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몇이, 이 말을 듣고서 말하였다. "보시오, 그가 엘리야를 부르고 있소." 36 어떤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을 신 포도주에 푹 적셔서 갈대에 꿰어, 그에게 마시게 하며 말하였다.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두고 봅시다."
깊은 절망에 빠지신 예수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고 외치시자 이 말을 들은 몇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고 조롱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해면에 신 포도주를 푹 적셔서 마시라도 들이댔습니다. 신 포도주는 일종의 포도초로 갈증을 해소하는 역할을 합니다. 죽음의 문턱에 선 예수님의 고통을 더욱 길게 하려는 의도로, 조롱하는 행위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자신의 죽음이건 타인의 죽음이건 죽음 앞에서 숙연해집니다. 아무리 악인이라 할지라도 죽음을 맞는 사람에게 일말의 동정심과 연민을 갖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조롱하고 그 고통을 지켜보는 것을 즐겼습니다. 이렇게 잔인할 수도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이웃의 아픔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공감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우리 역시 이웃의 아픔과 죽음 앞에 연민을 갖지 못하는 불감증이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봐야 하겠습니다.
† 부당해고를 당하고 거리에서 노숙투쟁을 하는 이들, 케이블카를 만들기 위해 파헤쳐지는 국립공원과 다양한 생물들, 빈곤으로 거리에서 생활하는 홈리스들, 사회적 관습으로 소외당하는 이들과 공감할 줄 아는 신앙인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