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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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누가복음 13,18-21
18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은가? 그것을 무엇에다가 비길까? 19 그것은 겨자씨의 다음 경우와 같다. 어떤 사람이 겨자씨를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20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를 무엇에다가 비길까? 21 그것은 누룩의 다음 경우와 같다. 어떤 여자가 누룩을 가져다가, 가루 서 말 속에 섞어 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올랐다."

제목 : 좋은 만남, 좋은 관계
설교일 : 2016년 5월 15일
[좋은만남교회 성령강림주일 낮예배 및 야외예배 설교]

들어가며 :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한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베푸신 이 아름다운 경험과 추억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교제를 나누고 말씀을 마음에 받는 사랑하는 좋은만남교회의 성도들에게 크신 은혜와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꼬마가 성경을 열심히 읽고 있었습니다. 성경의 중간쯤에서 바싹 말려진 나뭇잎 한 개를 발견하고는 그 나뭇잎을 들고 엄마에게 달려갔습니다. “엄마, 내가 신기한 것을 찾았어.” 엄마가 물었습니다. “뭔데?” 꼬마는 흥분한 모습으로 나뭇잎을 엄마에게 보여주며 대답했습니다. “아담이 입었던 나뭇잎 옷이야. 성경 속에 있었단 말이야.”
어제 변산반도 마실길을 걸으면서 여러분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었을 줄로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경탄하고, 또 힘들지만 길을 걸으면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지나온 인생을 떠올리기도 했을 것이고, 함께 걷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기도 하셨겠지요! 아무튼 이 꼬마아이처럼 여러분들이 신선한 상상력, 작은 것에서도 느끼는 경이로움으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들어가서 :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또 하나님을 믿음으로 갖게 되는 기대는 무엇입니까? 뭐니뭐니해도 결국은 하나님 나라,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죽음이라는 공포스러운 대상에 대한 보험을 드는 느낌, 죽음을 이겨내고 부활 혹은 천국에 가게 될 것이라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인 확신 때문에 우리는 이생에서의 귀중한 시간과 물질을 바쳐가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고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과연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우리의 상은 무엇입니까? 정말로 믿고 기다리고 가고 싶어 하는 하나님 나라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그 정답은 ‘알 수 없다’입니다. 살아 생전에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살아서는 결코 알 수도 없으며, 어쩌면 우리가 믿고 고대하고 상상하고 바랬던 것과는 전혀 다를 지도 모르는 천국을 우리 마음대로 상상하면서, 어쩌면 잘 모르더라도 최고이고 최선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천국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이게 도박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천국,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를 모른 체 하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13장에 나타난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 직전인 10-17절에는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과 등이 굽은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18년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데 등이 굽어서 조금도 펼 수 없는 그런 병에 걸린 여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보시고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여자여,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고 선언하시고 손을 얹으시니 허리가 펴졌다고 하십니다. 십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에서 완전수입니다. 십이 년을 자랐으면 다 큰 것이고 제자가 열둘이 모이면 완전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십이의 절반인 육을 더한 십팔이라는 숫자는 완전에서 조금 더 나간 완전의 두 배 쯤 되는 숫자, 즉 이 병으로 지치고 지쳐 미치고 돌아버리기 직전의 상황에까지 몰린 여자의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는 예수님을 통한 한 만성적 병자의 해방, 병을 일으키는 마귀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의 소식인 것입니다. 
게다가 회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강론에 여성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은 없습니다. 이 여성은 아마도 눈치를 보면서 그나마도 제일 구석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두려워 떠는 모습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여성은 사람도 아니었고 감히 남자들의 공간에 끼어들 틈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남성들의 공간에 감히 끼어들어온 여성을 주의 깊게 보시고 그 여성을 불러내 그 여성에게 손을 얹으셔서, 즉 안수하셔서 그 여인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이것은 병마로부터의 해방 외에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를 인정하고 여성해방을 선언하신 퍼포먼스라고 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치유하는 사역을 통해 자신이 하시는 일이 해방, 놓임, 자유의 일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입니다. 앞에서 행하신 일은 지금 하시는 말씀을 위한 사전 퍼포먼스,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사전교육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이 여인을 고친 행위는 바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고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전조로 보여주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나를 억압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고 평화롭게 되고 건강하게 되고 행복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그게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병마해방, 장애해방, 여성해방!
그리고 이 하나님 나라는 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아야 합니다. 등이 굽은 여자가 예수님을 만나서 새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만남은 그냥 스쳐가는 만남이 아니라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는 좋은 만남, 해방의 만남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입니다. 이 비유도 만남으로 시작합니다. 씨앗이 흙을 만나고 가루가 누룩을 만났습니다. 겨자씨는 보잘 것 없는 작은 것에 지나지 않지만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번져간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자라서 나무가 되고 그 가지에 온갖 새들이 찾아들어 깃들이고 평화롭게 삽니다. 겨자씨와 흙의 만남은 겨자나무라는 결과로 나타났고 그 겨자나무는 온갖 새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만들었습니다.
누룩도 가루를 만납니다. 그래서 반죽이 되고 부풀어 올라 빵이 되고 떡이 됩니다. 바로 거기서 또다시 새로운 만남이 탄생합니다. 그 빵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것을 먹는 사람은 살아갈 힘을 얻고 생명력을 얻고 포만감에 행복합니다. 참 좋은 만남이다. 그리고 이 만남이 있는 자리는 바로 하나님 나라가 됩니다. 서로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고, 서로에게 자극과 의지가 되고, 그 만남은 또다른 만남을 낳고 그래서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가치 있는 삶을 이어가게 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모든 만남이 다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등이 굽은 여인을 고쳐준 것이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분개하며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회당장, 요즘으로 따지면 목사입니다. 그가 분개하는 이유는 안식일이라고 하는 율법을 예수님이 지키지 않고 ‘왜 하필 엿새나 되는 평일이 있는데 안식일인 그날 병자를 고쳐 주냐’는 것입니다. 율법의 본질은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 자신의 존재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는 것이고, 안식일은 인간의 모든 노동과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안식을 얻게 하고자 함입니다. 그러나 이 회당장은 율법 안에 담긴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을 보지 못했고 자기 앞에 서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오히려 분개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만나긴 만났고 보긴 봤지만 영혼으로 만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없는 만남은 결코 하나님 나라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영혼의 만남이 없으니 관계도 없고, 관계도 없으니 삶에는 하나님 나라가 없고 그저 스쳐가는 만남, 형식적인 관계로 그치고 깊은 교제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적 만남이 있을 때 자유와 해방, 행복과 회복이라는 열매를 맺는 좋은 만남이 되지만 영적인 교제가 빠진 만남은 증오와 배제, 미움과 다툼의 관계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하게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난 날은 그의 영혼이 흔들리는 날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느낀 베드로는 예수님께 떠나가 주시기를 바랬습니만 예수님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면 따르라고 권면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의 만남은 영혼으로 만난 만남이었기에 베드로는 아버지를 포함한 모든 것을 다 내팽개치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예수쟁이들을 잡아 족치는 일에 열심이었던 청년 사울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리고는 그의 삶이 송두리째 뒤바뀝니다. 그는 박해자 사울이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사도 바울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그들을 통해 드러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뭐가 뭔지 모르고 막연하게 목회를 시작한 방현섭이라는 사람이 좋은만남교회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것도 영혼으로 만나서 행복한 목회, 즐거운 목회, 보람 있는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방현섭 목사가 있는 좋은만남교회가 바로 하나님 나라가 되었습니다. (아멘!)

나가며 :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께 ‘여러분은 서로에게 어떤 만남이고 어떤 관계입니까?’ 하고 묻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만남은 좋은 만남이고 아름다운 관계, 영혼으로 만나는 관계라고 확신합니다. 각자의 모양은 다 다르지만 흙을 만난 씨앗처럼, 가루를 만난 누룩처럼 서로에게 의지하며 서로를 기쁘게 하는 만남! 그래서 바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만남! 이 좋은 만남이 우리 안에서 건강하고 아름답게 지속되고 성장해서 우리 자신과 이웃,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인류를 행복하게 하는 관계로까지 자라나게 되기를 바란다.
좋은 만남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는 사랑하는 좋은만남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이끄심도 돌보심이 함께 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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