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신영복, 돌베게, 8,000원, 158쪽
여러분은 여행을 하면,가장 먼저 무엇을 하십니까? 그리고 어떤 여행지를 선호하십니까? 여럿이 함께가는 여행은 이 질문을 답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을 같이 가는 모든 이들이 만족하는 여행계획을 짜야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혼자만의 여행은 다릅니다.
이 책의 차례를 벗어나는 동시에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갑니다.” 라는 구절이 책의 흰 여백 위 가운데 씌여져 있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하고 학교 공부에 흥미가 없었고, 각종 집회 현장이나 투쟁가들이 이질적이라고 느낄 때에 이 책을 만났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이 책보다는 이 글귀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귀는 얼마 동안에 제 인생의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귀는 신영복 선생님이 국내를 여행하면서 나온 글귀입니다. 좋은 글이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희망을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내내 성경묵상과 유행하던 QT책을 멀리하고 이를 대신해 이 책으로 묵상을 대신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들은 여행이나 삶의 여정에서 어떠한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계십니까? 여행은 고단하지만 보람과 추억을 선물합니다. 인생도 여행이라면, 보람과 추억을 선물할 것입니다.
시대의 모순을 비켜간 사람들이 화려화게 각광받고 있는 우리의 현재에 대한 당신의 절망을 기억합니다. 사임당과 율곡에 열중하는 오늘의 모저에 대한 당신의 절망을 기억합니다. 단단한 모든 것이 휘발되어 사라지고 디즈니랜드에 살고 있는 디오니소스처럼 ‘즐거움을 주는 것’만이 신격의 숭배를 받는 완강한 장벽 앞에서 작은 비극 하나에도 힘겨워하는 당신의 좌절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지월리로 오시기 바랍니다.(중략) 완전히 새로운 감수성과 시대가 선포되고 과거와 함께 현재의 모순까지 묻혀져가는 오늘의 현실에 맞서서 진정한 인간적 고뇌를 형상화하는 작업보다 우리를 힘있게 지탱해주는 가치는 없다고 믿습니다. [ 나무야 나무야, 신영복, 34-35쪽 ]
강화로 찾아든 학자, 문인들이 하일리의 노을 바라보며 생각하였던 것이 바로 이 황하의 긴 잠류였으며 일몰에서 일출을 읽는 내일에 대한 확신이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황하의 오랜 잠류를 견딜 수 있는 공고한 신념 그리고 일몰에서 일출을 읽을 수 있는 열린 정신이 바로 지식인의 참된 자세인지도 모릅니다. 강화에는 이처럼 지식인의 자세를 반성케 하는 준엄한 사표가 곳곳에서 우리를 질타하고 있습니다. [ 나무야 나무야, 신영복 50-51쪽 ]
오늘 천수관음보살의 손을 자세히 쳐다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천 개의 손에는 천 개의 눈이 박혀 있었습니다. 천수천안이었습니다. 그냥 맨손이 아니라 눈이 달린 손이었습니다. 눈이 달린 손은 맹목이 아닙니다. 생각이 있는 손입니다. 마음이 있는 손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능력이 있는 사람이 수많은 손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러나 그것은 마음이 있는 손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 나무야 나무야, 신영복, 69쪽 ]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물 위의 배에 지나지 않는 것, 배는 모름지기 물의 이치를 알아야 하고 물을 두려워하여야 한다는 지론을 거침없이 갈파한 남명, 벼슬아치는 가죽 위에 돋은 털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가죽을 벗기는 탐관오리들을 질타하였습니다. 산천재 마루에 앉아서 지리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장중한 지리산의 자태가 바로 크게 두드리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 민중적인 재야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나무야 나무야, 신영복, 109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