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한 인생

by 좋은만남 posted Sep 05, 201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매력적인 서사는 사람들을 주목시킵니다. 재미있는 서사는 사람을 빨려들게 합니다. 계속해서 각종 미디어들은 서사에 주목합니다. 그렇듯한 서사보다는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서사를 찾습니다. 무더운 8월,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서사를 통해서 무더위를 잊어버리는 한 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KOR9788936433925.jpg

 

일반적인 우리네 이야기는 너무나 재미가 없다. 왜냐하면 내 직장동료나 친구들의 이야기는 어느정도 예상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루 하루가 극적인 이야기일 수 있는데, 그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라고 해서 관심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남의 이야기에 관심을 더 갖는 것인 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를 들을 때,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누가 전해주는가도 중요합니다.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에 따라 더 매력적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은 서사의 중요성을 가지고 매력적으로 작중 소설의 각 인물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전해줍니다.  

 

사랑에 빠진 여인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빛날 것이다. 류의 아버지가 포착하고 전율한 것은 그 아름다움이었다. 그 아름다움은 대개 이미지로 구현된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서정적 이야기들은 연인의 포옹이나 결혼식으로 끝이 나고 그런 것을 해피엔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이후 벌어지는 생활과 이데올로기라는 서사의 세계는 이미지의 세계와 인과관계가 없는 다른 영역이다. 이미지는 순간적으로 쏘이는 광선 같은 것이고 자체로 완결 되기 때문에 진위 같은 건 없다. 그러므로 아저비는 의심하지도 상처받지도 않았다. 빚 같은 것도 지지 않았다. 하지만 서사의 영역에 속한 어머니의 삶을 이끄는 것은 이미지가 아닌 패턴이었고 그것은 뜨개질 본처럼 이어져가야만 했기 때문에 절단면의 상처는 깊었다. [태연한 인생. 16-17쪽]

 

스러지는 햇빛 아래 나무의 긴 그림자가 마치 자신의 인생의 퇴락처럼 힘겹게 빛과 모양을 유지하려 애쓰며 바래가던 날, 어머니는 자기 앞에 다가와 있는 상실의 세계를 보아버렸다. 이제부터는 쓸쓸할 줄 뻔히 알고 살아야 한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틀을 지켜야 하고 더이상 동의하지 않게 된 이데올로기에 묵묵히 따라야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 세계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세계를 믿지 않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믿는단 말인가. 상실은 고통의 형태로 찾아와서 고독의 방식으로 자리잡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어두운 극장의 의자에 앉아 모든 것이 흘러가고 가라 앉기를 기다렸다. 고통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침전될 것이었다. 하지만 원심분리기 안의 소용돌이 속에서 추출되고 있는 부유물은 고통으로 보이는 고독이었다. 그 봄날의 피크닉이 오랜 우기 끝에 찾아온 찬란 뒤에 불길함을 숨겨놓았듯 모든 매혹은 고독의 그림자를 감추고 있었다.  [태연한 인생. 72-73쪽]

 

사라진 것은 완결된 것이며 완결된 것은 변하지 않는다. 죽은 것이다. 어머니는 눈을 감았다. 고독 역시 스스로 의식함으로써 살아 있을 뿐이었다. 이유를 깨달았다거나 시간에 지쳤다가 하는 명분은 어리석고 공허했다. 어떤 일이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종결되는 것이며 때가 되었다는 말은 그때를 알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태연한 인생. 2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