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안현미, 창비, 8,000원, 102쪽

 

추위가 엄습해오는 이 계절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방안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쿡 눌러 앉아 있지만 생각해 보면 이럴때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내 자신을 발견할 때 따뜻한 히터가 나오는 카페에서 추위를 피해 시 한편 멋드러지게 읽는건 어떠신지요.

 

 

  사랑이 나도 모르게 수리가 된다는 것을 믿으시나요? 안현미 시인은 사랑은 어느날 수리가 된다라고 말합니다. 우선 시집 제목부터가 멋드러지지요? 만국의 연인들이 사랑을 표현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시와 노래입니다. 시에 곡조를 붙어야 하는 것이 노래라면, 시적 감수성으로 사랑을 노래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낭만적일 수 있습니다. 먼저,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시적 표현이고 단어로 표현하거나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맬랑꼴리한 시적 감수성과 단어이지요. 하지만 사랑이라는 단어가 오로지 연인들에게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닙니다. 이곳 저곳에 적용되거나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의 적용을 안현미 시인은 이 시집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랑의 수리는 나 자신 스스로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환경이나 주변의 모습 그리고 나의 기억을 통해서도 사랑이 수리된다라고 말합니다.

 

 

스물두살 때 머리를 깎겠다고 전라도 장수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엔 아주 아름다운 여승이 있었고 나와 함께 그곳에 머물던 경상도 아가씨는 훗날 여문사 강원으로 들어갔다 나는 돌아왔다 돌아와 한동안 무참함을 앓았다 새로운 인생이 막 시작되려는 중이었는데 내겐 거울도 지도도 없었고 그저 눈물뿐이었다 나는 나를 꺼내놓고 나를 벗어고 싶었으나 끝내, 나는 나를 벗을 수 없었고 새로운 인생이 막 시작되려는 중이었는데 나는 감히 요절을 생각했으니 죄업은 무거웠으나 경기장 밖 미루나무는 무심으로 푸르렀고 그 무심함을 향해 새떼가 로켓처럼 솟아올랐다 다른 차원의 시간이 열리고 있었다 업은 무거웠으나 그런 날이 있었다 [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어떤 사람의 가능성, 안현미, 21쪽 ]

 

 

1
비밀이 필요한 계절이었고
우리는 시장에 갔고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아무것도 사지 않았지만
우리는 값을 치러야 했고
그것은 어딘가로 날아갔다

그때 누군가 날아가는 그것의 뒤통수를 향해 소리쳤다

“이별! 너는 정말 끔찍하게 아름답구나.”

2
한 스님이 물이 가득 찰랑이는 유리컵 속에 한방울의 잉크를 떨어뜨리고 물었다.
이 물을 다시 맑고 투명하게 하는 방법이 무엇이겠느냐

3
단 한방울의 잉크를
단 한방울의 잉크가
단 한방울의 잉크로

본디 그것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물구나무선 목요일, 안현미, 54-5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