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한 일을 마땅한 방법으로
- 유혹받으시는 예수님(1)
1. ‘아는 것’이라는 것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학문(공부/성경을 읽는 것 등)의 목적이라는 것은 갈등을 불러 일으킨다. 일정한 지식이 쌓여
체계적으로 정리가 된 것을 ‘학문’했다, ‘공부’했다. ‘성경’을 보았다 라고 이야기 하기 때문이다. ‘안다’라는 것은 사실 그 지식을 이용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삼거나, 만나는 상대와의 대화나 설득을 위해여서라고 보다(물론 이 두가지 목적 다 중요하다) 아는 대로
살기 위하여 지식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하지만 세상은 이렇게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또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것도 역시 다르지 않다. 세상의 정치하는 사람들, 또 각 분야의 주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 역시, 무언가를 알고, 학식이나
학위를 쌓아가는 것이, 자신의 스펙, 아우라, 이력에 도움이 되고자 함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정확히 정리가 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성경, 좋은 책을 많이 읽음으로 무언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늘 같이 갈순 없지만, 알지 못하는 것을 행할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늘 깨달음을 위해 공부하고, 정보를 습득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2. 유혹과 바른 길
유혹의 정체와 그것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 나 스스로 아직 정리된 것은 없다. 바른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일수 있다. 다만 늘 생각하는
것은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큰 일’을 하기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바른일’을 하기 원하신 다는 것이다. ‘작은’ 예수가 되어라 하는 말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역으로 옳은 일을 소리 없이,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많은 사람들이(그렇게 소리 없이 살아가기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진정 ‘예수’다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많은 사람들이 결국 그나마 이렇게 세상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도 깊은 의미를 안고 있다. 사실 남보다 뛰어나고자, 혹은 그래도 뭔가를 쌓아야지 하는 생각과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진보의 노력을 게을리 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고 패자보다 승자가 많은 세상보다, 승패가 아닌 함께 살아나감으로 윈-윈을 이룰수 있는 경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그럴려면 룰을
새로 짜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복지’는 ‘룰’을 새로 짜는 것이 아니라 패자에게 ‘개평’(도박에서 진 사람에게 주는 차비나 위로금 정도)을
더 많이 주자는 논리이다. 그러면 ‘규칙’을 새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라고 물어보면 대답이 쉽지는 않다. 다만, 기본적으로
낙오자가 생기지 않는 구조를 함께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다.
3. 작은 예수로 산다는 것은?
인생을 편하게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고 싶다. 그렇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나의 성장을 이루며 살고 싶다. 온갖 의무감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벗어나고 싶기도 한 것이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 역시 안 할수 없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할 것이 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한다. 이놈의 세상은 사람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다. 태어나 살아있다는 자체가 그 사람이 의무적으로 해야될 일이 있다는 이야기다. 주변과 사회의 의무와 기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역으로 살아있다는 것이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것 역시 잊을수는 없다) 참 거시기 하다. 하지만
한번 힘써 보자, 모두가 자유로울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을 위하여!! 참, 잊지 마시라~ 자유는 전쟁에 버금가는 투쟁에 의해서만 얻을수
있는 것을! 역설적이다. 자유롭게 살려면 투쟁하며 살아야 한다니..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