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그러한 지 사흘째 되는 날, 그 날은 바로의 생일인데, 왕은 신하들을 다 불러모으고 잔치를 베풀었다. 술잔을 올리는 시종장과 빵을 구워 올리는 시종장이,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 불려 나갔다. 21 바로에게 술을 따라 올리는 시종장은 직책이 회복되어서, 잔에 술을 따라서 바로의 손에 올리게 되고, 22 빵을 구워 바치는 시종장은 매달려서 처형되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몽하여 준 대로 되었다. 23 그러나 술잔을 올리는 시종장은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는 요셉을 잊고 있었다.
“기억하기”
요셉은 두 관원들에게 예언을 합니다. 이 꿈풀이는 정확하게 들어맞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꿈풀이를 생과 사를 무덤덤하게 전합니다. 여기에는 생과 사의 엄중함은 없습니다. 이것은 말이 지닌 가벼움일 수도 있습니다. 요셉이 전한 꿈풀이의 가벼움은 요셉이 처한 위치에 따라 가벼워질 수도 있고 무거워질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요셉의 꿈풀이는 가벼웠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지요. 술 관원장의 직책으로 복귀한 후에 그는 요셉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에게 요셉은 쉽게 잊혀지는 사회적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관원장이 자신의 업무를 보거나, 자신의 삶에 있어서 기억되는 사람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요셉은 죄수였습니다. 따라서 기억하기는 필요도 필요하지만 쓸모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쓸모 없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지만 우리는 이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나와 다른 사람들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혹은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이들을 기억하기를 기도합니다.
사회적 성화를 위한 기도 : 밀양과 청도송전탑 문제를 위해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