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3월 5일 작성자: 두더지
여기 참으로 재밌으면서도 음산한, 상상속의 이야기이면서도 굉장히 사실적인,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진리를 품은 이야기가 있다. [내일은 도시를 하나 세울까해]는 어느 날 12살 이상의 어른들이 전염병으로 사라지게 된 이 후, 아이들만 남은 시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물론 이러한 류의 이야기는 그간 [15소년 표류기], [파리대왕] 등을 통해 만나왔던 지라 그리 충격적이지는 않았지만, 소설 속의 인물들의 모습과 그들의 고민, 그들이 만나게 되는 뜻하지 않은 상황들은 인류의 문명이 지나온 과정이자 지금도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는 문제들을 말해주고 있고, 또한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였다.
이 소설에서 두 번 언급되면서 마치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듯한 리사의 이야기 속의 왕이 한 말, "삶에서 진정한 즐거움은 가치를 획득하는 것"은 이 이야기가 주는 여러 고민들을 한데 묶어주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현실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이들이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행복'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하나의 ‘상태’일 것이다. 소설 속 대부분의 아이들은 안정감, 포만감, 편안함 등을 1차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음식, 옷, 집, 약품 등을 찾아 헤맨다. 모두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방편이자 생존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모습이다. 주인공 리사 역시 그 1차적인 욕구를 쫒아 여러 가지 고민을 실천에 옮긴다. 그러다가 그녀는 그 이상의 것을 고민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가치'이다. 각 자가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면 단순한 두려움과 욕심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욕망에 거리를 두고 함께 그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힘을 합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리사는 그러한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마을 공동체를 만들고, 글렌바드 성을 만든다.
나는 리사의 방식과 '가치' 자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리사가 이야기 한 '가치'라는 것은 아이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은 꿈에 자신의 가치를 걸고 농사와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크레이그가 더욱 소중해 보인다. 하지만 리사가 삶을 성찰해가는 그 과정에는 동의하게 된다. 행복은 실상 자기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인데 그것은 내 속에 꿈틀대는 욕망을 살펴보는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 '생각', '생각'.. 리사가 노래를 불렀던 "생각해야돼!"는 우리 안에 이미 많은 힘이 있으며, 서로가 함께 할 때 그 힘은 비로서 발휘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사와 글렌바드의 시민들의 이야기는 소설이 끝났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아마도 더욱 험난한 이야기들이 그 뒤를 장식하고 있을 것이다. 리사의 글렌바드 성은 도대체 언제까지, 어디까지 발전하고 구조화되고 구체적이 되어야 하는가? 또 언제까지 계속 나타나는 적들과 싸움을 벌여야 하는가? 실상 인생은 끝도 없는 싸움이며, 인류의 역사는 그러한 과정을 밟아왔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는데, 리사는 종탑방에서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표를 세우되, 목표보다는 과정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내가 다 이룰 수 없는 것이고, 내가 이룬 것 같아보여도 그것은 내 눈에 보여지는 표면적인 현상이자 상황이지 본질적으로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잖어)
나는 한기연 공동체에서 어쩌면 리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3년간 한기연에서 일하면서 종탑안에서 밤을 세우는 리사만큼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경험을 여러 번 경험한다. 리사의 현실적인 방법에 적잖이 공감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리사의 리더쉽은 아이들을 조정하고, 정보를 통제하고, 아이들로 하여금 욕망을 쫒게 만드는 리더쉽이다. 또 눈 앞에 보이지 않는 적들을 계속 생산하며, 적을 통하여 '우리'를 통합한다. 대단히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리더쉽은 결국 누군가를 지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또한 자신에 대한 확신은 곧 공동체의 경직과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찾게 하는 것을 목적도한간가핮 않는 리사는 ‘경계’에 서 있다. 그 경계는 참으로 모호하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자신의 고민을 남과 함께 공유하는 과정, 그 안에서 올바른 '가치' 찾고 지향한다는 것은 하나의 즐거움이다. 또 그 즐거움은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경험해야만 진정한 즐거움이 된다. 나는 '행복'의 좀 더 적극적인 가치를 '즐거움'이라 생각한다. 즐거움을 지향하는 삶이 부럽고 즐거운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 상황들은 어찌 생각해보면 즐거움의 연속이다. 생각꺼리이고 고민꺼리이기에, 그리고 생각하기에 존재하는 인간의 숙명 앞에, 산다는 것은 결국 즐거움인 것이다.
[내일은 도시를 하나 세울까해] O.T.넬슨, 박중서역, 뜨인돌, 2007.
함게 생각해 볼 거리
- 리사의 ‘글렌바드’ VS 크레이그의 ‘작은 농장’ 당신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인가? 리사는 탐 로건과 화해하고 협정을 맺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였는가? 둘이 전쟁을 하지 않고 함께 공동체를일며 살아갈 있는 여지는 없었는가? - 내 삶의 리더인 나 ‘자신’은 내 삶을 어떻게 리드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