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풍습이야기 4
옷단 술의 손상은 권위의 손상
사무엘상 24:4-5
성서시대 남녀가 걸치는 다섯 가지 옷 중 겉옷은 그 네 귀에 달린 ‘술’ 때문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었다. 즉 네 귀에 달린 술은 그 사람의 종교적, 사회적 권위와 정체성을 대변했다. 술은 네 개가 한 쌍을 이루었는데, 그 중 하나라도 손상을 입으면 4개 전체를 바꾸어야 할 만큼 소중하게 여겼다.
다윗은 엔게디 동굴에 들어와 용변을 보는 사울에게 접근해 그의 겉옷 자락을 살짝 베었는데, 다름 아닌 겉옷에 달린 ‘술’이었을 것이다. 애써 네 개의 술을 모두 자를 필요도 없었다. 하나만 잘라도 이미 그 겉옷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사울의 몸을 해치지 않았지만, 사울의 겉옷에 달린 술 하나를 ‘싹뚝’ 베어 버림으로써 사울 왕의 권위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주권에 온전히 자신의 삶을 맡기던 다윗으로서는 결코 대충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왕의 권위를 손상시킨 자신의 행위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왜 사울의 옷단 술을 베었을까?
당시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왕권 말기로 갈수록 여기저기서 균열의 조짐을 보였다. 등극 초기에 비해 주변 대적들과 싸워 인상적인 성과를 올리지 못했고, 사무엘로부터 버림받고 다윗의 인기가 올라가면서부터는 심각한 우울증 증세마저 보였다. 왕권 말기에는 블레셋 등 주변의 대적들에 대항하는 일보다 자신의 정적인 다윗을 좇는 일에 더 혈안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사사시대에서 왕국시대로 넘어가면서 상당한 정치적 혼란기를 겪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울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었다. 사울 왕을 공식적으로 등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사울은 다윗의 도피를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놉에 있던 아히멜렉 대제사장과 85명의 제사장을 모두 죽였던 것이다.
사무엘상 22:18-19
그래서 사울 편에 서느냐, 다윗 편에 서느냐는 곧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을 따르며 함께 도망자가 된 600명의 추종자들은 그야말로 다윗과 한 배를 탄 공동 운명체였다.
다윗은 자신이 쉽지 않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느꼈다. 자신이 직접 칼로 죽이자니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었고, 그렇다고 뒤로 꽁무니를 빼자니 흥분한 추종자들이 직접 사울을 죽일 수도 있는 살벌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결국 자기 손으로 사울 왕을 죽일 수는 없지만, 죽이는 것과 진배없는 상징적이고 충격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흥분한 추종자들을 지정시켜야 했다. 바로 사울의 겉옷에 달린 옷단술 하나를 싹뚝 베어 버리는 일이었다.
사울은 왜 갑자기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인정했을까?
다윗이 사울의 옷단 술을 자른 행위가 당시로서는 ‘범상치 않은’ 특별한 의미가 있음은 사울의 반응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윗은 자신이 숨어 있던 엔게디의 동굴에 들어와 사울에게 그의 겉옷 자락의 옷단 술 하나가 자신의 손에 들려 있음을 알려주었다.
사무엘상 24:11
이스라엘 왕의 모든 권위가 실린 옷단 술이 다윗의 손에 들려 있다는 것은, 바로 다윗이 차기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임을 강력하게 암시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울은 훗날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자신과 후손들에게 선대해 줄 것을 간청했다.
사무엘상 24:20-21
사울의 옷단 술이 찢길 것을 예언한 사무엘
사울의 겉옷 자락에 달린 옷단 술 하나를 찢어서 다윗이 갖게 되는 상징적 행동은 이미 사무엘 선지자가 예언을 통해서도 나타난 바 있다. 사울은 사무엘의 겉옷 자락을 붙잡고 하나님의 뜻을 돌이켜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사무엘은 단호하게 이를 뿌리쳤고, 이때 선지자 사무엘의 겉옷 자락에 있는 옷단 술 하나가 찢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무엘상 15:27
선지자로서 자신의 권위가 집약된 옷단 술이 찢기자 사무엘은 하나님이 사울을 버렸음을 재확증하며 선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의 옷단 술을 찢는 사울의 행동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무엘상 15:28
여기서 왕에게서 떼어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카라로 씌었는데, 이는 찢는다는 의미의 동사다. 결국 사울의 옷단 술을 찢어서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 즉 사울의 사위이기도 한 다윗에게 넘겨 주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사울 왕의 옷단 술 하나가 찢겨져 다윗의 손에 들려 있어 쟁쟁하게 올렸을 것이다.
겉옷을 찢어서 왕국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행위는 선지자 아히야의 행동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멈추지 않는 솔로몬 왕을 징계하기 위해 그의 왕국에서 10지파를 떼어 여로보암에게 주고자 했다. 실로 출신의 선지자 아히야는 같은 요셉지파 출신인 려로보암을 길에서 만나 자신의 겉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어 그 중 열조작을 여로보암에게 주었다. 이로써 솔로몬의 분열을 강력히 암시한 것이다.
열왕기상 11:29-31
반면 자신이 직접 겉옷의 일부를 찢는 행위는 ‘크리아’라고 하는데, 이는 조문과 슬픔의 표시로서 행해졌다.
사무엘하 1:11-12; 욥기 1:20-21; 예레미야 41:5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 잎으로 만든 ‘치마’는 어떤 것일까?
우리말 성경에 ‘치마’로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성경에 하고라로 되어 있다. 하고라는 현대 히브리어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단어인데, 이는 ‘허리띠’를 가리킨다. 그러면 아담과 하와가 ‘허리띠’로 부끄러운 부위를 가렸다는 말인데, ‘허리띠’로는 부끄러운 부위가 제대로 가려지지 않을 테니 오늘날 볼 수 있는 그런 허리띠는 아니었을 것이다.
‘허리띠’로 번역되는 하고라는 원시인들이 허리를 중심으로 두르는 간단한 천을 가리킨다. 아프리카 원주민이나 타잔이 걸치고 다니는 가장 원시적인 의상이 바로 하고라인데, 옷이라기보다 허리에 두른 간단한 천 조각으로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허리띠
허리둘레에 걸치는 간단한 천인 하고라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의상이다. 처음에는 하고라만 걸치다가 점차 속옷, 겉옷 등으로 옷이 다양해지자 하고라는 허리둘레를 묶는 ‘허리띠’로 단순화되었다. 허리띠는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거나 옷감으로 짜기도 했다. 가죽으로 된 허리띠는 엘리야와 다시 올 엘리야로 상징되는 세례 요한의 대표 의상이기도 하다.
열왕기하 1:8, 마태복음 3:4
잠언 기자 묘사한 현숙한 여인의 여러 활동 중 세마포로 만든 허리띠를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 나온다. 잠언 31:24
“허리를 동이라”
성서시대 속옷과 겉옷을 입은 상태에서 허리띠로 허리를 동이다, 즉 허리띠로 조여 주는 것은 여행이나 전투를 위한 준비태세가 완료되었음을 의미했다.
출애굽 당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리에 띠를 띤채로 유월절 어린 양을 급히 먹으라고 명령하셨다. 이것은 신호가 떨어지면 곧바로 애굽을 출발한 만반의 태세를 취하라는 뜻이다.
출애굽기 12:11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사명을 주시면서 ‘허리를 동이라’고 명령하셨다. 사명을 완수를 위해 떠날 만반의 채비를 갖추라는 것이다.
예레미야 1:17
겉옷과 속옷을 입고 허리띠로 조이면 그 윗부분에 헐렁한 공간이 생긴다. 이곳을 가리켜 ‘전대’라고 했다.
마가복음 10:9-10
전대에는 돈만 넣는 것이 아니라 칼과 같은 무기를 숨겨 두기도 했다.
사무엘하 20:8, 요한복음 18:10
남에게 허리띠를 채워 주는 것은 권위를 넘겨주는 위임식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기도 했다.
출애굽기 29:9, 이사야 22:21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긍휼, 겸손, 온유, 인내의 ‘속옷’을 입고 그 위에 가장 중요한 사랑의 허리띠를 동여매라고 권면했다.
골로새서 3: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