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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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 53~12

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 5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7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이다. 8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9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12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

 

제목 : 복된 인생을 살려면

 

들어가며 : 도처에서 삶의 무게와 권력의 압제로 신음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 암담한 시절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복을 빌어주며 희망의 꿈을 꾸어 보는 이 명절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도록 임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힘들고 지치고 절망할 때 즈음이면 민족의 큰 명절을 맞아 가족을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고 음식을 나누면서 격려하는 가운데 새로운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연초와 가을에 명절을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것도 큰 감사의 조건이자 은혜의 증거라고 믿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과 가정에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복된 명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들어가서 : 지난 한 주간은 참 암담한 뉴스가 많았습니다. 소두증을 유발하는 지카바이러스, 유학파 목사의 중학생 딸 시신 11개월 유기, 터널 내에서 트레일러 화재사고, 마약에 취해서 보복운전, 인천공항 폭파 협박범, 국제공항의 보안이 허술해 불법입국자 증가, 군 사격장에서의 실화와 부산 고층아파트 화재 등 각종 화재, 대통령 공약정책인 누리과정 파행으로 인한 보육대란, 공부 안한다고 자식을 두들겨 패는 학원 원장 엄마의 충격영상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목사이자 신학교 교수의 딸 폭행치사 사건일 것입니다. 신학교에서는 존경받는 교수였던 것 같은데 그 내면에는 이런 추악함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 사건을 보면서 느낀 것이,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할 수 없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목사교 교수고 하는 선량해 보이는 위치의 사람이라도 그 내면에는 역시 원죄와 같은 죄성이 있고 그 죄성에 길들여지면 악에 대해 무감각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과신하지 말고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악에 대한 거부감과 선에 대한 올바른 방향감각을 지니고 있는지 자문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 사는 실천과 노력에서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삶으로 이어지는 신앙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더욱 정진하도록 서로 약속합시다!

설명절에는 복을 빌어주는 좋은 관습이 있지요. 한 해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복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이라는 게 과연 뭘까요? 아마도 요행이나 뜻밖의 행운을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 행복하다!’ 하고 말하고 느끼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요즘 한국사회에서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것은 거의 대부분 물질과 연관돼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안타깝습니다. ‘올해는 공부 잘 해서 수능시험 잘 보는 게 행복입니다!’ 그래요, 수능 잘 봐서 원하는 대학에 가면 좋지요. 그런데 그 원하는 대학이라는 것이 뭡니까? 소위 말하는 대기업에 취직 잘 되는 명문대학, 명문과에 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잘 먹고 잘 살고 물질적으로 누리면서 사는 것이 행복이 돼버렸다는 것입니다. 사업성공, 승진, 인기 등등이 거의 대부분 물질적 풍요라는 문제에 천착돼 있습니다.

그런 행복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오늘도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행복을 얻기 위한 과정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불행한 과정을 거쳐 얻은 행복이 과연 행복일까, 현재를 불행하게 희생해서 얻게 될 미래의 행복은 정말 행복일까, 이런 생각조차 해보지 못하고 그냥 행복을 얻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소위 산상수훈이라는 부흥회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복, 행복의 기준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복이란 것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한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 의를 위해 박해를 받은 사람, 예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비난을 받는 사람에게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가 추구하고자 모든 것을 희생해마지 않는 그런 것들과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것들, 우리는 불행이라고 너무나 자신만만하게 지적하는 삶이 복, 행복이라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이걸 어쩌나? 행복해지려고 예수 믿고 교회에 나왔는데 오히려 불행해지라고 하니? 예수님을 계속 믿어야 해, 말아야 해?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 안 믿고 이런 행복 거부한다고 해서 진짜 여러분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다음 주부터 교회에 나오지 마시고 예수님 욕하고 다니셔도 됩니다. 꿩이 자기를 잡으러 오는 사냥꾼을 피해서 어떻게 한다고 하지요? , 자기 머리만 풀섶에 쳐박고 숨었다고 한답니다. 우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해서 정말 하늘이 가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거부하고 거절하고 반대하고 증오해도 바뀔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야말로 진짜 행복이고 영원한 행복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제시하는 행복에는 매우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방향은 오직 자기에게만 향해 있습니다. 내가 돈 벌어서, 내가 좋은 대학 나와서, 내가 땅 값 비싼 동네에 살고 좋은 차를 사서,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내 주식 가격이 올라서, 내가 멋진 배우자를 만나서, 남이 갖지 못한 희귀하고 비싼 것을 내가 소유하고 있어서, 내 자식이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잘 살아서 등등등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목표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행복은 다릅니다. 팔복이라고 하는 그 항목을 조목조목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사회적 관계 안에서만 설명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부유한 사람도 있고 누군가를 가난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지요, 부자라는 개념과는 좀 다르게 가난한다는 것은 상대성이라는 것이 더욱 도드라져 소위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의미를 갖는 개념이고 또 부자와는 다르게 가난한 사람은 사회적인 의미에서 거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슬퍼하는 사람이 있으면 슬프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온유하다는 것도 개인적인 성품을 말하는 것 같지만 그 온유함이 드러나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의롭다는 것은 개인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사회, 관계를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는 개념입니다. 자비도 역시 자비의 대상이 있어야 가능하고, 평화를 이루는 사람,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것 역시 인간관계와 사회적 관계 안에서 발현되거나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복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고 개인적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사회라는 틀 안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나의 행복은 결코 타인의 행복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나라의 행복도, 만족도가 높지요. 예를 들어 요즘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아이슬란드(2)나 스위스(1), 덴마크(3), 노르웨이(4) 같이 전체의 행복을 위해 복지정책에 많은 투자를 하는 나라가 그렇습니다. 반면 행복이 개인의 노력과 의지에 달렸다고 규정하는 나라, 그래서 개인이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에 몰두하는 나라는 어떻습니까? 2015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158개국 중에 47위라고 합니다. 썩 나쁘지는 않아 보이지요? 그러나 한국사람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얼마나 열심히 과도하게 노동하고 있는가를 따져본다면 저 순위는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년 OECD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자영업자와 가족종사자를 포함한 전체 취업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2124시간으로 OECD 32개국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깁니다. 그런데 행복지수 순위는 고작 47위입니다! 여당 대표라는 사람은 복지정책을 망국병이라며 비난하고 포퓰리즘이라고 호도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국가가 뭘 해줄 것을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 행복을 찾으라, 자신의 행복을 타인에게 의지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것이지요. 그런 국민들은 나 하나 행복하게 하는 것도 벅찹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만 돌아보고 자기 몸뚱아리 하나 건사하고 자기 가족들만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을 돌아보고 이웃과 더불어 함께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때 그것이 바로 참된 복이고 행복한 삶이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요즘 아기들이 많이 자라서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걷고 뛰고 소리 지르고 할 때가 되어 예배시간이 많이 소란스럽지요. 일주일에 딱 한 번 와서 예배하고 설교 듣는데 그 시간을 방해 받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한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지요. 유아기 어린이가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고 해야지 멍하게 앉아 있는다면?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거지요. 또 휠체어 신세나 지고 있다거나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무엇보다도 그 아이의 부모는 불행하겠지요. 그 부모가 불행하면 우리 교우들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아이들이 건강하게 뛰노는 모습을 볼 때 부모는 물론 모든 교우들도 마음이 뿌듯하고 행복해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예배 시간에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그냥 가만히 놔두고 바라만 보자는 말은 아닙니다~

지난달에 장인어르신이 호텔뷔페 식사권이 있다고 두 딸과 사위들을 불러서 점심을 한턱 거하게 사주셨습니다. 서울광장 앞의 플라자호텔이었으니 식사비가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가족끼리의 조촐한 자리였지만 솔직히 저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점심 한 끼로 몇 만원을 낸다는 것도 그랬지만 인권위 옥상 전광판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창밖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웃의 불행을 마주하면 가족과 밥 한 끼 맛나게 먹으려는 작은 행복도 불편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내가 가족과 행복하게 맘 편하게 밥 한 끼 먹기 위해서는 어서 저 노동자들의 요구가 해결되어 고공농성을 풀고 아래로 내려와야 하겠지요! 우리 아이의 중학교 졸업을 기뻐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올해에 졸업을 해야 했음에도 졸업하지 못한 안산 단원고의 세월호 희생자들의 부모가 여전히 마음에 걸립니다. 내가 내 아들의 졸업식을 마음껏 축하하고 기뻐하려면 어서 속히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의 요구대로 진상규명이 되어야 하겠지요! 과연 고통 받는 이들을 앞에 놓고도 우리 행복에 겨울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죠!


나가며 :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띠거나 코를 훌쩍이면 남이 볼까 슬쩍 눈물을 닦아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우리 행복이 이웃, 타인의 행복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고 살았던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우리의 행복은 필연적으로 이웃의 행복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이 사실을 잊고 그냥 나 하나, 우리 가족만 행복하면 다 된다는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현실을 보고 진짜 행복을 찾으라고 촉구하십니다. 복의 결과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을 보거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더불어 이웃을 돌아볼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행복을 이미 경험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함께 하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도 함께 사는 것입니다. 요즘 교회에 실망했다고 텔레비전이다 인터넷이다로 보면서 예배드렸다고 하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는 함께 할 때 예배가 되는 것이지요. 특별히 가족과 만나서 함께 하는 이 명절에 가족과의 행복을 누리시기 바라며 이웃의 행복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는 권면도 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하는 신앙으로 복된 인생을 사시게 될 교우 여러분 모두와 가정에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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