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신명기 26,5-12
5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다음과 같이 아뢰십시오. '내 조상은 떠돌아다니면서 사는 아람 사람으로서 몇 안 되는 사람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몸붙여 살면서, 거기에서 번성하여, 크고 강대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6 그러자 이집트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강제노동을 시켰습니다. 7 그래서 우리가 주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우리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우리가 비참하게 사는 것과 고역에 시달리는 것과 억압에 짓눌려 있는 것을 보시고, 8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9 주님께서 우리를 이 곳으로 인도하셔서,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10 주님, 주님께서 내게 주신 땅의 첫 열매를 내가 여기에 가져 왔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그것을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 놓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 경배드리고, 11 레위 사람과, 당신들 가운데서 사는 외국 사람과 함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과 당신들의 집안에 주신 온갖 좋은 것들을 누리십시오. 12 세 해마다 십일조를 드리는 해가 되면, 당신들은 당신들의 모든 소출에서 열의 하나를 따로 떼어서, 그것을 레위 사람과 외국 사람과 고아와 과부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이 당신들이 사는 성 안에서 마음껏 먹게 하십시오.
제목 : 감사하긴 한데...
설교일 : 2013년 11월 3일
[좋은만남교회 추수감사주일 낮예배 설교]
들어가며 : 한 해 동안의 결실로 감사하기 위해 세우신 교회에 나와 예배하며 기뻐하는 사랑하는 좋은만남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남녀가 결혼식을 올리려고 하는데 막상 주례를 정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랑은 급히 한 목사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제가 이번에 결혼을 하게 되는데 주례 좀 서주십시오. 사례는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주례를 서드리고 말고요. 돈은 신부가 이쁜 만큼만 주십시오. 허허." 그러자 신랑은 목사님에게 단돈 1,000원만을 딸랑 손에 쥐어주고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목사님은 너무너무 황당했지만, 그래도 한 약속이기에 결혼식날에 주례를 서주러 갔습니다. 그리고 결혼식이 끝날 무렵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신랑이 신부 값어치를 천원으로 계산했을까 하고 궁금해졌다. 그래서 신부에게 다가가 면사포를 살짝 들쳐 올려 얼굴을 보고서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서 목사님은 신랑에게 뚜벅뚜벅 걸어가 말했다. "자 500원 거슬러 드릴게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소재의 유머이기는 합니다만 오늘은 감사주일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한번 웃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면서 오늘 말씀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들어가서 : 설교를 하는데 절기설교를 하는 게 가장 쉽기도 하면서 가장 어렵습니다. 특히 한 교회에 오래 있으면서 설교했던 설교자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절기설교는 가급적 다른 교역자들이 하기를 바라고 빼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오늘은 전도사님이 부산에 가 계시는 바람에 피하지 못하고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사실 저는 별로 감사할 줄도 모르고 감사를 받을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명절 때 성도님들께 선물을 받아도 왠지 부담스럽고 또 충분히 감사의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죄송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명절에 저에게 선물을 주시는 것을 그만두지는 마십시오. 아무튼 저에게는 감사라는 주제가 좀 어렵습니다. 그런 제가 추수감사절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게다가 추수감사주일이라는 것이 농업에 종사하던 옛날의 전통방식에 따라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인데 우리가 지금 농업에 종사하는 것도 아니고 또 옛날과 다르게 기계화된 농업으로 인해 많은 것을 수확하여 먹는 문제에 대해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시절을 살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어려운 점이 또하나 늘었습니다.
추수감사주일에는 감사헌금을 특별히 합니다. 최근 추수감사주일 설교 추세는 ‘추수감사주일 헌금을 한 해의 결실에 감사하며 그중에 10분의 1을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절이 부처님오신 날 벌어들이는 헌금으로 한 해를 살아가는데 사실 교회의 재정에도 추수감사주일에 들어오는 헌금의 매우 비중이 큽니다. 기억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 역시도 그렇게 설교를 했고 그렇게 헌금을 하시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내적으로 그런 설교에 부담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교회의 재정을 위해서 가장 큰 수입원인 추수감사주일 헌금을 독려해야 할 필요가 있긴 하지만 이미 매달 마다 십일조를 드리는 교우들에게 또 추수감사주일에 1년 수입의 10분의 1을 바치라고 하는 것이 좀 과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 사실입니다. 결국은 10의 2 이상을 교회가 요구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헌금 문제로 개신교회를 떠나서 가톨릭교회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추수감사주일 설교가 저에게는 특히 어려운 설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진지하게 제 자신에게 질문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 감사하기는 한데 무엇을 어떻게 감사하여야 할 것인지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 자신에게 솔직히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오늘 읽은 성서 본문은 첫 추수감사주일을 왜 지켜야 할지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해방의 사건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라는 신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이 처한 억압의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결단을 하게 되고 신의 부르심을 따라 이집트를 탈출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해방의 사건입니다. 그들이 그냥 자신들의 처지에 자포자기하면서 머물러 있었다면 그들은 추수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이 땀흘려 수확한 것은 이집트의 통치자들과 부자들이 다 가져가버렸을 테고 겨우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양만 배급받았겠지요.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탈출하기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였고 결국 해방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한 해를 결산하면서 지내는 오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해방에 감사하고 기뻐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죽어서 천국 갈 것이라고 믿고 주여 주여 하면서 사는 것이 신앙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줄기차게 여러분께 말씀드렸습니다. 신앙은 내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지금 여기 살아있는 동안에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신앙이란 ‘우리가 습관적으로 혹은 규범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삶의 모든 모순과 오류를 극복하고자 하는 해방의 욕구와 힘’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순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실 것입니다. 자본주의에서 돈 없어 생존의 위협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요, 성적인 문제이든 뭐든 소수자들이 배척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일반적인 것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종종 또라이라고 손가락질 당합니다. 국가권력이 안보와 질서유지의 논리로 국민들 혹은 개개인의 삶을 감시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당연한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 이양이라고 믿습니다. 대도시의 소비나 경제발전을 위해서 지방이나 경쟁력이 약한 지역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라고 믿습니다. 국가경제를 떠받치는 대기업이 정권과 결탁해서 독점, 독과점으로 성장했건 안했건 그 기업들이 국민들을 먹여 살리기 때문에 웬만한 부정과 탈법은 이해해야 한다고 양해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수도 없이 많은 당연한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것들이 모순이나 불의 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이 한 해를 살면서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요구와 강요들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노예처럼 굴복하고 굴종하면서 먹고 사는 문제에만 집착하고 제 몸뚱아리 하나 건사하는 일에만 급급하면서 살았다면 오늘 특별하게 감사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의 자유혼을 그 마음에 간직하고 모든 모순과 오류, 부정과 불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맞서며 마음 한 구석에서나마 저항하고 작은 외침을 외치며 살아온 한 해라면 여러분은 지금 그것으로 감사하고 그것으로 기뻐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당당뉴스 이필완 목사님 가족이 히말라야로 가족여행을 떠나서 고산 트래킹을 했습니다. 이 목사님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작은 아들이 아주 명물입니다. 쾌활하고 활발하고 자신감이 넘치고 개성이 강합니다. 그런데 히말라야 다녀온 사진을 보니 이 녀석이 사진마다 누워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고산지대에 산소가 희박해지고 기압이 낮아져서 고산병에 걸려 너무 괴로워했다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사람이라 해도 산소가 없고 기압이 맞지 않으면 별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가 산소와 기압에 감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결핍을 경험해본 사람은 감사할 줄 압니다.
노동자들이 부르는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동지여 그대가 보낸 오늘 하루가 어제 내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 동지여 그대가 보낸 오늘 하루가 내가 그토록 투쟁하고 싶었던 내일.’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아침에 일어나서 일출을 보며 오늘을 살아갑니다만 오늘을 정말 힙겹게 맞이한 사람은 오늘을 당연한 것이 아니라 축복이고 은혜라고 고백하고 감사할 줄 압니다. 우리가 삶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결핍과 시련과 위기가 사실은 우리가 감사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감사하면 할수록 우리의 시야는 열리고 우리 자신의 삶에 진지해지며 물론 풍부해집니다. 시련과 결핍 없이는 받은 복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기쁘면 기쁜 대로 힘겨우면 힘겨운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다 은혜요 은총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갖지 못한 것, 결핍으로 불평하고 자학할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들에 대해서도 돌아보고 감사할 줄 아는 것이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는 바른 신앙입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중에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하는 찬송이 있습니다. 그 복을 세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것이 복인 줄 모릅니다. 결핍과 시련에도 감사할 줄 알고 또 이미 받은 복을 세어 보면서 다시 한 번 감사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읽은 성서 본문은 첫 추수감사주일을 왜 지켜야 할지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실 항상 의문이 드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 그렇다고 우리 인간과는 질적으로 다른 하나님께 왜 인간은 감사의 예물을 드려야 할까? 하나님께 양과 소를 잡아 그것을 태워 제사를 드리는데 하나님이 제물이 타는 연기를 맡으시면서 ‘아, 기분 좋다, 아 맛있다, 아 신난다’하신다는 것은 동화나 신화에서나 나올 이야기이지 현대사회에서는 견디기 힘든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교회들이 추수감사의 예물을 더 많이 내야 한다고,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대 해드리는 일이라고 설교합니다. 사실 아무리 많은 돈을 갖다 바친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 돈을 무엇에 쓰겠습니까? 그러니까 교회 밖의 사람들은 그저 교회와 목사가 제 잇속 챙기려고 헌금강요한다고 생각하겠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이 인간의 제물이나 헌금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나님께 음식을 대접할 수도 없고 현찰을 드릴 수도 없고 그러니 마땅히 감사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요? 본문은 ‘레위 사람과 외국사람과 고아와 과부에게 나눠주고 성안에서 마음껏 먹게 하라’고 추수감사주일을 지내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레위사람은 성직자이지요! 제가 마음껏 먹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외국사람! 여러분은 외국사람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생각나나요? 본문에서는 부유한 제1세계에서 온 하얀 피부 외국인 관광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집 떠나 우리와 함께 사는 동남아쪽 외국인노동자 같은 외국인을 말합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외국인과 외국인노동자를 서로 다르게 볼뿐 아니라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혐오감을 점점 키워가고 있습니다. 참 큰 일입니다. 아무튼 그들도 마음껏 먹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아와 과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결국은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나누라는 것입니다.
성서는 이웃을 잘 대접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방법이라고 우리에게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오늘만큼은 우리의 이웃에게 특별히 더 잘 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호주머니에 있는 작은 것이라도 나누어 보고 또 이웃에게 따스한 미소라도 한번 지어주세요, 서양 사람들이 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에게도 미소 지으며 인사하는 것은 참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행이나 식당 카운터에 놓여있는 이웃돕기 저금통에 동전이라도 몇 개 넣어주십시오. 우리 좋은만남교회가 추수감사주일에 드린 헌금을 특별히 이웃을 위해 잘 쓸 수 있도록 고민하고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는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이고 싶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감사하고 여러분 자신에게 상을 주십시오. 지금까지 열심히 잘 살아왔고 또 좋은만남교회에서 건전하게 신앙생활하면서 끊임없이 이웃에 대해 관심 갖고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하려고, 마음으로 몸으로 물질로 헌신한 여러분 자신에게 감사하고 여러분에게 작은 상, 맛있는 저녁식사, 작은 소품을 선물해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온통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건강하고 건전하고 자비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겠지요. 그리고 우리가 올 한 해를 그렇게 잘 살아왔다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상을 주고 선물을 주고 싶어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오늘은 열 일 제쳐놓고 여러분 자신에게 상과 선물을 주면서 감사하다고 하는 날로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한번 감사해보세요. 자기 이름 넣어서 ‘OO야, 고마워! 수고했다!’
나가며 : 설교를 가끔 하다 보니 자꾸 길어집니다. 하긴 원래 좀 길었죠. 양해를 바랍니다. 설교는 설교자가 얼마나 말을 논리적으로 재미있게 잘 하는가 하는 것을 듣고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그것을 어떻게 내 삶에 실제로 살아내고 구현해 낼 것인가 하는 자세로 들어야 합니다. 제 설교가 정말 좋은 설교, 정말 살아있는 설교가 되려면 여러분이 그렇게 살아주시면 됩니다. 장황한 설교였으나 이중에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의 감동으로 다가온 부분은 깊이 새기시면서 그 한두 가지만이라도 삶에서 이루겠다는 결심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탁드리며 하나님의 귀하신 은총이 여러분에게 큰 감사로 다가오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