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요한복음 13장 33~35절
33 어린 자녀들아, 아직 잠시 동안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러나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다. 내가 일찍이 유대 사람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나는 너희에게도 말하여 둔다. 34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제목 :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들어가며 : 생명의 희망을 잃은 모든 것들에게도 새 힘을 주시고 어둠을 뚫고 빛을 발견할 힘을 주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께서, 암울한 시절 암울한 세대를 지내면서 절망하는 이 땅의 모든 생명에게, 그리고 특별히 좋은만남의 성도들에게 사랑의 희망을 베푸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갑습니다. 한 달 만에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뵙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또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어떻게 실천했는지 나누고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특정한 개인에게 사랑을 실천한 것은 없는 것 같고, 기독교 및 일반사회 통일운동과 감리교회 개혁운동 등에서 많은 실무적 활동을 하였습니다. 특히 올해가 분단 70년, 대북 민간지원 20년이 되는 해인데 막혀있는 남북교류를 풀기위해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에서 대북지원20년행사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었는데 거기에서 팀장을 맡아 머리를 많이 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이런 여러 가지 활동을 하러 다니면서 제가 많이 지쳐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활동들을 과연 즐겁게 행복한 마음으로 했던가 생각해보니 최근에는 그저 끌려다녔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 반성과 실망,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도로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십시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들어가서 : 신앙의 출발은 신앙의 대상, 즉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는 말은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라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출애굽기에서 모세와 만나실 때 그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 나는 나’라고 설명하셨는데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는 방식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우리의 언어로 표현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 하나님과는 별개로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이 하나님이시라고 믿게 됩니다. 성서의 역사는 하나님을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이해했는가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우선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의 시대인 족장시대에는 하나님을 그저 작은 지역신 정도로 이해하였습니다. 그 신은 아직 선택한 백성도 없었는데 아브라함과 만나면서 그 족속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신은 스스로 신임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작은 존재였고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였습니다.
그랬던 하나님이 이집트에서는 히브리 백성의 하나님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가난하고 억눌린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탈출시키시려는 낮은 자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인지 그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노예근성에 젖어서 하나님을 불신하고 다시 노예생활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고 불평하였습니다.
그 신은 히브리 백성들과 함께 광야로 나오면서, 또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면서 전쟁의 신이 되셨습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하면서, 40년 동안 광야에 머물면서, 그리고 결국 가나안 땅에 사는 원주민들과 투쟁하면 하나님은 전쟁을 이기게 해주신 분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 시대는 우리 편이 아니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 때려 죽였습니다. 전쟁의 신을 모신 백성들은 피에 굶주렸습니다.
그 이후 다윗왕 시대에는 하나님이 명실상부한 이스라엘 백성과 팔레스틴 지역의 신이 되셨습니다. 다윗왕이 그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하나님도 덩달아 그 지역의 강자로 군림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는 권력과 부에 눈이 멀게 되었고 백성들은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탐욕에 빠져 다산의 신 바알숭배에 빠지게 되었지요.
그런데 남북왕국은 다 망하고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포로로 끌려가면서 새로운 세계, 더 넓은 세계를 보게 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세계의 창조자, 우주의 주인이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천지창조의 고백을 하게 되는데 그 뒤늦은 고백이 성서의 맨 처음, 천지창조의 고백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지요. 이 시절에 하나님은 너무 크신 분이라서 인간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고 그 섭리가 인간의 인식을 뛰어 넘는 존재라는 이해를 하게 되고 비로소 천국과 지옥이라는 개념도 나타나게 됩니다. 큰 세상을 보면서 그들의 하나님도 큰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각성하게 된 것입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지나면서 하나님은 이름도 없는 신에서 전쟁의 신으로 그리고 우주의 주인으로 이해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은 절대적인 존재로 그 백성이나 주위의 백성들에게 군림하고 멸망시키고 폭력으로 굴복시키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그런 신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도 그 신앙을 폭력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게 당연한 것이고 신앙적인 것이었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시대에 와서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게 됩니다.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세상이 온통 폭력적이었고 종교도 그런 폭력에 순응하고 부역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힘겨워했지만 강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그래서 모두가 강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 친근하고 사랑 넘치는 아버지, 집나갔다 돌아오는 아들을 버선발로 달려가서 맞이하는 아버지,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존재, 선택하신 백성들의 불신에 분노하시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워 하시고 마음 아파하시는 분으로 고백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고백이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의 부모님이시고 그 자녀들에게 사랑하라고 촉구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랑의 하나님 시대를 살고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문제가 있지요. 과연 지금이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인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라는 말입니다.
요즘 뉴스들을 보십니까? 우리 함 권사님은 드라마는 안 보셔도 뉴스는 꼭 빼놓지 않고 보신다고 하는데, 요즘 뉴스를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다들 비슷하시겠지만 분노와 절망을 주로 느끼시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남북문제가 특히 관심이 많은데 남이나 북이나 전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정치는 절망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정당해산 심판을 내렸는데 대법원은 그 심판을 뒤집는 판결을 했지요. 법이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에 의해 땅에 떨어져 짓밟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현실입니다.
총리지명자인 사람의 부동산투기 의혹이 제기되었는데, 정치인들, 고위공무원들, 소위 지도급인사라는 사람들 중에 부동산투기를 하지 않은 사람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청와대는 온갖 문건들을 만들어 내돌리면서 자기들끼리의 진흙탕 개싸움을 하고 있고, 야당은 야당대로 기득권을 놓지 못하고 여당과 함께 몰락하고 있고, 증세는 없다는데 국민 부담은 이래저래 늘어나고, 싱글인 것도 서러운데 싱글세까지 내라는 듯한 항목을 포함하여 엉터리 연말정산 때문에 서민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건강보험료 개편이 되겠지요.
노인의 빈곤률도 매우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 와중에 정부와 여당은 기업 관련 상속세금을 1,000억 원까지 깎아주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전국민적인 비극인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할 특별조사위원회는 아직 구성도 되지 않았는데 파행으로 치닫고 있으며, 단원고 교복을 입고 어묵을 먹는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며 ‘친구를 먹었다’고 하는 정신 나간 녀석들도 있습니다.
먹는다는 말이 나왔으니까, 정부는 한일 국교정상화 50년을 들먹이면서 일본에서도 안 먹는 후쿠시마산 수산물이 과학적 위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수입재개를 고려하고 있답니다.
토막살인, 사체유기를 위한 방화 등 온갖 흉흉한 강력범죄, 패륜범죄가 끊이지 않는데다가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아동폭행 사건도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고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장성들이 여군들을 성추행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방위산업체와 연루된 비리로 목숨을 끊는 별도 있었습니다.
직전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자기반성 한 줄 없는 회고록을 내고는 오히려 국제정치, 국내정치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가 엄청난 세금을 들여 집행한 4대강 사업으로 지금도 생태계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땅콩회항, 백화점 모녀 등 가진 자들의 갑질은 반성할 기미가 없고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갑질을 해댑니다.
제주도 해군기지 반대하는 강정마을에 대한 행정대집행, 굴뚝 위에 올라간 노동자들, 청년실업율 최악... 이쯤에서 중단하지 않으면 오늘 예배당에서 밤 새워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죽 희망이 없으면 사람들이 그깟 달콤한 맛이 나는 감자과자에 미쳐서 그거 사러 전국팔도를 돌아다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이민이 정답이라고들 합니다. 저도 요즘은 ‘그때 외국으로 나갔어야 해’ 하는 때늦은 후회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참으로 암담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런 절망적인 뉴스 속에서도 몇 개의 훈훈한 이야기들이 들립니다.
우선 크림빵 아빠 뺑소니범이 자수를 했는데 사망한 피해자 아버지가 가해자 뺑소니범을 ‘잘 선택했다’며 용서하고 위로하더라는 것입니다. 자수한 뺑소니범이 솔직하지 못하니까 화를 내는데 ‘진짜 잘못했으면 솔직해져라, 자수라는 것은 스스로 잘못을 깨우치는 것이다, 진솔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화를 냅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정말 저분은 진심으로 용서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부는 세월호 사고를 어떻게든 대충 덮으려고 난리인데 성남시장은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성남시청에 세월호 깃발을 달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모두가 권력에 굴복하고 권력 앞에 양심을 팔아먹은 것은 아니니 참으로 다행스럽습니다. 더구나 세월호가 조금씩 잊혀져 가는 것 같아 아쉬운 이 때에 정말 감사한 소식입니다.
의정부 아파트 화재 당시 지나가다가 화재현장에 뛰어 들어 주민 열 명의 목숨을 구해준 이승선이란 분이 있는데 이분께 어느 독지가가 3,000만원의 성금을 전하려고 하자 "그 돈이 저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쓰이기 바란다, 땀 흘려 일한 대가로 얻는 돈이 달콤하지, 시민으로서 같은 시민을 도왔다는 이유로 돈을 받을 수는 없다, 3000만원이었다는 사실도 몰랐지만 3억 원이더라도 받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로또 632회 2등 당첨자인 평범한 30대 직장인 여성 박 모씨는 실지급액은 3939만 6391원을 우리나라 불우한 이웃을 위하여 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온통 악으로 뒤덮인 것 같은 세상을 살지만 그래도 비록 작으나마, 비록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비록 힘없는 작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이런 따뜻한 사랑의 이야기들로부터 우리가 버틸 수 있는 힘을 얻고 있습니다. 저주받은 세상, 저주받을 인간들이라고 손가락질 하면서 망할 날이 다가온다고 절망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런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는 바로 그 새 계명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새계명, 이 사랑이야말로 이 암흑 같은 세상에 한 줄기 빛이 되고 결국은 악한 세력을 이겨내며 힘없이 당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을 위로하고 또 희망을 주며 홀로 내팽개진 존재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힘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
나가며 : 제가 참 아끼던 겨울 점퍼가 있습니다. 산지 10년 가까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지퍼가 고장이 나버리는 바람에 몇 년 안 입었습니다. 3-4만원인가 주고 산건데 지퍼를 고치려니 2만원을 달라고 해서 차마 수선을 못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올 겨울에 아무래도 입어야 하겠어서 세탁소를 갔더니 지퍼 슬라이더(저도 처음 알았습니다)만 교체하면 되는데 그게 없다고 하네요. 그래서 어제 아내와 시간 내서 동대문종합시장에 갔습니다. 주차할 곳이 없어서 헤매다가 마침 지퍼 가게가 있길래 그냥 찻길에 잠깐 세워놓고 아내가 얼른 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똑같은 슬라이더를 하나 공짜로 주셨답니다. 마침 그 옷을 입고 갔기에 얼른 슬라이더를 끼워봤는데 증상이 똑같은 겁니다. 그래서 ‘안 되겠다, 지퍼가 고장난 것 같으니 새로 하나 사가자’고 함께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원래 끼워져 있던 슬라이더와 지퍼 이빨을 보시더니 이게 원래 맞지 않는 건데 어떻게 여기에 달려 있었냐며 제짝을 찾아 끼워주시고 지퍼 윗부분에 막는 것(이것도 상지라고 처음 들었습니다)까지 다른 지퍼에서 빼서 끼워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돈 안 받는다고, 부담 갖지 말라고 하시면서 웃으면서 잘 가고 고장나면 또 오라고까지 인사를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제 새 옷을 산 것 같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새 옷을 산 것 같은 기분보다 더 좋은 것은 아직 이 세상이 살만하도록 만드는 훈훈한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요즘 매우 기분이 안 좋았고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불만이었고 쉽게 노여워하고 억지로 하는 것 같았고 매사가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까지 그 모양이니 기분이 정말 최악이었지요. 그런데 이런 작은 친절과 배려, 이웃에 대한 사랑이 저를 크게 위로하였습니다. 이게 사랑이지요, 이게 새계명이지요! 새계명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신학적으로 설명하고 주석하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이 계명을 발견하고 그 계명을 살아낸다면 그것이 더 크고 귀한 일일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 믿는다, 예수님 따른다, 예수님 닮는다, 심지어 예수님 같이 산다고들 합니다. 그것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사랑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비록 작을지언정 분명 이 암울한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며 그들과 함께 하고 연대하는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이제부터 사랑을 살아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됨을 스스로 증명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부탁하며 축원합니다. 사랑이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