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by 좋은만남 posted Nov 2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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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63600203_1.jpg    고백,  도로시 데이 지음, 김동완  옮김, 543쪽, 19,500원

 

누군가는 말합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변해도 타고난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해서 가능성을 실천하면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변하는 때와 시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보는 대로 글을 쓴다는 것은 어찌보면 쉬운 일일 수도 있고, 또 어떻게 보면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우선 보는 대로 글을 쓴다는 것은 해석이 들어가고 나의 시선과 관점에서 이를 표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눈으로 보느냐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특히 글 쓰는 누군가가 기자이거나 사회에서 공신 된 누군가이면 그 글은 책임감이 있습니다. 이들의 관점에서 쓴 글은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거나 독자들의 관점을 반강제하고 이들의 관점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글의 관점대로 독자들은 사회를 보게 됩니다. 이같은 관점이 민중이나 서민들의 입장을 대변하게 된다면, 소수의 권력자들에게 관점을 강요하게 되고 이들은 본인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계속해서 이들에게 관점을 강요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그만큼 언론의 관점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언론은 수소 권력자들의 관점으로 서민들에게 이를 강요합니다. 지금의 사람들은 위만 쳐다보고 끝없이 경쟁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의 시대에 오늘 소개하는 책 가난한 자들의 친구 도로시 데이와 같은 언론인이 그리운 순간입니다.

 

종교에 대한 공격이 없었던 것은 사람들이 종교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았다. 그들은 미지근하고 물질적인 사람들이었으며, 혹 내세라는 것이 있을지모르므로 일요일에 교회 나가는 것으로 거기에 대비하고, 여기 현세에서는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취하려 했다.
 반면,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보았던 마르크스주의자들, IWW 노동자들, 삶은 현세에서 한 번뿐이고 그 다음은 망각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지금 여기에서 형제들에게 세상의 좋은 것들 을 얻게 해주려고 스스로를 희생해 가며 열심히 싸울 뿐, 정작 자신들은 이제부터 영원까지 세상의 좋은 것들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그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도로시 데이, 고백. 111-112쪽]

 

어느 날 나는 거기 마당에 무릎 꿇고 앉아서 혼잣말을 했다.  이제 정말 내가 어떤 존재이고 어디에 서 있는지 질문해야 했다.  “우리의 주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우리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때 나는 적어도 하나는 확신했다. 동료들과 내가 거기서 다른 무엇도 아닌 예배라는 행위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인간은 예배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예배 행위 속에 있는 순간 자신의 참된 존재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나는 진정 이러한 느낌을 가지고 거기 무릎 꿇고 있었다. [도로시 데이, 고백. 163쪽]


 

내부적 갈등이 있었을 때 발행을 중단하고 침묵하며 육체 노동과 기도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 더 나은 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우리의 성정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나 자신은 평화주의자이지만 지금도 내 사상적 기반을 고수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를테면 내게는 사실상 계급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운동을 지속하며, 즉각적인 수단으로 자선이나 구제라는 무기를 사용하여 우리의 사랑을 보이고 인간의 고통을 덜어 주는 방식이 편하다.   [도로시 데이, 고백. 3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