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한글로 토를 단 영화제목을 볼 때는 나이츠를 기사들(Knights)로 이해했었다.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마도 멋진 왕자님, 기사님 뭐 그런 것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영화를 시작하면서 제목을 보니 밤들(nights)이라는 뜻이었다. 단지 k자가 하나 빠졌을 뿐인데 전혀 다른 느낌이 되었다. 수많은 밤을 블루베리와 함께 보냈다는 뜻...
영화에서는 블루베리 파이를 만들어 파는 뉴욕의 카페로부터 시작한다.
변심한 연인으로 괴로워하는 한 여자와 그 여자의 이야기를 며칠밤동안(어쩌면 하룻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들어주던 카페 주인의 이야기이다.
여자는 자기를 찾는 긴 여행길을 나서고 남자는 그 여인을 그리워하면서 기다린다. 여인은 여행을 하면서 그에게 편지를 쓰고 그는 편지를 읽는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들... 그동안 봐왔던 미국 영화와는 느낌이 많이 다른 영화였다.
로드 무비인 듯 하면서도 자기 성찰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간다.
사랑이 주제인 듯 하면서도 사랑보다는 자기를 찾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초점이 흐릿하면서도 뭔가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에 가로 막힌 탁한 간유리의 느낌이 타인의 인생을 훔쳐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아무튼 뭔가 느낌이 미국 영화와는 많이 다르다.
영화를 다 보고 흐르는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아하!' 한다.
감독이 왕가위 감독이다. 중경삼림, 화양연화의 느낌이 확 살아난다.
영화 속에 등장한 여배우들의 모습에서 중경삼림의 임청하와 화양연화에서의 장만옥이 느껴졌다.
관객들이 뭔가 분명한 것을 요구하는 시대에 이 영화는 맞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건데 이것 같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한 애매한 무엇인가를 막연하게 말하려다가 그냥 적당히 넘어가는 느낌을 주는 영화이다.
그러나 그래서 가장 동시대적인 영화가 아닐까 한다. 다원화된 시대에 무엇을 확실하다고 말하겠는가!
그저 느낌만이 남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그 정체 모를 느낌은 여운이 되어 오래 남을 것 같다.
뭘 모르고 달려들던 시절이 있었다. 그저 그런가보다 하던 시절, 그래서 막무가내였고 그래서 집착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은 그저 작은 도로 하나를 건너면 닿을 거리를 몇 천 마일 돌아서 왔다. 도착점은 출발점 바로 그 자리였다.
그러나 전혀 다른 지점이다. 집착과 막무가내였던 자신은 이제 자기가 누구인지 그리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았고 그래서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으로 용납되어야 하는지도 알게 된, 어쩌면 전혀 다른 나로 그 지점에 돌아와 있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기를 아는 것, 자기가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런 자기와 타인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 그런 관계들이 성숙해진다는 것을 아는 것...
문득 예수와 나와의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예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나를 잘 모르고 만나는 만남은 거짓이다. 거짓이 만난 예수 역시 거짓이다. 그러니 나를 먼저 찾고 예수를 만날 때 그 만남은 진지한 만남, 깊은 만남, 변화를 만드는 만남, 좋은 만남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를 제대로 만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제대로 만난다는 것이 된다.
이 밤, 이 영화를 보고 참된 만남을 그리워한다. 나 자신과 그리고 나와 관계된 타인들과의 참된 만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