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 12장의 구조
예루살렘에서의 예수의 활동 : 10,46-13,37 다른 농부들이 포도원을 차지하다 12,1-12 납세에 대한 문제 12,13-17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물음 12,18-27 가장 큰 계명에 대한 물음 12,28-34 메시야의 아들됨에 대한 물음 12,35-37 거짓 율법학자들에 대한 비판 12,38-40 가난한 과부에 대한 칭찬 12,41-44 |
• 하나님은 없는 곳이 없으시다 12,17
Jesus said to them, "Give to the emperor the things that are the emperor's, and to God the things that are God's." And they were utterly amazed at him.
"Tiberius Caesar Divi Angusti Filius Augustus" 황제 티베리우스, 신적인 아우구스투스의 존엄한 아들
화폐는 권력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다른 두 해석이 공존해 왔습니다.
우파에 속한 사람들은 반(反)젤롯당적으로 해석한다. “그는 이 대답으로써 혁명에 반대했다.” 좌파에 속한 사람들은 이 대답에 젤롯당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이 말씀은 황제의 머리에 있는 왕관을 내리치는 곤봉과도 같다”
본문에서 만나는 예수의 대답이 국가 권력과 신적 권력에 대한 인간의 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물음에 대해 즉각 대답을 제공하는 실제적인 규칙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보다 높은 요구를 하십니다. 우리는 황제의 권력이 하나님의 권력과 경쟁할 경우에, 오직 하나님을 위해 결단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예수의 입장은 젤롯당적 반역의 관점과 구별되듯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묵시문학적 관점이나 인내하라는 관점과도 구별됩니다. 예수의 대답은 인간에게 결단의 책임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에게 하나님은 대립되는 선택의 반열이 아니라 우리가 깨달아 그것에 기준을 두고 살아야할 가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없는 곳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기이’합니다.(θαυμάζώ, amaze)
• 死後 12,26;27
And as for the dead being raised, have you not read in the book of Moses, in the story about the bush, how God said to him, 'I am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
He is God not of the dead, but of the living; you are quite wrong.
사후에 대한 갑갑한 질문이 오갑니다. 얼마 전 한 목사님 초등학교 아이가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죽은 사람이 부활하면 어떤 모습으로 부활을 하나요.”
사두가이파의 물음이 생각이 납니다.
“왜 이런 물음을 하는 거니?”
아이는 많이 궁금하나 봅니다.
“왜 일찍 죽은 아버지와 오래 산 아들이 있으면, 아버지보다 아들이 머리가 더 하얗잖아요. 그럼 어린 아버지가 늙은 아들에게 반말을 해야 하나요.”
이 녀석은 두 학년 위 형 보다 키가 10cm가 큽니다.
난감한 건 또 정신연령은 어떻게 할까요?
솔직히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있는 것은 일단 하나님은 자신과의 사귐에로 부른 자를 언제나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이름을 자신에게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족장들은 모두 어떠한 형태이든 살아 있으며 하나님은 어떠한 형태이든 산 자의 하나님입니다.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은 역시 신령한 몸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종말론적인 삶의 충실성에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복잡한 이 지구에 고대인들의 사고와 같은 부활 이해는 참 난감합니다.
• 함께 나누는 이야기
쓰고 버리는 시대 이 시대의 풍조를 한마디로 규정하라면 ‘쓰고 버리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비만이 아닙니다. 유행은 물론이고 예술사조와 경향까지도 참으로 빨리 바뀌고 있습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미래의 충격』에서 낭비의 사회를 진단했습니다. 그는 영속성이라는 이상이 무너지고 일시성으로 이행이 일반화되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유행어의 교체가 점점 빨라지고 인스턴트식 명성이 잠깐 사이에 오르내립니다. 지식과 정보의 가치 유효 기간이 아주 짧아 졌습니다. 심지어 베스트셀러조차 한 달 이상 가는 것이 드물 정도입니다. 광고도 이미지와 상징 기법으로 메시지를 전합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서도 사이버 공간 어느 한곳에 편안하게 머물지 못합니다. 그 결과 우리 내면을 향한 진지한 물음이 사라졌습니다. 물음이 없으니 진지한 대답도 듣기 힘듭니다. 현대인이 느끼는 고통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버리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보세요.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습니다.” -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