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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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는 명절

성서본문 ; 누가복음 17:20-21

20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을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들어가며 : 민족의 큰 명절인 추석을 보냈습니다. 추석의 유래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신라 유리왕이 왕녀 두 사람을 시켜 6부의 여자들을 반으로 나누어 7월 보름달부터 6부의 뜰에 모여 베를 짜는데, 을야(乙夜)에 이르러서야 헤어지곤 했습니다. 이렇게 하길 8월 보름날까지 하여 그 성적을 평가하여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편을 대접했습니다. 이 때 노래하고 춤추며 온갖 놀이를 다 했는데 이를 "가배"라 했답니다. 이 "가배"가 오늘날 「한가위」라는 뜻의 「가위」에 해당하는 그 당시 한자의 음차표기로, 가을을 초추, 중추, 종추 3달로 나누었을 때 음력 8월이 중간에 들어가는 가을의 가운데 즉 "중추"의 우리말 표기입니다. 즉, 「한가위」는 한"이라는 "크다"라는 뜻과 "가위"라는 가운데라는 뜻이 모여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추석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귀한 명절입니다. 이 귀한 날을 즐겁고 감사하게, 그리고 풍요롭게 보내셨기를 바라며 함께 모여 감사하는 곳에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과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민족명절인 추석을 맞이하여 고유한 우리 명절과 외래신앙인 기독교의 정신이 어떻게 만나는가 하는 것을 말씀을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신앙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구원을 받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무엇입니까? 아마도 행복이 아닐까 합니다. 영혼과 육신이 고루 누리는 행복, 말 그대로 진짜 행복이 바로 구원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행복이 구현된 나라, 구현된 상태를 하나님 나라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어떤 모습이 아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며칠 전 선배 목사님 댁에 갔다가 책꽂이에 ‘내가 본 천국’이라는 책이 꽂혀 있어 잠시 펼쳐보았는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등의 보석이 계속 쏟아져나오는데 그 보석은 구원 받은 사람들의 집을 짓기 위한 자재로 쓰인답니다. 그것으로 집을 짓는 공사가 계속되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집이 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대목을 보면서 피식 웃었습니다. 과연 하나님 나라에 보석이 돌멩이 이상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과도 모순이 되지요.

또 하나님 나라는 구체적으로 어떤 체제, 국가형태의 모습도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성시화운동을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시장 시절에 서울시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했다가 구설수에 올랐고 얼마 전 타개하신 CCC 전 총재 김준곤 목사도 국제성시화운동 총재인가 그렇더군요. 그러나 이것도 역시 성서에는 위배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설령 한 나라가 기독교국가가 된다고 한들 그것이 과연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라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은 기독교국가 혹은 준 기독교국가이지만 우리가 보는 모습은 하나님 나라와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가 무슨 왕조나 국가, 정당이 정권을 장악하고 갑자기 어떤 나라를 창건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식으로 혹은 어떤 걸출한 영웅과 같은 존재가 나타나서 휘어잡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는 무엇이고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 너희 안에’ 있다고 단언하십니다. 이 말은 바로 인간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찾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누구나 다 공동체는 있습니다. 가족공동체, 지역공동체, 취미공동체, 살림공동체 등등이 있지만 모든 이들이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고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공동체 안에 있기도 하지만 또 없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떤 공동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을까요? 서로를 이해하고 용납하고 받아들이며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고 나누는 공동체에 바로 하나님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답니다. 그런 공동체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가장 작은 단위가 바로 가족입니다. 하나님이 엿새의 창조사역을 마치시면서 마지막 마침표를 찍은 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라는 가족공동체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 모습이 보시기에 ‘심히, 정말, 대단히’ 좋았다고 하십니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 어우러져 함께 보듬으며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하나님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의 아픔과 실수를 공유하고 보듬지 못할 때에 하나님 나라는 깨집니다. 아담이 하와에게, 하와가 뱀에게 잘못을 떠넘길 때 하나님 나라는 깨지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즉 실수와 아픔을 나누고 보듬을 때가 바로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추석 명절은 우리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 발견의 기회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명절이 되면 가족들이 모여 재산싸움을 하고 이런저런 신경질을 부리고 옛날 얘기로 다투기도 합니다. 처녀총각들은 시집장가가라는 말로 스트레스만 받고 옵니다. 다른 집 자녀들과 비교되는 중고등학생들은 명절이 지겹고 명절증후군 때문에 주부들은 삭신이 쑤시는 후유증을 앓습니다. 상처만 더 쌓이고 고통만 증가되는 명절이라면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지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추석의 취지에도 맞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도 크게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 명절이 가족들 간에 서로의 아픔과 실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될 때 하나님 나라의 체험이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아픔과 슬픔, 실수와 후회가 있습니다. 부자이건 가난뱅이건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7-80년대를 살아온 우리의 부모세대에게도 아픔은 있습니다. 경제발전의 틈바구니에서 자라난 우리 세대, 그리고 경제발전을 이룩한 다음세대들 역시 나름대로의 아픔과 고독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 부모님에 대한 애절한 감정들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하십니다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성장과정과 환경을 이제는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그동안의 나의 반응은 반항과 거부, 질타였지만 이제는 이해와 화해입니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대해서 오히려 연민이 들고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요즘은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것이 죄송하고 뵐 때마다 야위어가는 부모님의 모습에 저의 지난시절 치기어린 반항이 후회가 됩니다. 그래서 만나면 반갑고 즐겁습니다. 지난 삶에 대한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서로를 인격적으로 끌어안고 화해하고 위로하고 격려할 때 행복을 느끼고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너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가족의 틀을 넘어 이웃에게로 확장될 때 하나님 나라는 더욱 커지게 됩니다. 현대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한 구조 안에서는 더욱 많은 이웃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 이웃을 보고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을 보고 왜 그러냐고 묻자 한 목사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상처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상처와 고통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경험해본 적도 없으니 이웃의 어려움이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고 무감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가 상처가 없습니까? 아픔이 없는 인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누구나 다 상처가 있지만 감추고 외면하고 모른 체하고 거부하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하고 무한적인 경쟁에 내몰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독은 더욱 깊어지고 아픔은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장애)가 되어 결국 폭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듬고 나눌 때에 거기에는 전혀 반대의 현상, 하나님 나라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듯이 예수님은 법 없이 사신 분이셨고 법을 뛰어 넘으신 분, 아무런 죄도 짓지 않으신 무죄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를 다 자신이 담당하셔서 가장 처참한 방법으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 자신의 죄가 아니지만, 다른 이들의 죄이지만 마치 자신의 죄인양 그렇게 받아들이고 용납하셨습니다. 거기에 바로 구원의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바로 신앙의 본질,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명절이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고 살게 되고 누리게 하는 귀한 기회입니다. 가족과 이웃의 아픔과 슬픔의 마음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겨 상처를 함께 나누고자 할 때, 또 우리 자신도 우리의 아픔으로 불쌍히 여김을 받고 위로를 받고자 할 때 우리 삶은 비로소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가며 : 여러분은 초대 받은 사람들입니다. 추석이라는 귀한 민족의 명절을 통해서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가족과 이웃의 마음을 이해하고 용납하고 또 우리 자신도 이해와 용납을 받으면서 우리는 이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던 아픔과 슬픔, 상처가 오히려 화해와 회복의 기회가 되고 하나님의 위로를 얻게 되는 기회가 됩니다. 이 명절에 우리는 만나고 나누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고 행복한 구원에 이르고 또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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