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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우리의 평화를 위해

국가보안법 피해자와 함께

 

성구 : (이사야 53:4-5)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묵상:

일제 식민지배와 전쟁, 미군정과 분단을 거치며 강제로, 또 급하게 근대화를 겪어낸 한반도를 함석헌 선생님은 세계를 대신해 상처입고 고난받은 여인으로 묘사했더랬습니다. 그 깊은 어둠과 상처의 역사를 딛고 사회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엄혹한 군사독재를 겪어야 했지요. 극도로 불안정한 사회를 통치하기 위해 정치권력이 선택한 방법은 ‘국가보안법’이나 ‘삼청교육대’, ‘계엄’같이 공포를 기반으로 한 통치수단이었습니다.

TV와 라디오에서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는 노동요가 활기차게 울려퍼질 때 깊은 밤 어두운 골목에서는 폭력배와 간첩, 데모꾼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갔습니다. 끌려간 사람들의 가족은 영문도 모른 채 보통의 일상을 빼앗겼고 어린 자식들까지 뒤이어 잡혀가버리기도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끌려간 사람들’의 대부분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보통 사람들’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희생당했다는 진실은 긴 시간이 흘러 세상이 훨씬 좋아지고 나서야 조금씩 밝혀졌습니다. 천막영화관이 설치된 학교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반공영화를 보고 울려퍼지는 애국가소리에 귀갓길을 멈춰 경례하던 나의 유년시절 일상은 누군가의 인생을 파괴하여 ‘보안’한 결과 누릴 수 있었던 반쪽짜리 ‘국가’였습니다.

겨울의 막바지, 마치 보릿고개 같던 그 시절.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다가 짓밟히고 뭉개지고 또 잘려나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민주화의 시계가 아주 느리게나마 정주행할 수 있었던 것을 이제는 나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생활의 안위를 누렸던 시간은 ‘국가보안법 피해자’들과 그 가족의 삶을 희생양 삼아 그 아픔과 질고 위에 세워진 ‘피값’이었으므로 그 빚을 갚는 일도 역사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하겠습니다.

한상렬 목사님, 왕재산 가족, 홍성현 목사님, 설두복 상사, 이태형 전 의장 등 근래들어 부쩍 늘어난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때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온 것 같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평소 통일운동을 활발하게 하는 등 눈엣가시였던 이들을 정치적 필요에 따라 구속하고 이를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점, 기준없이 편의에 따라 법을 적용하는 점, 피해자들의 사회적 관계가 완전히 파괴되는 등의 맥락도 그렇고 언론에서 사건을 다루고 이용하는 태도도 그렇게 보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상이 좋아져서 서슬퍼렇던 국가보안법도 점차 힘을 잃고 머지않아 폐지 될 것으로 여겼는데 말입니다.

슬프게도 아직 우리 사회의 안위는 그들의 ‘피값’을 요구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들’이 원래는 ‘우리’의 한 부분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저 놈들은 빨갱이’라고 잔인하게 몰아치는 모습은 2천년 전 십자가 앞의 성난 군중을 닮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분단의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들입니다. 이렇게 새로 생기는 빚도 역사의 몫으로 달아 놓을지, 오늘 여기서 내가 그 십자가를 나누어 지고 예수의 고난에 동참할지 하나님께 물어볼 일입니다.

 

 

기 도 :

우리가 온전한 평화를 누리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신 거

룩한 화해와 사랑의 신비를 깨닫고자 합니다. 이 땅 한반도가 찢기고 나뉘어져 반쪽짜리 평화에 안주하려고 할 때 역사 앞에서 올곧게 살려고 애쓰다가 갇히고 고난당한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그들을 통하여 우리도 진실한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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