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바람을 보았니? ( 마음나무를 읽고)

by 좋은만남 posted Jan 1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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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바람을 보았니?

(마음나무를 읽고)

 

글: 이관택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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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비마이너 첫 번째 시간에 템플 그렌딘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성의 이야기였는데, 결국 그러한 장애를 극복하고, 교수가 되고, 더 나아가 웬만한 사람도 하지 못하는 성과들을 이루어 성공하는 감동적인 내용의 영화였다. “템플 그랜딘은 어찌 보면 그렇고 그런 슈퍼 장애인에 대한 승리주의와 자본주의형 판타지를 표현하는 영화, 또는 희망고문을 일삼는 영화로 보일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일축하기엔 뭔가 깊이 있는 구석도 있다. 영화 속에서 자폐성 장애인이 느끼는 세상, 그의 감각과 시각이 영상으로 표현되는 장면만큼은 이 전에 느끼지 못했던 커다란 자극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벌써 수년째 토마토학교를 통해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나는, 지금까지도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 아이들이 느끼는 감각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했고, 무지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에 마음 나무를 함께 읽은 경험은 영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풍성한 감수성과 아픔, 그리고 다른 세계와 접하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한 개인의 철학적 사고들이 장애/비장애의 범주를 넘어 누구에게나 그저 존재하고 있음을 가슴 깊이 깨닫게 되었다.

티토를 통해 들여다보는 세상, 그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의 고백과 감성은 물론 모든 자폐성 장애인에게 적용하여 일반화 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티토를 통해 나의 사고와 감수성, 그리고 실천의 깊이와 폭을 그 만큼 확장시킬 수 있었다고 감히 고백해 본다.

 

 

 

 

몸과 마음이 일치되지 않는다는 것 -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현실세계가

내 소망이 나에게 그러하듯이

나를 거부하니

마음이 아프다.

 

티토의 내면에서 가장 많이 포착되는 장면이 바로 자신의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티토는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으면 날개들이 원모양으로 하나가 되고 멈추면 다시 몇 개의 날개 형태로 있는 것 같이, 자신의 몸이 그렇게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져 있는 느낌이라고 고백한다. 실제로 수영을 할 때, 말을 할 때, 체육활동을 할 때, 글씨를 쓸 때, 사소하게 사물을 인지할 때, 티토는 이런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도 역시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실망시키기 싫다. 남들과 다른 사람 취급 받는 것도 싫다.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기도 싫다. 관심가는 일을 집중해서 하고 싶고 그것을 할 때, 방해받고 싶지 않다. 자연스러운 욕구들이다. 하지만 이 자연스러운 욕구들은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티토의 일상에서는 그리 자연스럽지 못하다. 몸이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마음도 지 멋대로이다. 자기 내면의 여러 자아(신체기관)들도 스스로 소통하지 못하는데, 어찌 타인과 소통할 수 있으랴?

나는 여기서 장애의 범주를 더욱 넓혀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자기 내면의 힘겨움(그것은 때때로 심리적인 것에 국한하지 않고, 근육과 운동능력 등을 포함한다.)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타인과의 삶은 장애물의 연속일 수 있다. 소통은 우리로 하여금 안정감과 희망 그리고, 도움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통이 되지 않는 순간, 삶은 점점 무너져 내린다. 타인과의 소통 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 소통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 할진데, 자폐성 장애인의 경우 얼마나 힘이 들지 상상해본다. 하지만 이 소통불가의 현실은 횟수와 내용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에게나 맞닥뜨려진다. 몸과 마음이 시원하게 완전히 일치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초보자가 탁구를 배운다고 배운 것만큼 바로 시원하게 탁구를 칠 수 있는가? 피겨스케이팅을 배운다고 김연아가 될 수 있느냐 말이다)

위의 내용이 말도 안 되는 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실상 장애인의 피해자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든 사람의 장애인화도 아니다. 그 중간의 여기저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이 소통일 것이며, 그 소통의 정도와 소통의 방식을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가 바로 우리의 고민 지점이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일치되지 않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 소통불가의 현실에서 소통의 지점을 정확히 확보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다양한 분야에서 방대한 노력이 필요하겠지..... 여기서 질문! 무엇을 가장 먼저 하면 좋을까? 소통을 위해서, 특히 장애범주에 있는 이들의 소통을 위해서 말이지? 이건 아마도 한국사회에서부터 좁게는 내 안의 편견까지 다양한 문제들 사이에서 답을 찾아봤음 합니다.)

 

 

 

좀 더 디테일하게~ 좀 더 섬세하게

 

어떻게 놀지요!

말을 못 하니?

어떻게 말하지요!

말을 못 듣니?

어떻게 듣지요!

한 번 해볼래?

네 해볼래요. 하지만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줘요.

 

티토가 만나는 세상에서도 할 것은 정해져 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난관은 언제나 어떻게하냐이다. 디테일한 방법과 태도, 그 지난한 노력과 투쟁이 티토의 삶에선 필수적이다. 토마토학교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무엇이 좋은 프로그램인가? 결국 우리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디테일이다. 화장실을 한 번 같이 가더라도, 서로의 비밀을 확인한 사이만이 간직하고 정서의 공감! 그리고 그로부터 쌓여가는 디테일(다른 말로 내공)

타인과의 만남에서 섬세함이 요구될 때가 있는데, 그것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더라도, 그 차이들을 인지하지 못하며, 그 틈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관계와 소통의 발전 가능성을 올바로 진단하지 못하게 된다.

질문 - 토마토학교를 예로 들어 볼 때, 어떻게문제에 봉착한 경험이 있는가?

 

 

 

 

그런 세상이 가능할까?

 

그런 세상이 가능할까?

동정이 아닌 수용과 사랑이 있는 곳!

내 이야기가 여러분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다면

희망은 값진 보답을 받게 될 것이다.

 

결국 티토가 이 글을 쓴 이유가 무엇인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건만 단순한 불편함과 어려움을 넘어 결국 수용되지 못하고 거부되어온 자신의 인생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일 것이다. 내가 처음 토마토학교를 할 때, 학부모님들께서 해 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 아이들이 토마토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많지만, 대학생 선생님들 한명이 변하면 그 만큼 아이들이 살기에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겠냐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힘겨워하는 것은 실상 신체적 장애뿐 아니라, 장애라는 굴레가 가져오는 그 밖의 것들도 크게 작용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감히 우리의 당면과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은 티토의 시가 있다. 8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쓴 시라 하기엔 너무나 많은 삶의 깊이가 들어가 있지 않은가!

누가 바람을 보았니?

너두 아니고 나도 아니지

하지만 나무가 머리를 숙일 때

바람이 지나가고 있는거지!”

 

나무가 머리를 숙이는 그 때가 언제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