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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717일 성령강림절 제5주 좋은만남교회 낮 예배 설교

 

혹시 시간있으세요?

이관택

 

본문: 마가복음 1:16-20

16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19 예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것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를 일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 두고, 곧 예수를 따라갔다.

혹시 시간 있으세요?

2주 전쯤입니다. 그날따라 약속시간이 늦어서 어딘가로 열심히 걷고 있었습니다. 그 때 뒤에서 어떤 여성분이 제 어깨를 잡으면서 혹시 시간 있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도를 닦는 사람이겠거니 생각하면서 고개를 돌렸는데, 너무나 아리따운 여성분이었습니다. 옷차림도 캐주얼 복장이더라구요.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겠지~” 왜냐면 제 외모가 그다지 훌륭하지도 못하고, 특히나 그날도 역시 민복을 입고 있었기에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미소가 너무나 친절했기 때문에 영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도를 닦는 사람이 아니라면 길을 물어보려고 하나?” 그녀는 저에게 잠시만요라고 말하고, 우리는 1분가량 서로 별 말없이 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있다가 그녀의 친구로 보이는 다른 사람이 나타났고 역시나 그 사람의 나를 향한 첫 마디는 제 얼굴에서 참 맑은 기운이 느껴진다는 것이더군요.

그 순간 전 속았다라는 생각과 함께 굉장히 아쉽고, 서글퍼졌습니다. 시간이 너무 아까웠구요. 약속시간도 늦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그 와중에 궁금하더라구요. 그래서 그 분들에게 물었습니다. ‘뭐하시는 분들이신가요?’ 그러자 자신들은 세상의 기운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마음에 대해 공부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수행과정 중에 낮선이들에게 이 뜻을 전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도 말하였습니다.

그 때 내가 놀란 것은 이 젊은 사람들이 세상의 기운에 대해 공부하고, 인간의 마음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소중한 시간을 정기적으로 들여서 누구도 반기지 않는 이 일을 아주 열정적으로 하는 그 모습이 참 반가웠습니다.

여러분은 낮선 누군가에게, “혹시 시간 있으세요?”라는 말을 해보신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고등학교 때 몇 번 해본 적 있었습니다. 여학생 꼬시려고요. 그 땐 저도 좀 괜찮았거든요. 하여간 요즘 같이 시간이 금이고, 돈인 세상에서 누군가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나의 개인적인 욕망이 아니라, 진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과 신앙을 위해 다른 이들에게 시간을 요구하는 일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낮선 사람의 얼굴에서 맑은 기운을 읽어내는 그 분들, 모두가 회피하고, 비아냥거리는데도 꾸준히 그 일을 감당하는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더불어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따르는 우리는 어떠한가요?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진정 복된 소식을 우리의 이웃에게 전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가?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봤으면 합니다. “혹시 시간 있으세요?” 이 말을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건네 보시죠. 그리고 그 시간이 진짜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진심을 담아 복된 소리를 전달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설교가 왠지 전도하라는 주제로 설교하는 것 같지만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주제는 전도가 아니라 우리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만남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지나시다가 제자들을 부르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를 발견하십니다. 마침 그 형제들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의 기자는 16절에 그들은 어부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그 형제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 형제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잠시 후에는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이와 비슷하게 아버지와 일꾼들을 남겨두고 예수님을 따라가죠.

너무나 짧은 이 본문 안의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어부들을 보고, 제자로 부르고, 어부들은 자신이 소유했던 그물과 가족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첫 번째 제자들의 위대한 만남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와 같이 이 이야기가 그리 짧은 시간에 후다닥 진행된 사건은 아닐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곳곳에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께서 어부들에게 혹시 시간있으세요?”라고 말하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아예 인생을 통째로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린 알 수 있습니다. 소위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는 사람들의 고백을 들었을 때, 다양한 반응들이 있지요.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겠노라 서원하는 사람도 있구요. 자신의 죄를 모두 회개하고 펑펑 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의 만남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시간그것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아니라 아예 나의 인생을 요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내가 의지했던 그물들도 버려야 합니다. 그 동안 나를 지탱해주고 나를 지금까지 살아오게 만든 부모님도, 친구들도 버려야 합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만을 쫒아갑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믿음이 있나요? 여러분의 인생을 걸고 예수님을 따라갈 믿음과 결단이 있으세요? 여러분의 친구를 버리고, 여러분이 의지했던 재능을 버리고, 여러분의 가족을 버리고, 예수님만 바라볼 수 있으신가요?

하지만 신앙생활은 그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 인생을 마치 수도원에 있는 수도자처럼, 결혼도 안하는 가톨릭 신부님처럼 하나님께서 드리고, 나의 욕구도, 나의 꿈도, 나의 희망도 모두 포기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나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 드리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특히 하나님의 뜻을 좆아 산다는 것은 나의 인생이라는 시간을 하나님께 저축하면서 산다고 하면 맞을 것입니다. 그러면 시간을 저축한다라는 말이 무엇일까요?

 

시간의 도적과 모모

모모라는 소설을 아시는 분이 계신가요? 모모는 사람들의 시간을 훔쳐가는 시간의 도적들에 맞서서 싸우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이 소녀의 이름이 바로 모모입니다. 모모는 가족도 없고, 집도 없는 외톨이입니다. 하지만 모모는 외롭지 않습니다. 모모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입니다. 모모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그것이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능력이었습니다. 삶이 지친 사람들, 세상에서 무시당한 사람들이 모모에게만 오면 힘을 얻었습니다. 자기가 평상시에 생각도 못한 지혜를 얻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항상 모모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였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엔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친구들이 한명 두명 모모에게 오지 않기 시작합니다. 알고 보니까 회색신사라 불리는 시간의 도적들이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았던 것입니다. 회색신사들이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예를 들어 모모가 사는 동네 이발소를 찾아갑니다. 그 이발소의 이발사는 작고 누추한 공간이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머리상태에 대해 상담해주고, 말도 많지만 따뜻한 아저씨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 머리 이발하는데 1시간씩 걸립니다. 또 이발소의 알바생과도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에게 회색신사가 찾아갑니다. 그는 이 이발사에게 당신의 시간을 저축하면 나중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러면 당신도 성공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이발사는 하루 2시간을 이 회색신사에게 저축하기로 합니다. 그 때부터 이 이발사의 생활이 달라집니다. 이발사의 시간을 겉보기에는 달라진 것이 없지만, 여유가 없어집니다. 이제 더 이상 손님들과 잡담을 나눌 시간이 없습니다. 그 시간은 그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빨리 한 사람의 머리라도 최대한 빨리 깎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예전에 1시간씩 걸렸다면 이제는 30분안에 끝이납니다. 마음의 조급함과 불안함이 없어지질 않습니다. 알바생과 노닥거릴 시간도 없습니다. 알바생은 알바생일뿐이니까 주어진 시간 안에 더 많은 일을 시켜야 합니다. 처음에는 이발소 아저씨가 그리고, 식당 아저씨가 변하더니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바쁘게 살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습관처럼 이야기 합니다. ‘시간없다’, ‘시간없다.’ 바쁘다 빠뻐~ 하지만 이상하게 사람들은 자신들이 회색신사에게 시간을 저금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모모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청소부 베포 할아버지는 거리의 청소부입니다. 그가 길거리를 청소하는 데에는 하나의 규칙이 있습니다. 빗자루질을 할 때, 한 번 쓸고, 한번 숨쉬고, 한번 주위를 둘러보는 것입니다. 어차피 잠깐 쓸다가 말 것이 아니라 끝도 없이, 쓸어야 하는 마당에 목표를 정해놓고, 쉴 새 없이 비질을 하는 것보다. 한번 쓸 때, 충분히 호흡을 가다듬고 그 한 번의 비질에 많은 의미를 담아서 하는 것입니다. 그랬던 그도 회색신사들에게 시간을 저축하면서 자신의 호흡도 잃어버리고, 비질의 의미도 잃어버립니다. 사실 그의 인생을 잃어버린 것이요. 다만 목표를 향해 무의미한 비질만 해댈 뿐입니다.

시간의 도적들이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사람들의 욕망에 불을 지핍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같은 24시간을 살아도 항상 시간에 쫒기게 됩니다. 매일이 불안하고, 매 순간이 다급합니다. 나중에는 도시 전체가 바쁘게 움직입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 라고만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모모를 그리워하긴 합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이미 자신들의 시간을 회색신사들에게 저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저금한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시간은 우리의 가슴과도 같습니다. 모모에서 나오는 구절 중에 인상 깊은 것은 청각장애인은 귀가 고장나서 소리를 듣지 못하고, 시각장애인은 눈이 고장나서 세상을 보지 못하지만, 시간을 빼앗겨 버린 사람들은 가슴이 고장나서 인생을 느끼지 못한다는 구절입니다. 사실은 인간은 가슴뛰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그 가슴은 시간을 느끼고 있답니다. 결국 우리 인생의 시간이 끝나면 이 가슴이 멈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슴이 뛰고 있는데도, 인생을 느끼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시간을 빼앗겨버린 사람들의 삶입니다.

 

예수님께 시간을 저축하다

아까 하나님께 나의 시간을 저축한다는 의미는 우리 주변을 엄습하는 시간의 도적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밖에 없는 인생을 진짜 즐겁게 누리면서 살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시간을 저금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간을 저금했을 때, 나타나는 모습은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 처럼 나타납니다. 그저 평범한 어부, 천하디 천한 어부인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시간을 저축한 이들의 모습입니다. 당장의 고기잡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채워주실 인생의 길을 꿈꾸고 향유하는 것이 하나님의 시간을 사는 이들의 모습입니다. 신앙생활하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을 사는 것 아닙니까? 같은 24시간을 살아도, 다르게 사는 것 아닙니까?

시간의 도적들에게 시간을 저축한 이들이 매사 조급하고, 불안하고, 여유없이 사는 것에 비해, 하나님께서 시간을 저축하며, 하나님의 시간을 사는 우리들은 좀 더 다르게 살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버린 그물과 가족, 친구들을 생각해 보면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그것들을 대한 방법과 생각자체를 바꾸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동안 내가 그물, 그러니까 나의 일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그저 밥벌이 하는 곳? 돈버는 곳? 그 일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 얼마나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인지 생각해 본적이 있으십니까? 또 나의 가족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사랑한다고 얘기만 했지 진심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노력한 일이 있습니까? 진심으로 서로의 인생을 각 자의 방식대로 존중해 주고 있습니까?

버린다는 것은 그 동안의 나의 판에 박힌 삶의 태도를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젠 좀 다르게 보자라는 것입니다. 어부는 어부이지만 사람을 낚을 수 있다. 내 인생 평범해 보이지만 나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그런 인생이 바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인생입니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따라가야 할 것은 과감히 따라가야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인생은 등산과 같다.

지난 겨울 지리산 종주를 하였습니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완전한 종주는 아니었지만,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등산이라는 것이 신기한 것은 분명히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거친 길을 지나면 평평한 곳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등산의 이런 과정이 마치 인생과도 같다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12일동안 그 험준한 겨울 지리산을 걷다보니까 가끔 다리에 쥐가 나서 넘어지기도 하였습니다. 가끔은 너무 험한 산길을 만나 도저히 못가겠다고 포기 할 때도 있었습니다. 정말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구나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온전히 가는 것은 바로 나였습니다. 아무리 함께 가는 동행이 있어도 그들이 나의 짐은 대신 져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 길을 나 대신 걸어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내가 걸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힘들어도, 아무리 험한 길이 나와도 말입니다. 그런데 걷다보니 나를 둘러싼 그 수많은 장애물과 난관들, 무릎까지 수북이 쌓인 눈이 정말 아름다운 장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단지 내 한치 앞만 보면서 걷는 동안에는 나에게 이것들은 장애물이고, 난관이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게 가지고 보면, 아니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모릅니다. 그 모든 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하나님의 손길인지, 하나님의 창조의 결과물인지 모릅니다. 그곳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은 잠시 휴식할 때마다 감탄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바로 이러한 등산을 하는 것과 같지 않나 생각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길이며 하나님의 시간이기에 감탄할 수 있지만 마냥 편하고 좋지만은 않은 것 가끔 옆사람과 짐을 나눠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행복하지만 결국 이 길 내 자신이 하나님 의지하면서 걸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리산 등반 첫날 저녁에 어두워지기 전까지 산장에 가야 한다는 시간의 촉박함을 느꼈던 때가 생각납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얼렁 산장에 가야 했기 때문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내 다리에 쥐가 났다고 마냥 쉴 수도 없고, 경치 좋은 곳이 나왔다고 사진을 찍거나, 여유 부릴 수도 없습니다. 12일의 산행 중에 마치 없는 시간처럼 기억되는 부분입니다. 어떻게 해서 산장에 도착했던 기억만 남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첫 마음을 붙잡아라

요한 계시록 24절에 보면 요한이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면서 그 이유로 처음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갈릴리 바닷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바빠 죽겠는데,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혹시 시간 있으세요?”라고 말했던 그 순간 그리고 그와 함께 하게 되기까지의 그 시간~ 그 첫사랑의 기억은 제자들의 가슴 속에 아주 강렬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만남이 세상을 구원하는 만남이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시간을 산다는 것은 그 첫 마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자녀를 사랑했던 그 첫 마음, 취업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그 회사에 들어갔던 그 첫 마음, 연애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떠보고, 궁금해하고 그리워하고 결국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던 그 첫마음!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좋은 만남교회에 와서 행복했던 첫마음, 기도하면서, 말씀보면서 가슴 뜨거워졌던 첫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처음부터 다시 처음

성서를 보면 세월을 아끼라라는 말이 몇군데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의 시간으로 세월을 아끼라는 말이 아닙니다. 경쟁에서 뒤쳐질까 두려워하면서, 나의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나의 욕망에 시간의 도적들에게 시간을 저금하지 말고, 하나님께 시간을 저금하는 말입니다. 더 큰 거, 더 좋은 거, 더 비싼 거, 1, 성공~ 이런 것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시간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만 쫒아 가다가 내 가슴이 느끼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그 수많은 시간들~ 어떻게 합니까?

하루를 살아도 진짜 행복하게 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 그것이 여러분이 가장 행복해 지는 길일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시간 있으십니까?”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을 위해 남겨놓는 시간, 하나님께 저축하는 시간이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함석헌 <인생아>

인생아 네가 무어냐? 살았느냐? 죽었느냐?

인생아 너 죽은 거더라. 삶을 모르고 산 것을 좋아하는 맘도 없고

산 것을 산채로 감당하는 뱃심도 없더라.

생명을 보느냐? 듣느냐? 만지느냐? 먹느냐? 먹어야 산다.

하지만 네가 생명을 산채로 먹을 수 있니?

네가 먹는 것은 생명은 다 빼고 남은 주검의 껍질만이 아니니?

인생아 너는 속이 죽었더라. 산 것에 대들 염을 못내는 겁쟁이더라.

모처럼 살았던 것도 네 손에만 들면 죽고야 마는 너 아니냐?

죽은 줄을 확실히 안 다음에야 손을 대고 입을 대려 엉금엉금 기어드는 너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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