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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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누가복음 10:30-37

3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31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32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33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34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35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제목 : 종교인과 생활인


들어가며 : 변치 않는 사랑과 자비로 우리를 마주하시며 또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 앞에 나와 감사와 간구로 찬양하고 예배하는 좋은만남의 성도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한 주간 모두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주에는 함희옥 집사님이 모친상을 당하셔서 문상하고 왔습니다. 또 최호경 집사님 병원에 계시는데 교역자들이 함께 병문안 하고 보양식 좀 대접하고 왔습니다. 어제는 오랫동안 교회에 못 나오신 윤성근 성도님이 우리 집에 오셔서 반갑게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언니 병간호를 위해 베트남에 가신 오호숙 권사님은 금요일에 귀국하신다고 하십니다. 모두들 건강하게 여러분의 삶에서 충실하게 잘 살아나가시는 모습에 감사드리며 제가 응원합니다. 화이팅!

 

들어가서 : 1. 믿음 좋다는 사람들의 현실적 예화

1999, 인천 인현동에서는 실내공사 중이던 지하 노래방에서 불이 나 2층까지 화재가 발생하여 호프집, 정확하게 말해서 청소년들이 드나들 수 있는 콜라텍에서 57명의 청소년들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학교 축제를 마치고 딱히 갈 데가 없었던 학생들이 콜라텍에 모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특히 문제가 됐던 건 이 호프집 사장과 경찰 사이에 추악한 뒷거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호프집은 영업정지 처벌을 받는 중이었는데 사장은 정기적으로 경찰에 돈을 상납하였고 경찰이 이를 묵인해줘 영업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이 나 학생들이 대피하려고 하자 지배인이 학생들을 가로막고 물을 걸어 잠근 채 돈을 내라고 요구하였다고 합니다. 불이 확산되자 지배인은 자기만 아는 비상구로 탈출하였고 57명의 학생들은 목숨을 잃게 된 것입니다.

이 가게의 주인이었던 사람은 정성갑이라는 사람인데 이 일로 5년간 복역을 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의 책임을 물어 10개월간 독방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 때 하나님을 만났고 출소한 후에는 찬양사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노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이죠. 하나님이 저를 찬양사역자로 쓰기 위해서 그곳에 보내지 않았나 싶어요'라고 말했다고 2007년 기사는 전합니다. 이 내용을 들으신 여러분들의 마음에는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 궁금합니다.

하나님이 찬양사역자로 정성갑이라는 사람을 쓰시기 위해 감옥에 보냈는지는 몰라도 정말 그렇다면 꼭 57명의 청소년들이 희생되었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여전히 남습니다. 그리고 과연 정성갑이라는 사람의 처신이 하나님께 영광!’ 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찬양하게 하는지 아니면 뭔가 기분이 불편하게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는 한 번 죄 지은 사람이라고 해서 영원히 죄인의 낙인이 찍힌 채 어두운 곳에서 이를 갈면서 살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의 신앙이기 때문에 죄인도 새로운 삶을 살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는 생각합니다만 솔직히 입맛이 쓴 것이 사실입니다. 57명의 청소년들을 생각한다면 꼭 화려한 옷을 입고, 머리에 멋지게 기름 바르고, 기타를 들고 사람들 앞에 서서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르는 사역자가 되었어야 하는지, 그런 것 말고는 길이 없었는지... 솔직히 저도 제대로 판단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기사를 스크랩하여 인터넷에 올린 사람은 기독교인들을 향한 비아냥을 담아 올렸다는 것입니다.

 

2. 믿음이 최우선이라는 교회

이 일을 보면서 밀양이라는 영화의 끝부분이 생각났습니다. 영화 속에서 납치당하고 결국 살해당한 아이의 엄마는 정말 큰 용기를 내서 아이의 살해범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범인을 만나기 위해 교도소로 찾아갑니다. 그러나 범인은 웃으면서 이미 자신은 하나님께 용서 받았노라고 말하지요. 엄마는 혼란에 빠져버리고 자신이 상처 받고 자신이 아파했는데 자신은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이미 용서해주신 하나님에 대해 분노합니다. 정성갑씨에 대한 이야기나 밀양의 이야기나 종교인, 종교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아무 것도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새로운 사람을 변화시켜 주셨고 또 그렇게 쓰신다는데 감히! 오히려 하나님이 용서하신 것에 대해 분노하는 이 엄마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반항하고 벌을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세상이 교회의 논리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믿음, 교회가 최우선이라는 종교제일주의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평가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교회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어떤 조건에서도 정당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예배당 건축을 하고 기도원을 짓고 하면서 온갖 편법과 부정을 저지르면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 만사가 오케이였습니다. 교인을 쫓아내고 교회 돈을 멋대로 사용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다 그런 줄로 알고 넘어갔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기준을 가지고 교회와 종교,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괜찮다는 논리를 펴며 오늘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인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제시하신 길인지는 다시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3. 예수님의 가르침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우리가 매우 많이 들었지만 본래의 가르침과 다르게 순진한 동화처럼 이해하는 비유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합니다. 왜 제사장과 레위사람이 강도당한 사람을 외면하고 돌아섰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은 제사장과 레위사람이 사람들 많은 곳에서는 착한 종교인인 척하지만 아주 작은 손해와 불편도 거부하는 위선자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맞습니까? 그럴 수도 있으나 사실 본래 비유의 의도는 그것이 아닙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매우 훌륭한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손질하고 제사의식을 거행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거룩한 상태로 유지되어야 했습니다. 소위 부정 타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거룩한 일을 위하여 절대로 죽은 사람과 혹은 죽어가는 사람과 접촉해서는 안 됩니다. 제사 규정을 담은 레위기는 다양한 종류의 부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시체는 부정한 것인데 직계가족 외에 그 시체에 접촉한 자도 부정해집니다. 대제사장은 부모의 시체에조차 접촉하는 것도 허용이 안 됩니다. 부정해진 사람은 하나님 앞으로 나와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규정이 제사장과 레위사람의 행동을 제약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께 제사하는 일에 충성을 다하기 위하여 그 많고 까다로운 규정들을 철저히 지켰던, 종교적으로 매우 훌륭한 사람입니다. 제사를 집행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고 피해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그들은 가장 훌륭한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의 아버지라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는 이런 이들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측면으로 보면 발 뒷꿈치에 낀 때만도 못한, 아니 언제라도 밟아 죽여도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부정하고 무가치한 사마리아 사람을 이들과 비교하십니다. 그리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대안으로까지 제시하십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종교적으로는 어디 갖다 댈 것도 아니지만 너그럽고 자비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앞뒤 재지 않고 불쌍히 여기면서 도와주는 삶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그의 생활에 충실했고 그의 생활을 지배하는 인간적인 양심과 상식에 충실한 생활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적으로 완전했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아닌 생활적으로 완전했던 사마리아 사람을 모범으로 제시하면서 듣는 이들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3. 종교가 아닌 생활에 포커스, 출발점을 맞출 것

예수님은 혁명적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좋은 종교인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좋은 생활인이 되려고 애쓰라고, 저는 해석해봅니다. 종교인은 어떤 의미인지 다 아실 테고, 제가 생각하는 생활인이라는 개념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 싸고 있는 사회, 생활에 보편적인 상식과 양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종교의 중심인 교회와 교리를 삶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생활의 중심인 양심과 상식을 삶의 기준이자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고 예수님 또한 그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에서 많은 목사들이 종교, 신앙, 교회가 최우선이라고 오늘도 힘주어 설교할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종교 종교, 기독교 기독교만 부르짖으면서 우리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종교에만 전념하고 신앙에만 몰두하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는 정치 사회적인 문제에 관여하고 비판하고 때로는 운동에 참여하는 목사나 교인들을 가짜 목사, 가짜 교인이라고 비난하면서 종북좌파라는 굴레까지 씌웁니다. 저보고도 북한이 그렇게 좋으면 북한으로 가서 살라고 하는 기독교인이 있고 정치 이야기 하는 목사에게는 그러면 정치나 하지 뭐 하러 목사하고 있느냐고 비아냥거립니다. 그럼 그들에게 하나 묻고 싶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의 삶은 행복해졌는지요? 생활에서 만나는 수많은 세속적 부조리에 눈 감고 그저 주여 주여만 하면서 사는 삶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일까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더 악착같이 수구적인 정치인들 편들고 선거 때면 교회 안에서 앞장서서 선동하고 그러더군요!

요즘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가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데 그것이 정치적 성향의 문제일까요? 옳고 그름, 즉 정의의 문제일까요? 사실은 정치적으로 어떤 편을 선택할 것인가는 물론, 정의로운가 불의한가, 정의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을 고민하고 또 참여하는 것 모두가 종교의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즉 참된 종교인이 된다는 것은 교회라는 틀을 넘어 생활의 환경인 세상 한 가운데로 나와 참된 생활인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종교만 강조하는 이들의 삶 이율배반

제가 일하는 단체에 한 의사 운영위원이 있습니다.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유명한 사람입니다. 지난 번에 우리 단체 일로 북한 나진선봉지구에 다녀왔는데 그 내용을 글로 좀 써달라고 했더니 자기는 너무 바쁘다며 직접 와서 인터뷰를 해서 내가 정리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인터뷰 날짜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그것도 안 알려주었습니다. 마감 날짜는 다가오고 해서 일전 회의에서 그분이 보고했던 내용을 토대로 글을 써서 그것을 이메일로 보내주고, 잠깐만 시간 내서 보고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나보고 직접 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갔습니다. 한참 앉아 기다리다가 진료실로 들어갔는데도 정말 자기 전화할 꺼 다 하고 일 볼 것 다 보고 글 보면서 자기 자랑 같이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거만하게 충고하고... 아무튼 한 시간이 훨씬 넘게 그 진료실에 마주 앉아 있으면서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하는 생각만 하고 왔습니다. 정작 글은 10분도 채 안 걸렸구요. 그런데 이 분을 좋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거의 못 보았습니다. 거만하고 교만하고 남 얘기 안 듣고 자기 얘기만 하고 말도 함부로 하고 아무나 가르치려고 들고...

그런데 얼마 전에 이 분이 운영위원 안 한다고 사무실로 등기우편을 보내 왔습니다. 그래서 그 배경을 알아봤더니 내용이 이렇습니다. 그 병원이 기독교계 병원인데, 원목이 의사들과 상의해서 수술 전에 환자와 의사가 함께 기도하고 수술을 시작하는 규범을 정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환자가 신자가 아닐 경우에는 어떻게 기도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답니다. 그래서 비신자의 경우에는 기도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은 빼고 기도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답니다. 그랬는데 이 분이 그것을 뺀 것이 어떻게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냐고 강력하게 반대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전체 의견이 있어서 그냥 그렇게 하기로 하자 이분이 원목을 공격하면서 미국의 자유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았다느니, 원목이 나온 신학대가 다원주의의 영향을 받은 학교라느니 떠들어댔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원목이 우리 단체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시는 분이시라 그 불똥이 우리 단체에까지 튄 것입니다.

이 분은 종교성으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이라는 한 문장조차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완벽한 신앙인입니다. 그러나 그의 생활에서는 전혀 자비와 사랑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신앙인일지는 모르지만 생활인은 아닌 것입니다. 삶 어디에서도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참된 종교성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의 생활에서는 결코 예수의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작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향해 자기들만 아는 이기적인 존재들의 모임이라며 손가락질 하면서 비난하고 손가락질 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 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세상과는 등돌린 종교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깊은 산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한 가운데에 있고 또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세상의 한 가운데 사람들 틈 속으로 오셨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알 때에 우리는 종교가 아닌 생활에 우리 신앙과 삶의 포커스와 출발점을 맞추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종교인, 신앙인이 아니라 생활인이 되라고 요청하시는 것으로 저는 확신합니다. 사실 저도 남 욕할 때가 아닌 것임을 압니다. 저 역시도 여전히 종교인으로 남으려고 하는 직업적인 습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도 종교인, 신앙인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생활인, 종교와 신앙을 생활에서 체현하는 생활인이 되어야겠다고 두려운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

 

나가며 :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한다고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 멋대로 해놓고서 하나님께 드렸다, 하나님께 돌렸다고 말하는 것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더 종교적인 사람, 신앙적이라고 인정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건강한 삶을 사는 것, 건강한 생활인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고 또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입니다. 요즘은 조금만 신앙이 깊으면 목사 하라고 하고 목사 되라고 부추기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저는 목사가 되지 말고 생활인이 되세요, 이왕이면 치열하게 살아가는 전문 생활인이 되세요라고 말하겠습니다. 바른 신앙, 바른 종교관으로 무장한 전문 생활인이 된다면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가 속한 모든 공간과 시간, 환경이 행복해 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종교에만 몰두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생활에 몰두해보세요. 건강한 생활에 몰두하세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처럼 훌륭한 종교인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이웃의 불행을 보고 부조리한 세상을 보면서 작은 손이나마 내밀고 작은 목소리나마 낼 수 있는, 주변에 대해 가장 성실하고 충실하게 임하는 생활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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