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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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12일 주현절 후 제6주 좋은만남교회 낮 예배 설교

 

좀 더 깊은 곳으로

이관택

 

본문: 누가복음 5:1-11

1 예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셨다. 그 때에 무리가 예수께 밀려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2 예수께서 보시니, 배 두 척이 호숫가에 대어 있고, 어부들은 배에서 내려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예수께서 그 배 가운데 하나인 시몬의 배에 올라서, 그에게 배를 뭍에서 조금 떼어 놓으라고 하신 다음에, 배에 앉으시어 무리를 가르치셨다. 4 예수께서 말씀을 그치시고,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아라." 5 시몬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6 그런 다음에, 그대로 하니, 많은 고기 떼가 걸려들어서,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7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하였다. 그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히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8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9 베드로 및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은, 그들이 잡은 고기가 엄청나게 많은 것에 놀랐던 것이다. 10 또한 세베대의 아들들로서 시몬의 동료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11 그들은 배를 뭍에 댄 뒤에,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저는 중학교시절부터 함께해온 친구들이 있습니다. 9명 정도의 무리가 지금도 모이는데요. 이제는 결혼해서 얘가 있는 친구들도 있고, 나름 각 자 성인이 되어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임은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은 자극파라고 합니다. 이름은 좀 유치하고, 그렇지만 우리 집이 갑자기 어려워 졌을 때, 한 녀석은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를 팔고, 나머지 녀석들은 학원비를 모아 도움을 줬던 참 의리있는 친구들입니다.

대학교 1학년 때, 그 친구들이랑 동해바다로 자극파 7주년 바캉스를 갔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마지막 여행입니다. 근데 그것이 7월 초였기 때문에 그다지 덥지 않았습니다. 쌀쌀했지요. 전 물에 들어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심지어는 샤워하는 것도 머리 감는 것도 약간은 거부감이 있어요. 제가 평소에 씻는 것을 싫어한다고 저를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오해입니다. 전 씻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고, 물 자체를 무서워하는 겁니다. 그 때도 그랬습니다. 물이 싫어서 바다에 들어가진 않고 발목과 무릎정도만 담그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물에 들어오라고 난리였지요. 친구들은 들어오라고, 들어오라고, 난 춥다고, 싫다고, 온갖 핑계를 대며 도망다녔습니다. 하지만 마음에는 엄청 고민이 들더라구요 친구들은 재밌게 노는데, 들어갈까 말까~

그 때 소나기가 왔습니다. 더 춥더라구요. 이미 온 몸이 다 젖어버렸습니다. 저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들어갈까? 생각했는데, 그 순간 친구들이 저를 들어다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근데, 물에 들어간 순간 무섭기도 했지만, 한 가지 이상한 것을 느꼈습니다. 의외로 물 속이 따뜻하더라구요. 밖에 비 맞는 것보다 10배는 물 속이 따뜻했다라는 것입니다.

 

우물쭈물하는 이들에게

저는 그 때 결국, 물놀이를 30분도 못했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와버려서 대피령이 떨어졌거든요. 참 아쉬웠어요. 이제 재미 좀 붙이려고 했는데 말이죠. 하지만 그 때의 물놀이가 참 기억에 남습니다. 따뜻함을 느꼈던 신기함도 제 몸이 오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처음 만나는 장면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고 계셨는데, 저 쪽을 보니까 어부들이 그물질을 하고 있습니다. 한 쪽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고, 또 다른 한쪽은 거기엔 무관심한 듯,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가 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베드로 입장에서 뭔가 이 사람!’ 하는 마음이 들었겠지요. 마침 그 날따라 베드로는 밤새 그물질을 했는데, 조그만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듣보잡이라고 하지요?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사람이 나타나 난데없이, 깊은 곳으로 가라는데, 이상하게도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는 그 말에 순순히 순종합니다. 예수님께서 뭔가 신통력이 있어서 그럴까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밤새 일을 하던 베드로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날 밤 베드로는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것에 대해 일을 하면서도, 밤새도록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더 깊은 곳으로 갈까 말까? 1분에도 수십번씩 생각이 오고 갑니다. 깊은 곳으로 가기 위해선 여러 가지를 감수해야 하는데, 설사 가더라도 한 마리도 못 잡을 수도 있잖아. 베드로가 우물쭈물하는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갑니다. 그 날따라 몸이 안좋았을 수도 있습니다. 뭔가 깊은 바다로 가기에 무서웠을 수도 있어요. 아무튼 아침이 다 되도록 베드로는 그렇게 마음의 고민만 더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친구들이 즐겁게 물놀이를 하는데, 들어갈까 말까 하는 내 모습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서 포기하려던 차에 누군가 나타나 깊은 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이 말씀은 하나의 신호였습니다. 아 그래 가야지! 그의 고민의 종지부를 찍었던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그것이 예수님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우물쭈물 할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할까 말까 방황하고, 불안해 할 때가 있지요. 막상 그 일을 시작하면 너무나 잘할 것을 망설이고, 좋지도 않은 머리로, 상황을 재보고, 그러다가 미처 해보기도 전에 포기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저는 그 때, 소나기가 나를 적시기 전에 물에 뛰어 들었다면 참 좋았겠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면 물놀이를 좀 더 오래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친구들과 더 많은 추억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까 그 때, 소나기가 나를 적셔주어서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 느낌이, 소나기가 참 고마웠습니다. 우물쭈물하는 우리의 모습, 그 약하디 약한 우리에게 비로소 예수님은 찾아와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신앙인들이 믿음의 확신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불안해하는 모습도 예수님을 진하게 만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혹시 자신의 삶의 문제 때문에 우물쭈물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시라고 권유 드립니다.

 

깊은 곳으로 가라!

배드로에게 예수님께서 한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원래 원어에서 이 말씀은 두 개의 문장이 따로따로 있는 말씀입니다. “깊은 곳으로 가라그 물을 던져라로 나누어 집니다. ‘깊은 곳으로 가라라는 말은 참 제 마음을 뒤흔듭니다. 너무나 가볍게 사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뭔가 다양한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사는 것 같은데, 그저 피상적인 인간관계로 덮여있고, 일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라, 일에 대한 가치가 아니라, 월급 몇 푼 받는 것을 목표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가족들과도, 친구들과도 얄팍하고, 무관심하지 않습니까? 참 한없이 가벼운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깊이 있는 삶을 잃어 버렸기에 진정성이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머리엔 스쳐지나갈지 모르지만 마음을 흔들지 못합니다. 가슴 깊이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러니 삶으로 실천되기도 만무합니다.

한 마디로 깊이가 없습니다. 그저 우물쭈물하고 있습니다. 우물쭈물하는 우리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예수님께서 찾아오시지만, 여전히 우물쭈물 하는 모습입니다. 한번 가봐! 넌 할 수 있어라고 말씀해 주시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한 발짝도 발걸음을 떼지 못합니다.

베드로는 그런 점에서 놀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거든요. 깊은 곳으로 가라니까 깊은 곳으로 갑니다. 그물을 던지라니까 그물을 던집니다. 신앙의 깊이는 바로 여기서 생깁니다. 내 생각을 잠깐 멈추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즉 하나님께로의 전적인 순종의 경험이 내 삶의 깊이를 만든 다는 것을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래디컬한 신앙

얼마 전 래디컬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미국 앨라바마주 버밍험에 있는 브룩힐즈 교회에서 사역하는 데이비드 플랫이라는 목사님이 쓴 책입니다. 래디컬은 흔히 급진적인, 또는 진보적인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 목사님은 굉장히 보수적이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제목의 책을 쓴 이유가 뭘까 궁금해 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제목부터가 진짜 급진적입니다. 챕터1 모든 걸 포기하고 따를 만한 분, 챕터2 복음은 당신의 전부를 원한다, 챕터3 나를 버리는 데서부터 시작하라. 저는 여기계신 저와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예수님을 모든 걸 포기하고 따를 만한 분으로 믿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의 복음이 우리의 전부를 원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 무엇보다 나를 버리는 데서부터 시작 할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니까 베드로는 그렇게 했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쫒았다라는 것입니다.

 

진짜 깊은 곳으로

처음에 베드로는 깊은 곳으로 가라는 말씀이 진짜 깊은 곳으로 가라는 줄 알았어요.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이 진짜 그물을 던지라는 줄 알았거든요. 그것도 틀린 생각은 아니지요. 실제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깊은 곳에 가서 물고기도 많이 잡았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말이죠. 옆에 있던 다른 어부들이 도와주지 못할 정도로, 감당하지 못할만큼의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현대에는 교회에 다니는 것을 자기개발의 일종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 조엘 오스틴이라는 목사님이 쓴 긍정의 힘이라는 책이 근 몇째 베스트셀러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을 받는다. 예수 믿으면 일이 잘 풀린다. 예수 믿으면 교양있는 사람이 된다. 예수 믿어야 사회지도층이 된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예수님 믿으면 행복해지고, 즐거운 사람이 되는 것은 맞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께서 하라는 대로 하니까 수지맞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라는 명령은 다른 차원의 말씀이셨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더욱 차원이 높은 말씀이셨다는 것을 베드로는 한참 후에 깨닫습니다. ! 예수님이 가라고 한 깊은 곳이 그저 더 깊은 바다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예수님께서 던지라고 한 그물이 그저 물고기를 잡는 그물이 아니었구나! 그 깨달음이 있고 나서야 그 때서야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이 예수님의 명령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면, 오늘 말씀에도 베드로의 배가 너무 많이 잡힌 물고기로 인해 가라앉을 지경이라고 하는데, 한국교회는 침몰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배가 폭삭 주저않을 정도로 물고기를 잡게해주신 것에 대해 와 좋겠다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는데요. 저는 이 끝없이 물고기가 잡히는 광경을 보고 베드로가 공포에 질리지 않았나 상상해보았습니다. 실제로 배드로가 이 광경을 보고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저는 죄인입니다. 회개합니다. 물고기가 쌓여가는 것을 보고 자신의 탐욕이 실현되어 가는 것 보고,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베드로가 경험했던 예수님을 만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러다가 이 배가 폭삭 가라 않아 버릴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예수님의 방식으로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사건은 참 감동적입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그 갈릴리 바다를 생각하며, 우리의 삶에서 이미 만나고 있는 예수님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18세기 영국에서 야생에서 들짐승처럼 자라난 피터라는 아이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말을 하지도 못하고, 잘 알아듣지도 못하자 많은 사람들이 자기 방식대로 그 아이의, 말을 해석하고, 자기 방식의 삶을 그 아이에게 주입합니다. 결국 피터는 너무나 불행할 수 바께 없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하나님과 만나는 방식이 마치 피터를 대하는 사람들처럼 각 자의 방식대로 멋대로, 생각하고, 멋대로 결정하면서 살아가지 않나 반성해 봅니다. 먼저 자신의 그물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소통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좋은만남교회 성도 여러분! 지금 우물쭈물하지 마시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좀 더 깊은 곳으로 가시길 소망합니다. 좀 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그물을 던지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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