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18-24
18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은, '예' 하면서 동시에 '아니오' 하는 것은 아닙니다. 19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도 되셨다가 동시에 '아니오'도 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예'만 있을 뿐입니다. 20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멘"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21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 튼튼히 서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22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자기의 것이라는 표로 인을 치시고, 그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23 내 목숨을 걸고서, 나는 하나님을 증인으로 모시렵니다. 내가 아직 고린도에 가지 않은 것은 여러분을 아끼기 때문입니다. 24 우리는 여러분의 믿음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기쁨을 누리게 하려고 함께 일하는 일꾼일 따름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믿음에 튼튼히 서 있습니다
"지배 받지 않는 믿음"
사도 바울은 전도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고린도교회에 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러면서 변명하기를 마음으로는 전혀 갈 생각이 없었으면서 고린도교인들에게 잘 보이려고 가겠다고 약속했던 것은 절대 아니라고 말합니다. 즉 속 마음과 겉마음이 달라서 두 마음을 품고 예와 아니오를 번복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변명을 정리하면서 바울은 분명한 어조로 '여러분의 믿음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개신교회 교단과 교파가 있듯이 당시에도 여러 종류의 파가 있었습니다. 바울파니, 아볼로 파니, 게바파니 하는 말이 돌 정도였습니다. 각 파벌은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내분이나 경쟁관계에 있었을 것입니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얼마나 많은 지지자, 회원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들 교리나 신조에 동의하도록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지배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습니다.
신앙은 도움은 받을 수 있겠지만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목사나 혹은 예언자라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고백이 중요한 것이고 스스로가 예수 그리스도와 맺은 관계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의 고백으로 지배 받지 않는 믿음으로 주님과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