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18.12.29 22:35

2018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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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립니다!

1. 오늘은 아기 예수의 오심과 나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성탄 후 제1주일 및 송년주일입니다. 변치 않는 은혜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한 해를 정리하는 주일이 되시기를 빕니다.

2. 송구영신예배가 내일 밤 11시 30분에 열립니다. 예배로 올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으시는 복된 시간에 꼭 참석하시고 새해의 기도제목과 함께 신년감사헌금도 정성껏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송구영신예배 전 저녁 8시 30분에 당회 및 구역회를 합니다. 예결산, 임원선출, 위원회 사업계획 보고 등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회원 자격과 관계없이 모든 교우들이 함께 참여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당회를 마치면 송년행사를 하겠습니다.

4. 친교문화위원회에서 1월 4(금)~6일(일)에 '겨울놀이 : 제주 4.3 역사탐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참여하실 분들은 오늘 공동식사 후에 남아주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는 남기평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해 주십니다.

5. 1월 14(월)~16일(수) 오전 9시 30분부터 진관교회에서 은평동지방 등급대사경회가 열립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의 참여를 환영합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마커그룹 송명빈 대표가 사무실에서 직원 양모 씨를 폭행하는 영상이 공개되었습니다. 폭행 뿐만 아니라 폭언에 살인 협박까지 하는 끔찍한 일이 폭로되었음에도 반성은커녕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직원의 인격까지 소유한듯 노예주처럼 군림하는 기업인들의 갑질이 근절되고 인간존중의 기업문화로 바뀌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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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주일에야 깨닫게 되는 것

 

어느덧 올해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합니다. 이렇게 마지막 주일이 한 해 두 해 차곡차곡 쌓이면 언젠가는 좋은만남교회에서의 저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게 되겠지요. 그리고는 제 인생의 마지막 주일도 마주하는 날이 오겠고요. 그렇게 맞이하는 어떤 의미의 마지막 주일의 기분은 어떨지 상상해봅니다. 지금은 마지막 주일에는 감사하면서도 새로 시작하는 첫 주일에는 무엇인가 새로워져야 한다는 강박적 부담감...을 느낍니다. 그 어떤 마지막 주일에는 결국 홀가분해지고 자유로워 지겠지만 그때까지는 누에고치를 뚫고 나오려는 자비의 몸부림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예배영성위원회의 회의 내용을 보고 우리교회의 파송찬송이 2년동안 바뀌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오래 불렀으니 이제 바꾸자는 말이 나올 때도 되었지요. 예배시간에 뜨겁게(!) 중보기도를 하자는 의견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주보도 디자인을 좀 산뜻하게 바꿔보고 새로운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어디 새롭게 바꾸어야 할 것, 바꾸고 싶은 것이 그것들뿐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이 그대로인 것을 깨닫고 아차! 합니다. 바로 저입니다. 저의 인성과 품성, 습관과 생각, 태도와 마음이 그대로인데 노래 바꾸고 디자인 바꾸고 주제 바꾸고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이 드니 답답합니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새롭게 마음 먹고 바꾸고 고치자고 했던 것이 얼마나 많았던가요! 특히 혀에 파수꾼을 세우자며 말 좀 조심하자는 결심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그것뿐이겠습니까!

예수님이 나를 위해 그렇게 애쓰시고 기도하시는데 나의 경건한 성장은 왜 이리 답답할까요. 더 나빠지고 악해지는 사람도 많으니 현상유지도 큰 은혜인 줄은 알지만 절 위해 기도하는 많은 이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마지막 주일을 보내며 내 속사람이 좀 더 성숙하기를 기도해 봅니다. 다시 한 번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를 생각하면서 사는 새해가 되기를 기도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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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민과 함께하는 성탄절연합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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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에는 성탙절을 맞아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성탄절연합예배에 함석하였습니다. 많은 인원이 참석하지는 못하였지만 뜻 있는 분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올해 주제는 난민이었습니다.  얼마 전 한국정부로부터 어렵게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두 명의 예멘인이 나와서 '우리를 난민이 아니라 똑같은 인간으로 봐 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그들이 난민이 된 것은 그들 자신의 선택이나 그들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인 원인 때문입니다. 인구 20만 명 당 한 사람을 난민으로 받아들여주는 한국의 폐쇄성도 어서 속히 바뀌기를 바랍니다. 이 땅의 모든 난민들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 겨울놀이로 4.3 역사탐방을 떠납니다”

 

이번 겨울놀이는 친교문화위원회 주관으로 제주도 4.3 역사탐방을 1월 4

(금)~6일(주일)에 진행합니다. 4일에는 제주 관광, 5일에는 4.3 역사탐방, 6일에는 자유시간으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특별히 역사탐방 관련하여 제주 다크투어에 해설을 의뢰하였다가 원하는 일정과 맞지 않아 매우 죄송스럽게 취소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먼저 공부하고 가서 스스로 안내하는 방식으로 탐방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주일 오후에 탐방지를 선정하고 발제 및 안내를 할 사람을 정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자발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 사회성화를 위한 역사기억

 

2014년 1월 1일    "대한민국에서 백열전구 생산 및 수입이 금지되다"

백열전구는 높은 온도를 이용하여 빛을 내는 전기 조명장치로 1879년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과 영국 조셉 윌슨 스완이 발명하여 한국에는 1887년 경복궁에 최초로 설치되었다. 백열등은 진공의 유리구에 질소나 아르곤을 넣고 텅스텐으로 필라멘트에 전기를 통하게 하여 빛을 내는 구조이다. 약 130년간 인류의 삶에 빛을 주었으나 전기 에너지의 95%를 열로 낭비하는 대표적 저효율 조명기기라는 오명을 얻고 2007년부터 미국, EU, 호주 등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단계적으로 퇴출을 추진하였다. 대한민국도 이에 발맞춰 산업통상자원부가 고효율 조명기 보급 확산과 국가에너지 효율 향상을 위하여 2008년 12월에 백열전구를 퇴출시키기로 발표하고 2014년 1월 1일부터 생산 및 수입을 전면 금지시켰다. 에너지 효율이 10~15 lm/W에 지나지 않는 백열전구는 백열전구 대비 약 82%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60~80 lm/W의 LED 램프에게 자리를 양보하게 되었다. 백열전구가 LED 램프로 완전히 대체되면 국가적으로 연간 약 1,800GWh 이상의 전력이 절감되고 전력부하 감소효과도 200MW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무심하게 사용하는 전등이지만 이 선택과 결정은 환경생태계의 부담을 덜어주는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으로 큰 의미가 있겠다. 

출처 : 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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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적으로 존재하는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박성중 목사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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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은 모르지만, 줄을 가진 악기들을 배경으로(?) 호흡의 악기들이(?) 목신의 오후를 연주합니다. 하루의 시작에 권하는 음악은 아니지만, 곤두선 아침에는 나름.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로 만든 드뷔시의 곡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입니다.

 

“사물의 이름을 말해 버리는 것은 시가 주는 즐거움을 앗아가는 것이 된다.”

스테판 말라르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앉아 기도하는데 떠오르는 좋은만남의 형제자매는 단지 이름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시적으로 존재하는 이들입니다. 가진 단어들로 표현할 수 없는 귀한 사람들.

 

드뷔시로 목신의 오후를 그리며, 한 해를 보내며 또 새해를 맞으며, 이렇게 가슴에 앉은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 2019년을 맞이하며”

 

남기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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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이 지나가고, 새로운 2019년을 맞이합니다. 

세월이 야속할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갑니다. 2018년도 마찬가지로 2019년도 여러 계획을 세우고, 이루고자 하는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처음 마음 변치 않고, 2019년도 힘차게 시작하고, 2018년에 이어 2019년도 원하고 바라는 계획들이 이루나가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달력상으로는 2018년을 끝내고, 2019년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 같지만, 우리네 삶의 실상은 연속되는 삶에서 변화를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가짐에서 시작하지요. 곧 마음먹기에 따라,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고, 누군가는 내일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다가오는 새해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2018년을 잘 마무리하기를 또한 바랍니다. 특별히 신앙인의 삶을 더 가열차게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탐구해나가는 좋은만남교회 성도님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018년도 더할 나위 없었지만, 2019년은 진심으로 진실 되게 사는 여러분들이 될 거라 믿습니다. 

 

 

“'마지막'은 '맞이 막'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관택 목사

 

시나브로 지나가는 시간들을 흘려보내기만 한 것 같은데 어느덧 2018년 마지막 주일을 맞이합니다. 마치 한쪽 귀퉁이가 터진 모래 주머니를 들고 길을 가다가 문득 뭔가 이상해서 손에 쥔 주머니를 바라보니 어느새 텅 빈 주머니만 허탈하게 들고 서 있는 것만 같은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뒤를 돌아보니 그동안 흘려 왔던 모래의 흔적들이 삐뚤빼뚤 갈지자처럼 휘청거렸던 우리의 발걸음을 적나라 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올 한 해 우리는 참 비틀거리며, 힘겹게 걸어왔습니다. 세상의 잔혹한 풍경에 치를 떨었고, 각 자에게 닥쳐왔던 어려움 때문에 정신을 못차릴 만큼 큰 슬픔에 젖어 있을 때가 있었지요. 무력함과 두려움에 남몰래 무릎 꿇었던 하루하루도 선명하게 생각납니다. 

 때론 이 여정 중에 반가운 사람을 만나 함박웃음을 지어보기도 했고, 아름다운 풍경을 넋 놓고 바라 볼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오르막 길이라고 불평했고, 내리막 길이라고 조마조마해 했으며, 평평한 길이라고 지루해 하지 않았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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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가 걸어온 길의 행보를 자세히 돌아보니 어째저째 앞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다행히도 뒷걸음질 치거나 여정을 중단하지 않고 꾸준히 앞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이 꾸준한 흔적이 바로 은혜입니다. 비록 비틀 거릴지라도 정의와 평화라는, 진리와 생명이라는 '앞'을 향해서 걸어온 우리의 발걸음이 바로 희망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시간 속에, 또 우리의 걸음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항상 동행하셨습니다. 

 

서로 마음을 합하여 교회를 리모델링했던 시간들, (비록 헛탕은 쳤지만) 고수정 이재원 성도님의 집에 다같이 수해복구 하러 갔던 일, 농활을 하며, 나들이를 하며 함께 느꼈던 아름다운 풍광들, 기본 3시간을 넘겨가며 서로의 삶에 귀 기울이고 응원하고 기도했던 묵상 기도회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 순간들이 쌓여서 우리 좋은만남공동체의 희망의 싹이 되었습니다. 이 싹은 다가오는 새날에 더욱 자라나고 소중한 열매들을 맺어 하나님과 더불어, 이웃과 더불어 더욱 좋은만남을 이루어 갈 것입니다. 

 

'마지막'은 순우리말 '맞이 막'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하기에 마지막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시간을 뜻합니다. 2019년 우리를 향해 새롭게 다가오는 은혜의 시간을 맞이하는 좋은만남 공동체와 지체들에게 하나님의 평화와 희망이 함께 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의 비틀거리지만 앞을 향해 멈추지 않는 그 소중한 발걸음들을 응원하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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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교회 II (4)

6. 우리는 예배와 친교, 교육과 봉사, 전도와 선교를 위해 하나가 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믿습니다.

 

2. 교육과 봉사(2)

     우리는... 교육과 봉사... 위해 하나가 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믿습니다.

 

현대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집중하며, 성인이 되면 교회학교를 졸업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교회교육은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교인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초대 그리스도교인과 같이 1세기의 그리스도인이 아닌 21세기의 그리스도인이다. 시대의 변화는 상황의 변화를 가져오고 상황의 변화는 새로운 성경 해석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분이므로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읽어가기 위해서 성인을 포함한 모든 교인은 교육을 필요로 한다. 교회는 새로운 상황에 적합하게 성경을 새롭게 가르쳐야 하고 교인들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제시하여 주는 교육적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교육에 있어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 성경공부이다. 성경이 전제하고 있는 세계관은 2세기 이전의 세계관이다. 예를 들어서 성경은 천동설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모두 지동설을 믿고 있다. 천동설에 근거하고 있는 모든 본문들은 지동설을 근거로 해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땅을 정복하라’는 창세기의 말씀은 생태학적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으므로 이 위기의 극복을 위하여 ‘땅을 관리하라’는 말씀으로 새롭게 읽어가야 한다. 이와 같이 새로운 시대에 적합하게 성경을 읽을 수 있고,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교회 안에서 성경공부가 이루어져야 한다.

두 번째로 중요한 교회교육은 교리공부이다. 감리교회는 감리교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신앙과 교리를 계속적으로 교육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나 감리교의 교리와 신앙에 대한 공부를 통하여 다른 교파에 대하여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박종천은 열린 교육을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감리교회가 젊은이와 성인을 위한 열린 교육을 시도하려면, 한편으로 감리교회의 본질적 교리인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경륜에 관한 웨슬리적 해석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21세기의 세속적 사회를 살아가는 책임적 그리스도인의 비판 의식의 함양이 필요하다.”

세 번째로 교회의 교육은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를 발견하고 활용하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신령한 선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의 정도에 맞게 예언할 것이요,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쓸 것이요, 나누어 주는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은 열성으로,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로마서 12:6~8)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적합한 은사/달란트를 허락하신다. 교회는 교육을 통하여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은사와 달란트를 발견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반대로 우리는 교회의 교육을 통하여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헌신해야 한다.

참다운 ‘앎’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도 아는 것이므로 교육은 실천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교회의 실천은 디아코니아로서 봉사이며 디아코니아는 교회의 핵심적인 기능 중의 하나이다. 디아코니아의 원래 의미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베푸는 봉사이다. 그리스도교 봉사의 원형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희생으로 섬기며 봉사하는 삶을 가르치셨고 그렇게 살아가셨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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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홍 목사의 책 [하나님이 내시는 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심리학자들이 신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테마로 하여 한 가지 실험을 했다. 먼저 신학생들에게 왜 신학을 공부해서 목회자가 되려 하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목회자가 되려 한다고 했다. 그들에게 각자 선한 사마리아인 본문을 가지고 짧은 설교를 준비해서 캠퍼스 내의 한 건물 어느 방으로 가서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그 설교를 하라는 과제를 주었다. 그리고 심리학자들은 연극배우 한 명을 고용해서 학생들이 가는 길에 누워 있게 했다. 아주 가난하고 병약해 보이는 모습으로 누워 지나가는 사람에게 들릴 만큼 신음 소리를 내게 했다. 

심리학자들은 선한 사마리아인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준비한 신학생들이 대부분 중간에서 멈추고 그 병약한 사람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험에 변수가 한 가지 있었는데, 설교하러 출발하려는 학생들 일부에게 “자네는 늦었네, 지금 빨리 가지 않으면 시간에 못 맞출 걸세”라고 말했고, 다른 일부에게는“아직 시간이 넉넉히 있으니까, 지금 출발해서 여유 있게 걸어가도 될 걸세”라고 했다. 그 결과, 늦었으니 빨리 가라고 한 신학생들 중 10%만 중간에 병약한 사람을 돕기 위해 멈춰 섰다. 어떤 학생들은 길에 누워 있던 그 병약한 사람을 거의 밟고 넘어갈 정도로 급하게 달려갔다고 한다. 이에 반해, 시간이 넉넉하다는 말을 들은 신학생들은 무려 63%나 멈춰 섰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아무리 남을 돕겠다는 의도로 신학을 하고 있는 목회자 후보생들이라 해도, 아무리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로 설교를 준비할 정도로 잘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실제 삶의 실천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차이는 시간의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 였다.

 

조급함은 우리 안의 사랑과 동정심을 죽입니다. 아무리 선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해도 바쁘고 조급하면 무감각해지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반응할 여유가 없어집니다. 

[페이스북 예화공작소&희망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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