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복음 7,29-35
29 (모든 백성과 심지어는 세리들까지도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옳으심을 드러냈다. 30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지 않음으로써 자기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물리쳤다.) 31 "그러니, 이 세대 사람을 무엇에 비길까?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32 그들은 마치 어린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서로 부르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하는 것과 같다. 33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으니, 너희가 말하기를 '그는 귀신이 들렸다' 하고, 34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너희가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35 그러나 지혜의 자녀들이 결국 지혜가 옳다는 것을 드러냈다."
제목 : 우리는 더 이상 엑스트라가 아닙니다
설교일 : 2016년 7월 10일
[좋은만남교회 성령강림 후 제8주일 낮예배 설교]
들어가며 :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오늘도 세우신 교회에 나와 말씀을 듣고 감동으로 새 힘을 얻고 새롭게 거듭나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에게 차고 넘치도록 임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 중에 성도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다’ 하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아무 반응이 없자, 다시 물었습니다. "아무도 없습니까? 손들어 보세요." 그때 저 뒤에서 그 교회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 한 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할아버님,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우리에게 말씀해 주세요." 라고 말했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기운이 없는 할아버지는 간신히 말씀하셨다. "응, 있었는데, 다 죽었어."
날이 무더워졌습니다. 태풍도 온다고 합니다. 인생에 항상 봄날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더운 날, 추운 날, 태풍에 가뭄에 눈보라도 칩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다양한 일기도 다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를 건강하게 만드는 자연의 조건이라고 생각하시고,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들보다 더 오래오래 살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건강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들어가서 : 여러분이 교회라는 곳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이 언제였나요? 몇 살 때 즈음이었습니까? 대부분 교회학교부터 시작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혹시 교회학교에 다니시면서 제일 먼저 들었던 성경말씀, 가장 기억에 남는 성경말씀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저는 모태신앙이라 처음의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주일학교에서 배운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라면 역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맷돌 하나로 거인을 쓰러뜨리고 결국 대제국을 건설한 다윗은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이자 다시 오실 메시아의 모델과 같은 존재입니다.
또 기억에 남는 사람을 꼽으라면 모세를 꼽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집트의 왕자 생활을 하다가 파라오와 담판을 짓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와 탈출하는 이야기는 어린 시절에 본 영화 십계의 바닷물이 갈라지는 장면과 오버랩 되면서 감동 그 자체가 됩니다. 저보다 젊은 세대는 이집트 왕자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밖에도 믿음으로 담대했던 여호수아, 긴 머리 휘날리며 초인적 힘을 발휘하는 삼손, 순종하는 착한 어린이 사무엘, 기적의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 고기 뱃속에 들어갔던 요나, 사자굴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다니엘 등등의 이야기가 많이 기억날 것입니다.
우리는 유독 구약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구약은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 첫 사람 아담, 방주를 만드는 노아, 민음의 조상 아브라함, 꿈쟁이이자 후에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 모세, 아론, 여호수아, 드보라, 기드온, 삼손, 사무엘. 그리고는 왕들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사울왕, 다윗왕, 솔로몬왕, 그리고 이름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왕들, 그리고는 예언자들의 이야기로 넘어가지요. 수많은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서 수많은 에피소드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영웅들과 특별한 사람들, 권력과 명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환상적으로 펼쳐지면서 구약은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그렇습니다. 구약은 온 우주의 창조주이자 주인이신 하나님과 하나님께 충성한 영웅호걸들의 이야기 모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로 치면 요즘 최고 개런티를 받는 배우들이 수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무슨 맨, 무슨 우먼하면서 나오는 수퍼히어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으로 넘어오면 이야기는 완전히 반전됩니다. 물론 예수님이라는 걸출하신 분,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 자신이라고 교리적으로 해석된 분이 일급주연, 타이틀 롤을 맡으셨습니다. 그런데 주·조연급들의 면면이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예수님 주위에 따라다니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어부, 농부, 창녀, 가난한 사람, 병자나 장애인, 어린이, 로마제국에 복무하는 세금징수원 등등 전혀 영웅도 호걸도 아닌 찌질한 사람들, 별 볼일 없는 사람들, 사람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인성이라는 곳에 사는 과부-그나마 외아들까지 잃은-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름이 뭔지도 안 알려져 있습니다. 베데스다라는 연못에서 기적을 기다리는 38년 된 중풍병자, 중풍병 걸린 친구를 메고 지붕에 올라가 달아 내린 친구들,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사마리아인에 그것도 여자라니! 문둥병, 한센병에 걸려 공동체에서 격리된 사람들-한두 명이 아니라 열 명씩 떼로, 등이 굽은 여인, 귀신 들려서 공동묘지에서 살아가는 사람, 사람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매기고 착복하는 삭개오 같은 세금징수원 등등이 매우 중요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구약에 비하면 완전히 인간쓰레기들입니다. 간혹 바리새인급, 율법학자급이나 공의회 의원이 끼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조연급도 아니고 단역이나 엑스트라급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완전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인 왕이나 제사장들을 오히려 악역으로 등장합니다. 구약이 수퍼히어로 영화라면 신약은 뭐라고 할까요? 송윤혁 감독이 찍는 초저예산 다큐멘터리 정도 될까요? 아무튼 급이 다릅니다.
그런데 제가 신학공부를 하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다섯 권의 책 모세오경은 왜 모세가 쓴 것도 아닌데 모세의 이름을 붙였을까요? 저를 감동시킨 다윗이 물매돌로 골리앗을 쓰러뜨린 이야기는 사실 각색된 이야기이고, 골리앗을 죽인 장수도 엘하난이라고 하는 다윗의 부하 장군입니다. 사울왕은 구약에서 완전히 나쁜 사람으로 매도되지만 사실 그는 왕이 되긴 했지만 오직 군사징집권만 부여받은 왕으로 왕궁이나 왕들이 누리는 각종 혜택은 없이 평생 전쟁터에서 전쟁만 하다가 아들들과 함께 비참하게 죽은 비운의 왕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이 평생 전쟁만하면서 우울증을 앓고 정신분열에 시달린 상처 위에 자신의 제국을 건설하였던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구약의 영웅들은 영웅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만들어진 영웅이었고 다른 사람의 공적을 갈취한 영웅이었고 성공하고 권력을 쟁취하였기에 영웅으로 만들어지고 포장되고 영웅으로 해석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대로 오면서 180도로 달라집니다. 주인공이 되고 영웅이 되었습니다. 유대교, 유대인들의 영웅이 영웅이 아니라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온 몸과 마음으로 모셔들인,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별 볼일 없는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기꺼이 독생자까지 내어 줄만한 그런 존재들이라는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나누고 그런 비전으로 새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이 영웅으로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대사 한 마디 없는 엑스트라, 배경처럼 서있던 사람들을 예수님은 영웅으로 만드시고 신앙의 모범으로 인정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자신의 친구로 받아들여 예수님이 만드는 영화에 주연급 조연급으로 세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인공이 화려하고 세련된 기득권자들, 유명인들, 부자들이 아니라, 삶의 현장 한 가운데 그리고 그 가장 밑바닥에서 사람대접도 받지 못하면서 사는 것 같은 이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바로 서민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주인공이라고 선언해주시고 실제로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세상의 높은 사람, 큰 사람, 빛나는 사람에게 맞춰져 있던 역사를 낮은 사람, 작은 사람, 빛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맞추시고 그들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동의하며 동참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지닌 힘은 ‘어느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로 주인공이다. 권력 가진 이들이 주인공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게 하는 그런 힘입니다.
나가며 : 우리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우리가 율법과 정죄, 강박적 행위와 영웅의 역사인 유대교로부터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 다닌다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정말 그리스도인인지 유대교인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선택받은 백성이라며 교만하게 타인을 배타하고, 율법과 행위로 타인을 규정하고, 자신의 공로로 구원을 얻은 것처럼 타인을 멸시하고 정죄하면서 권력과 재물과 인기와 명예와 빛나는 것을 사랑하여 그것을 얻는데 하나님을 동원하고 예수님을 팔아먹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교를 폐하시고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셔서 가장 천하고 험한 모습으로 돌아가신 자신을 신앙의 표준으로 세우셨습니다. 이 시대는 유대교의 주인공은 더 이상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소망하고 어디서 희망을 찾으며 어떤 구원을 기다리는지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하겠습니다.
바라기는 엑스트라로 배경으로 살던 인생을 주인공이라고 선언해주시고 세워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혁명적 은혜와 사랑을 통해 소망과 구원을 발견하시라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기쁨으로 받아 마음에 품고 그 삶을 누리시라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로부터 예수님이 주신 주인공의 자리를 빼앗아가지 못하게 하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주인공입니다. 우리가 역사의 사회의 종교의 주인공으로서 닫힌 문을 열고 나가 주인공으로 우뚝 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여러분께 하나님의 자비가 있으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