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창비, 8,000원, 296쪽
부득이하게 갑자기 가족과 떨어진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러한 경험은 한국전쟁 세대가 아니고서는 겪기 힘든 일입니다. 각자의 사정으로 가족과 떨어져도 해어진 날 수만큼 보고싶은 마음도 커져가는데, 헤어져서 만날 수 없다면 그 또한 훨씬 괴로울 것입니다.
다산은 그 생애 대부분을 유배지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유배 생활이 후손들에게는 좋은 학문적 영향과 지침서를 남겼다는 것에는 축복이지만, 그 당시 본인과 본인의 가족에게는 이 시간이 고역이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 않되는 삶, 실질적으로는 죽은 삶입니다. 이 같은 삶에 안주하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다산 정약용이었습니다. 다산은 유배지에 두 아들, 둘째 형, 제자들 그리고 지인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는 구구절절한 자신의 처지를 항변하며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편지로 학문에 대해서 교류하고 삶에 대해서 조언하며 진정한 사대부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편지를 모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편지에서 때로는 아버지처럼, 때로는 선생님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사대부처럼 수신자들과 이야기합니다.
마음에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라야만 바햐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이 된 뒤 더러 안개 낀 아침, 달 뜨는 저녁, 짙은 녹음, 가랑비 내리는 날을 보고 문득 마음에 자극이 와서 한가롭게 생각이 떠올라 그냥 운율이 나오고 저절로 시가 되어질 때 천지자연의 음향이 제 소리를 내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시인이 제역할을 해내는 경지일 것이다. 나보고 너무 실현성 없는 이야기만 한다고 하지 말거라. [ 유배지에 보낸 편지, 정약용, 40쪽 ]
무릇 남자가 독서하고 행실을 닦으며 집안일을 보살필 때는 응당 거기에 전념해야 하는데 정신력이 없으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 정신력이 있어야만 근면하고 민첩할 수 있고, 지혜도 생길 수 있고, 업적도 세울 수 있다. 진정으로 마음을 견고하게 세워 똑바로 앞을 향해 나아간다면 태산이라도 옮길 수 있다. [ 유배지에 보낸 편지, 정약용, 91쪽 ]
미관말직에 있을 때도 신중하고 부지런하게 온 정성을 다해서 맡은 일을 다해야 한다. 언관의 지위에 있을 때는 아무쪼록 날마다 적절하고 바른 의론을 올려서 위로는 임금의 잘못을 공격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고통상이 알려지게 하여야 하고 더러는 잘못된 짓을 하는 관리들은 물러나게 해야 한다. 모름지기 지극히 공정한 마음으로 언관의 직책을 행사하여 탐욕스럽고 비루하고 음탕하며 사치하는 일에는 당연히 손을 써서 조치하고 자기에게 유리하게만 의리를 인용해서는 안되고 자기 편만 편들고 자기와 다른 편을 공격하는 일을 해서 엉뚱하게 남을 구렁텅이 속에 밀어 넣어서는 안된다. [ 유배지에 보낸 편지, 정약용, 134쪽 ]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된다”는 말은 참으로 큰 용기가 아니면 그 교훈을 실천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나이가 사오십이 된 사람은 도리어 할 수 있다. 혹 고요한 밤에 잠이 없이 초연히 도를 향하는 마음이 생겨나거든 이러한 기회에 더 확충하여 용감히 나아가고 곧게 전진할 것이지 노쇠하다고 주저앉는 것은 옳지 않다. [ 유배지에 보낸 편지, 정약용, 2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