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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받아드린 자

요한 1511-13절

 

11.그 증언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과, 바로 이 생명은 그 아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12.그 아들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고 있지 않은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13.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이렇게 농활을 하러 인제, 방인웅 장로님 댁에 왔습니다. 원래 20대의 인제는 군부대가 있는 가서는 안 될 곳으로 쳐다도 보면 안 되는 곳으로 여겼다가, 30대의 인제는 이렇게 방인웅 장로님 댁이 있는 따뜻한 곳으로 변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살면서 인제에 와 본적이 없는데,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이상 올 수 있다는 것은 불과 2년 전만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제가 이곳에 와서 예배인도를 하고 있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이는 잠언 271절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1.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라.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하루 사이에 인간의 생사화복이 결정되고, 아니 11초에 따라 생사화복이 결정된다면, 지금 이 순간 여러분들은 어떠한 선택을 하겠습니까?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절대자의 손에 달린 것이거나 내가 전혀 관여할 수 없다면, 이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실 수 있겠습니까? 나의 생사화복을 내 온몸으로 받아드리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생과 복은 자연스럽고 아주 기쁘게 받아드릴 수 있겠지만, 사와 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저항하게 되어 있고, 이에 대한 원인이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은 것이 인간이라면 가질 수 있는 당연한 처사입니다. 그야 말로 발버둥을 칠 수 밖에 없지요. 우리는 이런 상황에 처한 인간을 연민과 공감을 통한 역지사지로 바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행하지 못하면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억울한 죽음 앞에서나 억울한 일에 처한 이들에게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세월호의 희생자들에게 인간이라면 이렇게 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안주철 시인의 인사를 끝까지 끌어 올려서라는 시처럼 말입니다.

 

열일곱이 열일곱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웁니다.

산 자의 눈물인지 죽은자의 눈물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오늘은 며칠입니까?

 

그 어디에 도착하지 못한다 해도

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눈을 감고 있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봄날.

아침 햇살 한 귀퉁이는 밀려온 파도에

접혀 있습니다.

 

저 깨달음 앞에서

나의 작은 위로는 어디에도 닿을 길이 없고

나의 작은 눈물도 떨어질 곳을 찾지 못합니다.

 

열일곱이 열일곱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감당하지 못하는 원망과

더 이상 보태서는 아니 되는 슬픔 곁에서

열일곱이 열일곱 앞에서

예의를 지켜가며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저렇게 서러운 인사는 없고

세상 그 어디에도 저렇게 깊은 인사는 없습니다.

 

저 인사를 안아주어야 합니다.

인사를 끝까지 끌어 올려서 안아주어야 합니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우리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방법이 일 것입니다. 우리 좋은만남교회 성도님들은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사시기를 그리고 사와 화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주변 이웃들이나 주변 교인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우리 좋은만남교회 성도님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11-12절입니다.

 

11.그 증언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과, 바로 이 생명은 그 아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12.그 아들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고 있지 않은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11절에서 영원한 생명은 보통 영생으로 말합니다. NIV에서는 이를 'eternal life'라고 해석하는데, 이는 불멸의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을 그 아들 예수에게 주었고, 그 아들에게 주었던 생명을 그 아들이 모시고 있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있다면, 그들 각자는 영생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을 헬라어로 말하면, ‘인데, 이는 신성의 본질이나 특징을 나타냅니다. 곧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모신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을 지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지닌다면,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생명을 지녔기에 그것들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뻔한 논리이지만, 생명을 함부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함부로하는 것과 진배없기 때문입니다. 반생명적인 처사들은 오늘 본문 12절에서 증언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을 혹은 하나님의 생명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존중을 지구전체로 확대시키면서 토마스 베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성스러운 품 안에서 안전한 것이 단지 인간 세계만이 아니라 지구전체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는 인생의 전 과정을 통해 이런 안전과 이런 현존을 필요로 한다. 이런 성스러움은 깊은 경이감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님의 생명을 나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안전과 현존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생명경시가 생명중시로 돌아서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생명을 소중이 여기는 것, 이것이 생명을 받아드린 자에 기본입니다.

이어서 13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3.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인 여러분에게 이 글을 씁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조은 시인의 따뜻한 흙에 일부분입니다.

 

언젠가 내게도

뿌리내리고 싶은 곳이 있었다

그 뿌리에서 꽃을 보려던 시절이 있었다

다시는 그 마음을 가질 수 없는

내 고통은 그곳에서

샘물처럼 올라온다

 

씨앗을 달고 그대로 살아보기로 한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생명이 자리한 그곳에 우리는 뿌리내리고 좀 더 강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살아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첫 사랑이 있었지요. 하나님과의 친밀하고 내밀하기까지 한 옛 기억들입니다. 이런 뜨거운 열정들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자책하게 되고 끊임없이 지금의 신세를 한탄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씨앗들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다시금 오늘 본문은 이 씨앗이 있다는 것을 알게하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13절을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메시지 성서는 오늘 본문 11-15절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증언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아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을 모신 사람은 생명을 가졌고, 그 아들을 부인하는 사람은 생명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 편지를 쓰는 목적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여러분이 의심의 그림자를 헤치고 나와, 영원한 생명, 허상이 아닌 실체를 소유하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고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뜻에 따라 마음껏 구하고, 또 그분께서 들어주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고 확신하고 구하면, 우리가 구한 것은 우리 것이나 다름없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는 우리 주변에 있는 생명의 실체를 보는 것입니다. 생명자체를 보기에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생명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들 모두가 하나님의 생명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당연히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단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우리 좋은만남교회 성도님들은 이번 주간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가 되어 생며을 일순위로 여기 한 주간이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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