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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왜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을까?


성서 : 누가복음 1,30-35
30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마리아야, 그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31 보아라, 그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32 그는 위대하게 되고,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실 것이다. 33 그는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리고, 그의 나라는 무궁할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였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이 그대에게 임하시고, 더없이 높으신 분의 능력이 그대를 감싸 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들어가며 : 아기 예수님의 나심을 기다리며 하늘엔 영광, 땅엔 평화가 임하기를 구하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 은혜가 충만하게 함께 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집에서 아버지가 집안을 살피다가 못질 할 일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5살짜리 어린 아들에게 지하실에 가서 망치를 가져오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무섭다고 안 가려고 합니다. 이에 엄마가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무섭긴 뭐가 무섭니? 예수님께서 우리 집 어디에나 계신데.” 그래서 아이는 할 수 없이 망치를 가지러 지하실 입구까지 갔는데, 입구에서 멈칫하더니 지하실에 대고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예수님, 거기 계신 거 알아요. 망치 좀 갖다 주세요!”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사시기를 빕니다.

 

들어가서 : 강림절 두 번째 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이 언제일까요? 12월 25일은 아기 예수의 나심을 기념하는 날이지 그날이 예수님이 태어난 날은 아닙니다. 가장 밤이 긴 날이 지나고 빛,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에 성탄절을 정한 것입니다.
마태와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탄생이야기는 실제로 예수님의 탄생 때 있었던 일을 목격하고 적은 것이라기보다는 후에 기독교가 하나의 독립된 종교로 성장하면서 교주에 대한 신격화가 필요하였고 더 나중에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고 주요 종교로서 교리화 될 때 의미를 담아 고안된 일종의 신화, 설화입니다. 즉 후세대의 첨가, 추가, 내용수정이라고 봐야 합니다. 유력한 사람에 대해서 탄생의 이야기가 덧붙여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역사입니다. 예를 들어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는 알에서 났다고도 하고 고구려의 태조 고주몽도 신적인 존재들의 아들로, 제주 탐라국의 시조인 세 명은 삼성혈, 세 개의 구멍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은 다 후대에 의미를 담아 만들어진 이야기들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나심은 그 태어난 날을 기억하고 그 날을 계속 알려주면서 기억할만한 그런 것이 아니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기억해주지도 않는 그런 나심이었습니다. 그런데다 예수님의 죽음 역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저주 받은 죽음, 제국의 눈에 난 정치적인 이유의 죽음, 사형집행이었기에 그의 생일이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나심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존재도 아니고 죽음조차도 저주 받은 죽음이었는데 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 거룩한 분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예수님을 칭송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엄청난 고백을 하였을까요?
왜? 솔직히 별 볼 일 없는 예수라고 하는 갈릴리 혹은 나사렛, 아니 그 출생지조차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농부 혹은 목수 출신의 한 사람에 대해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구세주라는 황당하고 신성모독에 가까운 칭호를 기꺼이 붙여주고 또 탄생의 이야기까지 만들어냈을까요? 한번 상상을 해보세요.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들이라고 이미 고정되고 인정되고 규정된 시대를 살고 있어서 그런가보다 하지만 예수님을 옆에서 보고 따라다니면서 그 말하는 것도 직접 듣고 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순간까지 다 지켜보았을 그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황당한 주장을 기꺼이 할 수 있었는지 한 번 상상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이 예수라고 하는, 비록 그 출신이나 배경이 지극히 의심스럽기는 하나 가르침이 깊으신 예수님을 통해 전혀 새로운 가치관을 갖고 전혀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어 그들의 삶이 그동안 관습적으로 살아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 존경과 사랑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명이 좀 어렵네요. 한 마디로 예수님이 그들의 삶을 전혀 다른 것으로 뒤바꿔 놓으셨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유대인, 유대교인, 남자, 어른, 부자,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상이 아니면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세계관이 이방인이라도, 여자라도, 어린이라도, 가난하더라도, 투병 중이거나 장애인이라도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임으로 기꺼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세계관으로 뒤바뀐 것이고 천지개벽의 사건이 그들에게 벌어진 것이라는 말입니다.
유대교와 유대교의 권력자들에게 굴종하고 돈과 권력 앞에 무릎 꿇면서도 공동체에서 추방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삶은 이제 예수의 가르침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을 말씀으로 가르치셨고 죽음으로 그것을 증명해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이라는 고백의 사건을 따르는 자들에게 경험하게 하셨으니 사람들은 기꺼이 죽음을 각오하고 공동체에서 추방당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복음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런 틀에서 예수님의 출생과 공생애, 죽음을 바라볼 때 비로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기존의 틀과 관습과는 전혀 새로운 관점을 갖고 전혀 새로운 세계를 살아갈 가치관을 가질 것을 요청하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요즘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경제가 바닥을 쳤다, IMF 때보다도 더 힘들다고 하는 소리도 많이 들립니다. 경제만 어렵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피폐해졌습니다. 흉악한 사건들, 우울증에 시달리는 섬뜩한 뉴스들, 자살소식 등등 지금은 정말 힘든 시기인 것이 분명합니다. 비신자들만이 아니라 신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힘든 시기입니다. 우리 교우들 중에서도 힘겨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교우들에 관해 혹은 교회 밖의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엇인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참 마음이 아픕니다. 나는 전문상담가도 아니고 넉넉해서 경제적인 것들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몇 마디 말로 격려하는 것이 다입니다. 그렇다고 무슨 치유의 기적이나 뭐 그런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 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지만 예수님은 여러분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으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바로 우리 삶을 변화시키시려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신 것이고 그것을 깨달아 아는 것이 성탄절을 앞둔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려고 오셨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고백하면 우리 삶은 힘겨운 삶이 아니라 즐겁게 누리고 즐기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를 사로잡은 삶과 생각의 방식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자유를 누리는 가치관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마음이 바뀌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인간관계를 하면서 종종 화를 냅니다. 어느 누군가가 나를 화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돌아보십시오. 그 어느 누군가가 정말 작심하고 나를 엿 먹이고 약올리고 화나게 하려고 맘먹고 달려드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그저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그 말이 내 기분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입니다. 즉 화가 나는 것은 그 사람이 나를 화나게 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내가 그에게 화를 낸 것입니다. 이런 방식이 세상의 힘겨운 세계관과 가치관입니다.
세상 살기가 힘들다고요? 세상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세계관과 가치관에 젖어있을 때 우리는 힘겹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과 여건, 환경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고 또 예수님을 우리 주인으로 모시어 들인다면 우리 삶이 힘들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함이라고 고백하고 예수님의 탄생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모시어 들인다면 우리는 전혀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바뀌고 관점이 바뀌고 삶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전혀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됩니다. 세상이 나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내가 세상을 움직이게 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날, 굉장한 부자집 아버지가 가난한 사람들이 어찌 사는가를 보여주려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시골로 갔다. 둘이서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는 사람의 농장에서 2~3일을 보냈다. 돌아오면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다. "어때. 재미있었냐?" "아주 좋았어요, 아빠!!" "그래,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알았어?" "예, 아빠!!" 아버지가 묻기를! "그래, 무얼 배웠느냐?"
아들이 대답하기를, "우린 개가 한 마리뿐인데, 그 사람들은 네 마리더라고요. 우린 수영장이 마당에 있는데 그 사람들은 끝없는 개울이 쫙 놓여 있더라고요. 우리 정원에는 수입 전등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밤에 별이 총총이 빛을 내더라고요. 우리 뜰은 앞마당에만 있는데 그 사람들은 지평선처럼 끝이 없더라고요. 우리는 작은 땅 안에서 사는데 그 사람들은 들이 한이 없더라고요. 우린 하인이 우리를 도와주는데 그 사람들은 오히려 남을 도와주더라고요. 우린 음식을 사 먹는데 그 사람들은 직접 길러 먹더라고요. 우리 집은 담장으로 둘려 싸여 있는데 그 사람들은 친구들에게 싸여 있더라고요."
아버지는 망연자실 할 수밖에 그런데 아들이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아빠, 고마워,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가를 알게 해주어서"

 

나가며 : 관점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는 신세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틀과 관습에 갇혀 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관점으로 마음을 바꿀 때 우리는 무한한 자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의 순간입니다.
사랑하는 좋은만남 교우 여러분,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하고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구 내 팔자야, 뭐가 이렇게 되는 일이 없냐!’ 이렇게 절망과 좌절의 삶을 사는 우리 자신에게 개로운 길을 보여주시고 새로운 마음을 품을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받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이심을 믿으시면 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관점을 가져보십시오. 이 말씀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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