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석 달쯤 지난 다음에, 유다는 자기의 며느리 다말이 창녀짓을 하여 임신까지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유다가 명하였다. "그를 끌어내서 화형에 처하여라!" 25 그는 끌려 나오면서, 시아버지에게 전갈을 보냈다. "저는 이 물건 임자의 아이를 배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다말은 또 말을 계속하였다. "잘 살펴보십시오. 이 도장과 이 허리끈과 이 지팡이가 누구의 것입니까!" 26 유다는 그 물건들을 알아보았다. "그 아이가 나보다 옳다! 나의 아들 셀라를 그 아이와 결혼시켰어야 했는데" 하고 말하였다. 유다는 그 뒤로 다시는 그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인정”
단연 다말을 슬기롭다, 라고 말할 것이다. 당연합니다. 가부장 혹은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다말은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이 당시로만 한정지어서 말한다면, 다말은 자신이 어떻게 사회에서 쓸모가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여러 오해들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여자로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필수불가결한 멍에입니다. 그 멍에를 받아드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 멍에를 벗어내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후자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결국에는 구조화된 사회에 정면으로 부딪쳐 산산조각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만큼 구조는 단단합니다.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구조를 욕보이는 것입니다. 즉, 구조의 모순을 고발하거나 구조의 중심에 있는 자가 나를 인정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오늘 다말의 방법입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유다는 이를 인정합니다. 이것이 구조를 유지하는 이들의 본성입니다. 그 구조가 깨지게 되면, 그들의 이익도 분산되거나 끝이 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구조를 고발하는 신앙인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회적 성화를 위한 기도 : 강정마을에 진정한 평화가 오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