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라는 신국(神國)" 로마서 14장 17-19절 / 남기평 전도사

by 좋은만남 posted Oct 2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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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바라는 신국(神國)

 

로마서 1417-19

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18.그리스도를 이렇게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19.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화평을 도모하는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을 씁시다.

 

시간이 언제 흘러갔는지 모르게 어느덧 10월 셋째 주가 되었습니다. 계산해 보니 2014년은 약 285일이 지나갔고 앞으로 80일 정도가 더 남았습니다. 약 두 달 반 정도가 남은 셈입니다. 시간을 느낀다는 것은 여러 모습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나 자신도 모르게 긴 팔과 두꺼운 외투를 꺼내어 입는 것을 볼 때에도, 주변 자연이 변해가는 모습이나, 달력이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에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격세지감을 느끼게도 합니다. 바로 아이들에 모습을 볼 때에 그렇지요. 규현이가 말하는 것이나 현수가 교회 안을 돌아다니는 것이나, 희수가 커가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시간이 그렇게도 빨리 가는구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지만, 정작 빨리 가야할 시간은 빠르게 가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꾸역꾸역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아직 이 정부가 2년 밖에 흐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년 동안, 주변의 문제들은 사적해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공무원 연금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칼을 들었고, 앞으로도 여러 공기업이나 여러 사업들을 민영화 시키기 위해 국민들의 간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만해도 벅찬데 국민들은 대거 사이버 망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텔레그램 가입자 수가 300만을 돌파했다라고 하고, 텔레그램 회사에서는 한글버전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합니다. 개인의 정보와 개인의 사생활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이 정부를 어떻게 말릴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요새 제가 자주 애용하고 있는 핸드폰을 통한 네이게이션, 건강보험 내역 등을 압수수색영장 하나면 아무렇지 않게 헌납하는 기업들의 윤리의식도 도가 지나칩니다. 무엇 하나 안전한 곳이 없고, 감시와 통제 속에 있다(세월호 유가족들의 사찰)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등골이 오싹해지기까지 합니다. 모르면 몰랐지만 아는 이상 세월이 정말 악합니다. 에베소서의 저자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516-17절에서 충고합니다.

 

16. 세월을 아끼십시오. 때가 악합니다.

17.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십시오.

 

이렇게 혼란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모를 때에는 더욱이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때가 악하기에 그렇습니다. 이 주변 상황이 우리를 혼란하게 만듭니다. 우리 좋은만남교회 성도님들은 이번 주간 악한 세월의 조류에 흔들리지 말고 지혜로운 자가 되어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서에서의 바울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 17-19절 말씀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먼저 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단지, 먹고 마시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조건인 것이지요. 우선,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NIV에서는 righteousness라고 말하는데 곧 정직, 공정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직해야 합니다. 두 번째 평화입니다. peace인데 평화, 화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화해해야 합니다. 세 번째 기쁨입니다. joy인데 즐거움, 행복, 환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행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이 모든 것들이 충족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충족된다면 먹고 마시는 일은 일도 아는 것입니다. 당연히 따라오는 기본 옵션인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주변은 자기만 먹고 마시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공정하고 정직하다면, 먹거리 문제, 원산지 문제, 유통 문제 등이 충분히 해결될 문제이고, 불법 사찰, 불법 선거, 비리 등이 애초에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화해한다면, 남북과 북남 그리고 영호남, 학벌 문제 등이 해소될 수 있으며, 또한 평화는 식탁을 부릅니다. 그리고 먹을 것을 나누게 하지요. 많이 드는 예가 평화의 한자 풀이이지 않습니까? 쌀미에 입구이죠. 입으로 밥을 먹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행복하다면 나만 행복한 것을 넘어서 서로 행복할 수 있는 방향 서로가 즐거울 수 있는 방향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직장생활, 학교생활 등이 행복하고 모든 것이 우리들에게 놀이가 될 수 있고 그곳은 놀이터가 됩니다. 이것이 로마서의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본문 17절에서 righteousnesspeacejoy 앞에는 matter of라는 단어들이 붙는데, 문제라고 번역합니다. 그래서 17절을 다시 거칠게 해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의 문제, 평화의 문제 그리고 기쁨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룩되고 이룩되지 않는 것은 이 세 가지의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matter를 동사를 표현하면 중요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 가지 문제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는 것을 해결해 주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은 먹고 마시는 것을 넘어서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좋은만남교회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살고 계십니까?

 

이어서 18절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8.그리스도를 이렇게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이를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18.이러한 정신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은 하느님을 기쁘게 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은 먼저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 그리스도처럼 살겠다고 다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의와 평화와 기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고, 제가 서두에서 말했듯이 에베소서에서 말한 주님의 뜻입니다. 그렇지만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인정받는 일입니다. NIV는 더 완곡한 표현을 써서 be approved를 써서 승인받다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하기 위한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는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여기 모인 우리 공동체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같이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서로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설명하고 공감하고 다같이 한걸음을 걸을 수 있는 때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이것의 첫걸음이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로 시작입니다. 이를 헨리 나우웬은 기도의 삶에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그들을 나의 일부로 삼는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그들의 아픔과 고통과 불안과 외로움과 혼돈과 두려움이 내 가장 깊은 내면에 스며들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기도란 곧 기도하는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병든 아이, 두려운 어머니, 고민하는 아버지, 불안한 십대, 성난 학생, 좌절한 파업 노동자가 되는 것이다. 기도하는 것은 동료 인간들과의 내적 일체감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그들도 성령의 치유하시는 능력을 입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가 형제자매들의 짐을 지고 그들의 상처를 당하며 죄의 아픔마저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우리의 기도는 그들의 기도가 되며 자비를 구하는 우리의 외침은 그들의 외침이 된다. 긍휼의 기도는 고통 받는 자들을 하나님 앞에 데려 온다. 단지 오래전 거기서 상처받은 자가 아니라 지금 여기 내 가장 깊은 내면에서 상처받는 자로 데려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회복된다.

 

현재 한국 교회 그리고 좋은만남교회가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러한 회복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19절을 말합니다.

 

19.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화평을 도모하는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을 씁시다.

 

지금 우리들에게 로마서의 바울은 이렇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각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하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우리 서로는 서로에게 화평을 도모할 수 있게 덕을 세울 수 있게 권고하고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mutural edification 서로가 한 단계 더 고양된다는 의미인데, 다시 말해서 서로가 한 단계 높은 경지 곧 성화에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이 열쇠만을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거나 지금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칼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에서 이 부분을 주석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유혹의 크기에서 약속의 크기 측정을 배울 수 있는 때가 와야 될 것인바, 이것은 곧 우리가 종교개혁의 토대 위에 서 있다고 하는 사실과 결부된 약속이다.

 

종교개혁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말로 된 성서를 읽게 되었고, 이렇게 성서를 누구나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는 누구나 사제가 될 수 있고,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개인의 기도와 청중 앞에서 설교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세시대에 갇혀있던 인간의 법 안에 있는 기독교를 해방하는 것입니다. 이 종교개혁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더 폭넓고 광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인간의 법에서 하나님을 탈출 시켜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은 더 큰 약속으로 우리에게 오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어서 바르트 말합니다.

 

우연적 이성보다 높은 하나님의 그 평화, 그 자유 안에 있는 평화이니, 그 자유는 또한 이웃의 자유인 것이다. 서로 덕을 세움 없이는 아무런 평화도 없다. 이제 한가운데로 너의 길을 헤지고 가라!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화와 기쁨이 있는 곳이고 이것이 충족되는 공간입니다. 이를 서로에게 적용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저 먼 곳에 있는게 아니고 바로 우리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바로 재능투쟁이 마무리 되는 곳에, 올바른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는 곳에, 삼척의 원전부지선정이 백지화되는 곳에, 강정이 전정으로 평화의 마을이 될 때, 남북-북남이 화해할 때 그리고 수많은 곳에 변혁의 역사가 일어날 때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날이 속히 오기를 우리는 기도하고 행동해야합니다. 바르의 말처럼 이제 한가운데로 우리의 길을 헤치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 좋은만남교회 성도님들과 그 주변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펼쳐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