다리던 버스정류장에 정차하면서 뒷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사람이 많으니 뒷문으로도 타라는 배려였겠죠. 사람들이 혼잡하게 차에 오르는 와중에 한 중학생이 차비 내는 기계에 지갑을 갖다 대면서 입으로 ‘삐익’하면서 타더랍니다. 그런데 그 삐익 소리가 얼마나 유치하고 가짜 티가 확 났던지 사람들이 다 놀랐고 주위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모두 그 학생을 바라보고 손발이 오글거리는 느낌을 참으면서 이제 기사 아저씨로부터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까 조마조마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 운전기사 아저씨가 한 마디 하셨습니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물론 그 학생은 얼굴이 빨개져서 냅다 줄행랑을 놓았고요.
요즘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기사 아저씨가 화를 버럭 내면서 그 중학생에게 꾸중을 하는 장면을 먼저 떠올렸을 텐데 이처럼 재치있고 재미있게 대꾸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지금 얼마나 각박하고 무정하게 사는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난 주에 아내와 필리핀 여행을 다녀왔는데 우리보다 가난하기는 하지만 훨씬 더 여유롭게 살아가는 필리핀 사람들을 보면서 왜 우리는 지금 이렇게 무엇인가에 쫓기듯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습니다. 부디 우리 좋은만남 가족 여러분들은 쫓기는 삶이 아니라 누리고 즐기는 여유 있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들어가서 : 신앙인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오늘 설교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서 이 부분에서 기도라고 대답해 주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자 신앙인의 호흡이라고들 말합니다. 기도는 그만큼 신앙생활에서 매우 큰 의미와 비중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참 기도를 안 하고 삽니다.
저도 목회를 시작하면서는 주일예배에 ‘주여’ 삼창 하면서 통성기도도 하고 교인들과 같이 유명하다는 기도원에 가서 막 찬양 부르고 통성기도도 뜨겁게 하고 했었습니다. 그랬었는데 요즘은 참 기도를 안 하고 뜨겁게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제가 기도를 안 하는 것이 다행스럽다고 생각할까요? 오늘은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기도가 호흡이라고 하지만 기도를 안 한다고 당장 쓰러져 죽지도 않습니다. 기도 열심히 밤새워 가면서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하는 모든 일이 다 술술 풀리고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중병이 들어 죽어가고 있을 때 목숨 걸고 기도한다고 해서 다 기적적인 병고침의 체험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십중팔구는 결국 죽게 됩니다. 그 반대로 기도를 별로 열심히 안 하거나 심지어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인생이 꼬이고 망가지고 끝장나지도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중병에서의 나음이라는 기적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지난 주간에 수능시험을 치렀습니다. 역시나 텔레비전을 보니 자녀들이 시험 잘 보게 해달라고 많은 어머니들이 교회와 성당, 사찰을 찾아 기도하고 절하면서 대학에 붙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 모습이 나오더군요. 그렇게 한다고 그 엄마들의 자녀들은 모두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까요? 조금 더 양보해서 기도하지 않는 부모들에 비해 진학률이 높을까요? 글쎄요? 왜 이러는 걸까요?
이 모습을 보면서 종교라는 것이 의지가 박약한 사람,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에게나 유효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하게 됩니다. 차라리 종교가 없는 이들은 기도하는 대신에 스스로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인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일을 그 시간에 할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외부로부터 끊임 없이 무엇인가를 받아야 하는 유치한 어린이 같은 신앙인들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도 하게 됩니다.
한국교회가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강조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지만 여전히 이 세상은 부조리가 횡행하고 상처 받고 아파하며 고통 속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고 자살을 선택하고 중병에 걸리고... 기도가 만병통치약이라면 왜 이런 부조리가 여전히 존재합니까? 그건 기도가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매일 같이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제 삶이 경제적으로 너무 힘듭니다. 그러니 제발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로또에 맞게 해주세요.’ 이 사람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얘야, 네 기도를 들었다. 그러니 먼저 로또를 사거라!’ 기도라는 것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정말 하나님 외에는 매달릴 곳이 없어 뜨겁고 절박하게 기도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죄송합니다만 그런 기도는 없습니다. 그런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도 없고, 무슨 시험지 채점하여 점수 매기듯이 하면서 응답하시는 그런 하나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도라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가 해야할 기도,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기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주기도문에도 나오는 ‘시험’은 유혹을 의미합니다. 그럼 어떤 시험, 어떤 유혹일까요? 예수님은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말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그 기도를 그 자신의 몸으로, 삶으로 그리고 죽음으로 직접 이루셨습니다. 이런 기도만이 있을 뿐입니다.
즉 자기 자신의 뜻을 하나님 뜻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고 자기의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유혹, 시험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는 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참된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고자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하는 기도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기도인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 붙고 떨어지는 것, 얻거나 잃는 것, 높아지거나 혹은 낮아지는 것, 옳거나 그릇되는 것, 아프거나 회복되는 것, 보다 솔직해진다면 그 모든 것이 우리가 하는 기도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우리 자신의 삶에 의해 결정되는 것, 즉 우리가 사는 기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기도가 시간 되면 성경책 앞에 펴놓고 무릎 꿇고 두손 모으고 고개 숙여 중얼거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헌신하는 삶, 그 말씀을 진리로 믿고 지켜내는 삶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무엇인가를 달라고 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명, 평화, 진리와 자유를 우리 삶에서 이루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사는데 만나게 되는 이런저런 비아냥과 핍박, 비난과 방해를 이겨낼 힘을 우리 안에 만드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최고로 치는 것은 무엇입니까? 솔직히 말하면 돈이죠! 돈이면 다 되고 돈이 하나님인 세상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조차도 돈을 많이 갖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돈을 더 달라고 하나님께 매일같이 조릅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을 향해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명과 평화, 진리와 자유, 참된 인생, 의미 있는 인생이라고 외치면서 맞선다면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람들은 비웃을 것이며 국가와 권력은 빨갱이라고 핍박할 것입니다. 그 자신 역시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며 지치고 힘들고 회의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내적인 확신을 갖고 살고자 분투하는 것이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는 우리의 바램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가 응답하는 우리 자신의 내면적 결단이자 삶의 방식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가며 : 사랑하는 좋은만남교회 교우 여러분, 이제부터는 나의 기도를 하지 말고 예수님의 기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달라고 하는 것을 주는 방식으로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내적 확신과 바른 삶의 방식을 갖게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기도는 삶으로 살아내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이것 주고 저것도 달라고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유치한 어린이의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스스로 결단하는 능동적인 결단으로 삶을 사는, 성숙한 성인의 신앙으로 기도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구하십시오. 삶에서 만나는 모든 고난과 풍파를 넉넉하게 이겨낼 힘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안에서 자라나게 될 줄로 확신합니다. 없는 기도 하지 말고 있는 기도 하십시오. 그런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무한한 용기와 희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