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18.12.15 18:14

2018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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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립니다!

1. 오늘은 아기 예수의 오심과 나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강림절 제3주일입니다. 우리에게 참된 길을 안내하시고 삶과 죽음, 부활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신 아기 예수님의 나심을 경건하게 기다리고 맞이하시는 절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공동식사 후에 각 위원회 별로 모임을 갖고 내년도에 추진할 사업을 논의, 제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3. 다음 주일로 예정되었던 당회는 31일 송구영신예배 전 저녁 8시 30분에 당회 및 구역회로 확대하여 열겠습니다. 회원 자격과 관계없이 모든 교우들이 함께 참여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4. 남규현 어린이가 지난 금요일(14일)에 퇴원하였습니다.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5. 친교문화위원회에서 내년 초 겨울놀이를 제주도 4.3 역사탐방으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진행 여부를 결정하겠습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지난 11일 새벽,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규정과 다르게 홀로 컨베어벨트를 점검하던 스물네 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비용절감을 위해 외주업체에 하청을 주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는 시스템이 또 한 청춘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그의 영혼을 쉬게 하시고 착취와 탐욕의 시스템을 바로 잡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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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를 잘 살 수 있었던 이유

 

한 해를 마감하면서 돌아보니 그럭저럭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내년 목회계획을 세우고자 끄적이며 보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올 한 해 잘 살았으면 내년에는 더 잘 살아야 하고 올해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행사도 좌충우돌 했던 부분이 많은데 뭔가 색다르고 개선되고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깁니다. 그래서 마음은 앞서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난감하기만 합니다.

담임목사로서, 그것도 직업을 갖고 외부활동을 하는 목사로서 교회와 교우, 교우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은 아닌가, 직장 때문에 교회일에 소홀하지는 않았나, 항상 두렵게 반성하고 자책하게 됩니다. 게다가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몸과 정신도 예전처럼 순발력 있게 빠릿빠릿하지 않은 것도 느낍니다. 그래서인지 모든 것이 다 제 탓인 것 같아 미안하고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많습니다. 뭔가 더 나아지고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저를 괴롭히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사실 그렇게 끙끙댄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지난 한 해 우리 교회가 잘 굴러가고 교우들이 잘 살아주신 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꼽으라면 교우들의 참여와 협력 때문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하겠습니다. 결국 제가 한 일들은 고민하고 끙끙대고 주저하고 머뭇거린 것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담임목사가 이 지경인데도 교회에 활기가 넘치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니 기적입니다. 기적을 보여주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올 한 해 보여주신 교우들의 헌신과 협력을 기억하면서 보다 겸손하게 신뢰하는 마음을 갖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교우들의 헌신이 목회의 동력이 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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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를 정식으로 출범하겠습니다 ”

 

지난번에 우연히 사랑방 화이트보드에 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범주를 나누고 이름을 적어 보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이 구조가 참 민주적이고 교우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선교회, 여선교회 등등의 감리회 공식 기관은 우리 교회 상황에 맞지도 않는 것 같은데 위원회는 지난번 연합 운동회에서 조직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니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정식으로 위원회를 조직하여 교회 운영 전반에 적용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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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후에 위원회 모임을 갖고자 합니다. 위원회 변경을 원하시는 분은 알려주시고 모임을 통해 신년에 반영할 사업 목록과 적정 예산을 책정해서 주시면 목회계획과 예산안 수립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와 의견을 기다리겠습니다.

 

■ 사회성화를 위한 역사기억

 

1902년 12월 16일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 탄생"

유관순(柳寬順, 류관순) 열사는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고흥(高興)이다. 일제 강점기에 3.1운동으로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을 천안에서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사망하였다. 1916년 미국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당에 편입, 1919년에 이화학당 고등부에 진학하였다. 3.1운동과 3월 5일의 만세시위에 참여하고 총독부의 휴교령으로 천안에 내려와 교회와 학교 등을 규합한 후속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의 총탄에 의해 부모를 잃고 본인은 체포되어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 받고 항소,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아 복역 중 일제의 교도소 내 모진 구타 등 가혹행위로 인하여 형기를 3개월 남긴 1920년 9월 28일에 사망하였다. 주일 대사관의 자료에 따르면 '유관순, 옥중에서  타살(打殺)'로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유 열사가 사망하여 이화학당 월터 교장이 형무소에 시신 인도를 요구하였으나 거부당하자 옥중 사망 소식을 국제여론에 알리겠다고 강력 항의, 시신을 인도 받아 1920년 10월 14일에 정동감리교회에서 장례예배를 드리고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하였다. 그러나 1936년 택지 조성 등의 이유로 공동묘지가 이장하는 과정에서 무연고묘로 처리, 유실되어 현재는 가묘만이 고향 근처에 있다. 좋 

출처 : 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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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기평 목사

 

둘째 날, 오후에는 성명서를 작성할 위원들을 선정하고, 원탁회담의 취지와 앞으로의 과제를 설정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세계교회가 어떻게 협력하고, 한반도 평화문제를 꾸준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지를 고민했습니다. 물론, 한반도에 속한 한국교회가 당사자성을 가지고 전심전력을 다해야겠지만, 우리가 인지하듯이, 더 이상 한반도의 문제는 남과 북, 북과 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6자회담 혹은 4자회담 혹은 3자회담으로 이 난국을 헤쳐 나가듯이, 세계교회도 협력하고, 각 자의 자리에서 평화를 위한 노력을 다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반도의 평화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에도 한 걸음 더 바짝 다가설 수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 

 

두 시간 정도의 회의가 끝난 후, 닫는 예배가 있었습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 속에서 회의를 진행했기 때문에, 시작과 끝이 빠르게 끝나는 듯 합니다. 그래서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닫는 예배는 GBGM 예배실에서 진행되었고, 애틀란타 한인교회에서 주관해주었습니다. 예배에 앞서서, 가야금 연주 등 여러 한국전통공연이 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에는, 성명서 위원회로 모였고,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성명서를 확정하고, 다짐에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 원탁회담은 한국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성명서 일부를 나누려고 합니다. 

 

선  언

 

우리는 고백한다. 우리는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남과 북의 분단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평화를 추구하지 못했음을 고백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용서하고 사랑하라 하신 원수를 종종 악마화 했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향해 희망 을 품기보다는 의심 했다. 우리는 환대보다는 적대감을 가졌다. 우리는 회개하며, 우리의 잘못을 은혜와 화해를 위한 기회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변혁의 용서를 간구한다.

 

우리는 믿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가 이념과 종교의 경계를 가로질러 모든 불의한 자들과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정의로 인도하심을 믿는다. (로마서 1:18; 3:30-21)

 

올해의 한반도 평화를 향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생명의 하나님을 선택할 것인지, 죽음의 우상인 핵을 선택할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 있다.

 

지난 70년 동안 남과 북은 적대적인 분단의 벽으로 나뉘어, 적대적 공생의 비극을 극복하지 못했다. 한쪽은 다른 한쪽에 대한 적대감 없이 존재할 수 없어 보였다. 남한의 독재자들은, 권위주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을 당면한 위협으로 간주했고, 북한은, 미국의 잠재적 공격 가능성을 구실로, 전쟁체제로 주민들을 통제하고, 핵무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한민족의 포로 상태를 끝낼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반도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 위하여 두 손을 모을 때, 하나님은 분단시대를 지배하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골로새서 2:15) 시킬 것이다.

 

우리는 약속한다. 우리는 “둘을 하나로 만드시는 그리스도의 평화”(에베소서 2:14)를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 한다.

 

우리에게 이 약속을 이행할 때가 왔다. 한반도의 분단 체제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매우 중대하고 시급한 시간이다. 동시에, 지난 한 세기 동안 두드러진, 특별히 미국에 의해 보급되었던, 지정학적 세계질서가 일부 지역에서 새 방향과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새로운 야망에 자극받은, 이러한 변화는 틀림없이 평화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진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긴급한 순간은 하나님 변혁의 구원을 위한 기회다. 분단의 낡은 구조와 권력의 대체를 촉진하면 한반도 위에 꽃을 피울 그리스도의 평화를 가능하게 할 것이 다. 이 과정에서, 평화와 번영을 모든 사람이 누릴 것이며, 우리는 놀라움으로 “아아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도다. 위력의 시대가 거하고 도의의 시대가 래하도다.”(‘1919 기미 독립선언서’ 중에서 )라고 외칠 것이다.

 

우리는 헌신 한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헌신하여, 남북한을 너머 동북아시아와 나아가 전 세계에서 상생의 문화를 창조하도록 도울 것이다.

 

남과 북의 평화와 통일은 한반도 주변의 4대 강국과 그곳에 살고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 공동체 안에서 정의, 평화, 그리고 생명을 이루는 상생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징표가 될 것이다. 분단 체제하의 남한의 자본주의나 북한의 사회주의는 기형적 상극의 경제를 낳았다 .

특히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타격을 입은 북한경제는 이후 지속된 여러 경제제재로 인하여 더욱 심한 타격을 받았고, 북한 주민들의 삶을 극도로 피폐하게 되고, 억압받게 했다. 지난 몇 년간 미국이 주도한 이른바 ‘최대한의 압박’ 정책은 가장 필수적인 인도주의적 지원마저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비난 한다. 우리는 지속적이며 강화되는 북한에 대한 국제적인 제재와 미국의 여행 금지를 비난 한다. 이러한 조치는 사람들이 서로 신뢰를 쌓을 기회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만남과 인도주의적 물자와 인도주의적 지원마저도 불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국제연합은 경제제재를 완화하고, 미국은 여행 금지를 취소하여 인도주의적 지원이 즉각 재개될 수 있기를 요청 한다.

 

우리는 응원한다. 우리는 판문점과 평양에서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의 공동성명과 2018년 6월의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공동성명을 분명히 응원한다. 그리고 그 합의들을 당장 책임 있는 태도로 신실하게 실행할 것을 요청 한다.

 

우리는 존중하고 지지한다. 우리는 전 세계적인 비핵화 요구에 부응하여,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국전쟁의 긴장과 적대감을 종식시키기 위한 모든 합의와 노력을 존중하고 지지한 다. 우리는 미국과 국제 사회가 한반도에서 차근차근 비핵화를 이루는 것을 포함한, 남북한의 자결권을 존중 해줄 것을 촉구 한다.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 추구를 향한 필수 불가결한 첫 걸음이기에, 즉각적이고 공식적인 한국전쟁의 종전선언을 촉구 한다.

 

평화를 위해 나아가며, 우리는 역사적인 198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선언”에서 채택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인도주의, 민족 구성원 전체의 민주적 참여 등 남북통일 5원칙을 재확인 한다. 단계마다 종합적으로 염두에 둔 이 원칙들은 남북 간의 대화가 전진 되도록 돕는데 오랫동안 효과적으로 입증되었다. 우리는 이 원칙들이 지금도 필요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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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교회 II (1)

6. 우리는 예배와 친교, 교육과 봉사, 전도와 선교를 위해 하나가 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믿습니다.

 

1. 예배와 친교(1)

     우리는 예배와 친교... 위해 하나가 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믿습니다.

 

교회의 사명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예배여야 하고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예배는 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교리적 선언을 해설하면서 정경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 교회는 예배를 중심하여야 한다. 그리스도 교회의 목적은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며 기도와 화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우리의 믿음과 귀의와 복종의 정신을 나타내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 이름에 어울리는 영광을 주님께 돌려드려라. 거룩한 옷을 입고 주님 앞에 꿇어 엎드려라.”(시편 29:2)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구원자이시므포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 우리들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홍현설은 예배에는 두 가지 근본 운동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 하나는 인간으로부터 하나님에게로의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로의 운동이다. 전자에 속한 것은 기도, 귀영, 자기 헌신의 상징으로서의 헌금(물) 등이다. 후자에 속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성경 낭독과 설교를 통하여 인간에게 들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차양과 설교와 기도다.

현대교회의 예배에서 찬양/음악의 자리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출애굽 사건에서 홍해를 건넌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하고, 주님이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련다.”(출애굽기 15:2) 신약에서도 하나님께 노래하며 찬양할 것은 명령한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여러분의 가슴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찬송하십시오.”(에베소서 5:19) 존 웨슬리는 찬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찬송시를 썼다. 웨슬리는 홀리클럽(Holy club) 시절부터 찬송가 부르기를 장려하였으며 미국의 조지아에서 모라비안들의 찬송가 부르기에 의해 크게 감명을 받았다. 조지아에서 영국으로 돌아온 이후 웨슬리는 찬송가 부르기가 복음적 부흥 운동과 집회를 위해 매우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웨슬리에 따르면, 찬양은 예배에서 영감을 일으키고, 심령을 깨우고, 믿음을 강화하며, 소망을 밝혀주고,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불타게 하고 증가시키는 방편이다. 그는 찬양을 하는데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하였는데 그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부르라. 자신이 부르는 모든 가사에서 하나님께 집중하라. 당신 자신이나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목표를 두라. 자신의 마음을 소리 속에 사라지게 말고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라. 당신의 찬양이 주님이 인정하시고 상 주실 만한 것이 되게 하라.”

웨슬리는 주일 공동예배를 위한 설교에 있어서 성서일과에 따른 성서봉독을 중요시하였다. 설교를 통하여 회중을 초청하고, 죄에 대해 책망하고,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양육하는 원칙을 따를 것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참된 설교는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확신시켜야 하고(제사장적 직무), 동시에 우리가 죄인임을 깨우쳐야 하며(예언자적 직무), 그리스도의 형상 안에서 성장하도록 이끌어야 한다.(왕적 직무)

기도에 있어서 웨슬리는 즉흥기도를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바르게 사용된 공식 기도는 하나님 앞에 살아 있는 모든 자들에게 유익한 양식으로 보았다. 즉 공중예배에서 즉흥기도만을 사용할 경우 개인이 편견이나 독선에 대한 객관적인 시험을 회피함으로 은혜 안에서 책임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공중예배에서 사용되는 여러 공식적 기도들, 곧 공동의 죄 고백, 탄원, 중보기도, 감사의 기도 등은 모두 유익한 은혜의 방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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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는 오랜 수행 끝에 드디어 검은 띠를 받기 위해 스승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동안 각고의 노력을 해온 결과였다. 그런데 스승이 제자를 보며 말했다. “너는 ‘검은 띠를 수여하기 전에 한 가지 시험이 남아 있다’ 제자는 스승과 직접 대련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 시험은 스승의 질문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다. “너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검은 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냐?” 제자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제 수련 과정의 끝이며, 제가 오랫동안 노력한 결과로 주어지는 보상입니다.” 스승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는 아직 검은 띠를 받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 1년 후에 다시 오너라.” 

1년 후 제자는 다시 스승 앞에 무릎을 꿇고 검은 띠 수여를 기다렸다. 그러자 스승은 또 질문을 했다. “검은 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냐?” 제자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뛰어남의 상징이며, 우리 무술에 있어서 최고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만족스런 대답을 얻지 못한 스승은 또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는 아직도 검은 띠를 받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 1년 후에 다시 오너라.” 

1년 후 제자는 다시 스승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번에도 스승은 또 한 번 묻습니다. “검은 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냐?” 제자는 겸손히 말했다. “검은 띠는 시작을 의미합니다. 자기 극복, 꾸준한 노력, 보다 높은 수준의 추구라는 영원한 여행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스승은 그 대답에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맞다. 이제 너는 검은 띠를 받고 너의 노력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구나.”

 

완성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노력의 결과로부터 얻는 것을 기초로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나 또한 그 바턴을 이어 다른 이들에게 유익한 것을 남겨야 합니다. 

우리는 덕의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 만을 위해 살 수는 없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아 덕을 베푼 이들에게 함께 손을 잡아야 합니다. 손을 뿌리치는 사람들,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는 사람들, 손을 휘저으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 그럼에도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페이스북 예화공작소&희망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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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5Dec
    by 좋은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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