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고' | 사사기 9,8-15 : 방현섭 목사

by 좋은만남 posted Aug 2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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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사기 9,8-15
8 하루는 나무들이 기름을 부어 자기들의 왕을 세우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들은 올리브 나무에게 가서 말하였습니다. '네가 우리의 왕이 되어라.' 9 그러나 올리브 나무는 그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 내는 일을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10 그래서 나무들은 무화과나무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와서 우리의 왕이 되어라.' 11 그러나 무화과나무도 그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어찌 달고 맛있는 과일맺기를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12 그래서 나무들은 포도나무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와서 우리의 왕이 되어라.' 13 그러나 포도나무도 그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과 사람을 즐겁게 하는 포도주 내는 일을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14 그래서 모든 나무들은 가시나무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와서 우리의 왕이 되어라.' 15 그러자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너희가 정말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너희의 왕으로 삼으려느냐? 그렇다면, 와서 나의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가시덤불에서 불이 뿜어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살라 버릴 것이다.'

제목 : 두 눈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고
설교일 : 2016년 4월 3일
[좋은만남교회 부활절 제2주일 낮예배 설교]

들어가며 : 절망 밖에는 보이지 않는 인생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삶과 영혼의 부활의 약속을 받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과 자비가 충만하게 함께 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이번에 담임목사로 부임한 방현섭 목사입니다. 부족한 저를 청빙해주시고 담임목사로 섬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자이기는 하나 매우 방탕하게 살았던 총알 택시 운전사와 목사님이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이 총알택시 운전사보다 훨씬 칭찬을 들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총알택시 운전사를 더 칭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억울했던 목사님이 그 이유를 여쭤보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늘 사람들을 졸게 했지만 이 택시기사는 항상 사람들로하여금 기도하게 했느니라!” 제가 그래서 설교보다 운전을 더 좋아하나봅니다. 개떡 같은 말주변이나마 찰떡같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마음에 받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들어가서 : 국회의원 선거가 열흘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후보자 공보물도 못 받았고 투표소가 어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후보들의 정책은 들어본 적도 없고 비박, 친박, 진박, 쪽박... 뭐 이런 말만 들었습니다. 참으로 암담합니다. 국민은 없고 그저 최고존엄만 보입니다. 
우리교회는 4월을 정의로운 선택의 달로 정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를 정의롭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정의롭게 하자니까 무슨 독수리 5형제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들지만, 우리 신자들에게 정의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죽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선거를 해도? 무엇을 위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서 이번 선거에 우리가 어떤 사람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헌신할 것인가를 깨닫고자 합니다.
아비멜렉이라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 있었습니다. 그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인간이었고 자기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기꺼이 자기 형제 70명을 한 장소에서 죽일 수 있는 그런 인간이었습니다. 세겜 성읍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우고 섬겼습니다. 그러자 70명의 형제들이 살해 당하는 현장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요담이 세겜 성읍 사람들에게 비유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바로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이 이야기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나무들이 올리브와 무화과, 포도나무에게 찾아가 왕이 되어달라고 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내가 하는 이 일이 중요한데, 이걸 그만 두고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고 대꾸합니다. 성실하게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맡은 일을 하면서 타인을 섬기고 봉사하는 이들에게는 왕이 되는 것,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날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날뛴다는 말의 느낌이 확 와 닿습니다. 뭔가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고 들떠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참견하고 나대는 사람을 날뛴다고 하진요.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날뛸 수가 없습니다. 
국회라는 곳이 어떤 곳입니까? 다양한 정당의 의원들이 한데 모여서 서로 대화하고 타협하고 토론해서 국민들에게 가장 좋은 법안을 만들어 내는 곳이 바로 국회입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라는 어떤 사람들, 특히 자기 당의 당리당략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은 여기저기 미친 사람처럼 헛소리를 해대면서 싸우고 증오심을 키우고 매도하고 선동하는 일로 시간을 보냅니다. 우리는 지난 19대 국회의원들 중에 국민을 위하는 일은 하지 않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자기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상한 법안을 만드는 일에만 날뛰는 국회의원들을 똑똑히 봤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심판해야 하는 역사적 신앙적 사명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계의 역사는 항상 묵묵히 자기의 일을 하면서 이웃을 섬기고 봉사하는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변혁했고 새로워 졌음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권력을 추구하고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게 수많은 사람들을 전쟁으로 밀어 넣거나 독재의 칼날을 휘두르는 것이었습니다. 말로는 섬기고 봉사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결국 날뛰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성서는 이미 수천 년 전에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반면 유익을 주는 나무들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섬기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난 국회에서는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필리버스터라는 특별한 일을 보았습니다.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사람들은 열 몇 시간씩 자기 몸 사리지 않으면서 다수당의 횡포에 저항하였고 국민의 이익을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다수당은 자신들이 만든 국회선진화법이 이제 자신들에게 방해가 되는 듯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 법을 매도하고 페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두 눈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어서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지를 제대로 구별해 내야 합니다. 
올리브, 포도, 무화과 나무아는 반대로 무익하기 짝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가시로 다른 나무를 상처주고 아프게 하는 나무는, 국어를 안 배워서 제 주제를 모르고, 산수를 안 배워서 분수도 모르고, 영어를 안 배워서 영문도 모른 채, 제가 왕이 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그늘 아래로 와서 피하고 숨으라고 합니다. 세상에 가시나무에 무슨 그늘이 있습니까? 가시나무 그늘 아래로 가봤자 가시에 찔리고 상처를 받게 될 뿐입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지요. 자기의 휘하에 들어오지 않으면 불을 뿜어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불살라 버리겠다고까지 협박을 합니다. 레바논의 백향목 역시 올리브나 포도나무처럼 유익하고 고급스러운 나무입니다. 자신의 주제를 생각하지 않고 공포를 조성하며 협박을 일삼으면서 왕이 되고자 하는 가시나무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요즘 선거운동을 하면서 돌아다니는 어떤 당의 지도자들을 보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안보, 안보입니다. 지금 국가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으니 자기들에게 표를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안전해질 것이라고 말이지요. 네, 협박입니다. 자기들의 그늘 아래로 들어오지 않으면 불이 나서 다 타버리게 될 것이라고, 공포의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정권 하에서 온갖 국방비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수천억 원짜리 배에 70년대의 장비를 달고, 총알을 막아내지 못하는 방탄조끼를 비싼 값에 사들이고, 60만 장병을 위해서는 국방비를 쥐꼬리만큼 쓰면서 장교들 골프장 짓고 유지하는 데는 세금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안보를 걱정하면서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남북 간의 긴장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대화창구인 개성공단도 위기감을 조성하더니 폐쇄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평화가 아니라 더욱 심각한 위기입니다. 
헝거게임이라는 시리즈 영화를 보셨습니까? 이 영화가 처음에는 그저 하나의 액션영화인줄 알고 봤습니다. 그런데 후반으로 오면서 정치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로 바뀝니다. 독재집단에 맞서 싸우는 반군들, 그러나 독재집단이나 반군이나 주인공 여성을 상징적 아이돌, 아이콘으로 만들어서 이용해 먹습니다. 한쪽은 자신들의 독재를 합리화하는데 이용하고 다른 한쪽은 독재에 반대하는 세력을 규합하기 위한 상징적 이미지로 만들어 이용합니다. 그러나 그 속내는 어쨌건 자신들이 권력을 잡기 위함이었습니다. 독재자는 반군에 의해 축출되지만 반군의 대통령은 여주인공의 화살에 맞아 죽으며 끝을 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액션 판타지로 변형하였을 뿐 똑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속내를 숨기고 이미지만 만들어가며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일에만 더욱 급급한 무리들, 그들에게 국민은 그저 이용의 대상일 뿐, 인간으로서의 대접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나가며 : 왕, 권력이라는 화려함 뒤에 감춰진 권력욕과 탐욕, 강인함과 성공의 이미지에 감춰진 추악한 내면! 우리는 이것을 제대로 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15절 이하를 통해 “거짓 예언자들을 살펴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굶주린 이리들이다. 너희는 그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야 한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따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그럴 듯한 나무만 보면서 열매를 보지 못하여 어리석은 선택, 스스로의 손목을 도끼로 찍어버리고 싶은 선택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는 선택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잘못된 선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부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 부활의 기쁨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부활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을 살아내는 사람에게만 부활이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부활, 부활의 기쁨은 우리가 신앙적 선택을 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 알아야 하겠습니다. 2016년 4월 13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으로 부활을 누리는 여러분께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