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19.12.28 15:37

2019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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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신념'의 달]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우러르는 신앙과 더불어 사회적 신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할 신념은 세상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만드는 생명, 평화, 진리, 정의, 자유, 평등의 가치입니다. 우리는 과연 신념을 갖고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지 한 해를 반성하며 더욱 든든히 서기를 바랍니다.

 

■ 알립니다!

1. 오늘은 성탄 후 제1주일 및 송년주일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과 은혜 가운데 감사로 마무리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31일(화) 밤 11시 30분부터 송구영신예배를 드립니다. 저녁 7시부터 저녁식사를 하고 친교문화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송년친교행사를 9시부터 시작합니다.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3. 친교문화위원회에서 주관하는 겨울놀이를 4(토)~5일(주일) 군산으로 갑니다. 동행을 원하시는 분은 신청해 주십시오. 1월 4일 오전 8시에 교회에서 출발합니다.

4. 방정빈 청년이 1월 7일(화), 25사단 신병교육대로 군입대를 합니다. 건강하게 잘 복무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5. 연말연시에 건강에 어려움을 겪는 교우들을 위하여 회복과 쾌유를 기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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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저모

 교회학교 교사, 학부모 모임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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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8일) 점심에 교회학교 교사와 학부모가 고양시 관산동에서 식탁을 나누고 모임을 가졌습니다. 일 년 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교회학교 운영하느라고 다들 애를 너무 많이 쓰셨습니다. 내년에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사실 막막한 현실이지만 어떻게든 우리 아이들을 하나님 뜻 안에서 예수님 말씀대로 자라나도록 잘 양육해보자고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올해의 노고를 치하하며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당회 보고대로 내년에는 교회학교 교육 형식이 바뀌게 되는데 교우 여러분들도 협조를 당부드립니다.

 

겨울놀이, 이번엔 군산입니다!

 

새해 첫 주에 여행길에 나서는 게 이제는 전통이 된 것 같습니다. 올해도 새해 첫 주일을 군산에서 겨울놀이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사실 1월 둘째 주일부터는 지방 사경회 강의 일정에 장로 과정교육도 있는 데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설 명절 전에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차라리 잘 되었다 싶습니다. 임정희 집사님 입원과 수술 일정도 둘째 주일로 정해졌고요.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여호와 이레'를 체험합니다.

친교문화위원회에서 일정을 정했습니다. 교회에서 1월 4일(토) 아침 8시에 출발하면 군산에 오전 11시쯤 도착할 것입니다. 군산 근대거리의 근대역사박물관, 근대미술관, 근대건축관, 이성당 빵집, 히로스 가옥, 동국사 등을 둘러보고 점심도 먹습니다. 1Km 내에 다 모여 있어서 한꺼번에 다 둘러 볼 수 있겠습니다. 오후에는 차를 타고 새만금방조제를 지나 선유도, 고군산도, 신시도, 무녀도, 장자도를 한 시간 정도 둘러보고 선유도 둘레길 트레킹 투어를 한답니다. 여러 개의 섬들이 다리로 연결돼 있어서 한 번에 쭉 둘러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로 갑니다. 숙소는 군산에서 금강을 다시 건너가는 서천유스호스텔로 6인실 두 개 와 4인실 한 개를 예약하였습니다. 리조트는 예약이 다 돼서 구하기 어려웠다는데 임수현 전도사님이 애써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둘째 날에는 오전 8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주일예배를 드린 후 10시부터 숙소 부근에 있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장항 스카이워크를 탐방하고 12시에는 신성리 갈대밭을 거닙니다. 이후 장항 음식문화 특화거리에서 맛난 점심식사를 하고 서울로 올라오게 됩니다. 둘러 볼 곳을 너무 많이 정한 것 같기도 하지만 다행히 다 가까운 거리에 붙어 있습니다.

군산은 목포와 더불어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에서 수확한 쌀을 수탈하여 일본 본토로 반출하기 위한 항구 기지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의 시설들이 많이 남아있고 지금은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유명한 관광지에 놀러 간다는 생각보다는 약소국을 강점하여 인명과 재산을 수탈한 제국주의의 폐해를 둘러보는 의미 있는 시간도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동행하는 일정 내내 서로를 배려하는 즐거운 시간이 되도록 협력해 주시기를 바라며 많이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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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노동자는 우리의 자녀이고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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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목), 청년유니온과 청소년유니온 청소년지부가 올해 9월부터 3개월 동안 만 15~18세 청소년 감정노동자를 대상으로 감정노동 실태를 조사하여 발표하며 기자회견을 하였습니다. 설문과 면접에 참여한 청소년 노동자들은 대부분 여성이고 음식점, 웨딩홀 서빙, 주방보조원, 상점 판매원 등으로 일하였는데 다수가 고객과 사장 등으로부터 성적 수치심이 드는 언행과 반말, 폭언과 협박을 받았다고 증언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엉덩이를 만지거나 술을 따라 달라고 요구하고, 몸을 만지는 등의 성폭력이 일상이 되어버렸다고 한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냥 참고 넘긴다는 응답이 30%에 달하였습니다. 청소년유니온은 “감정노동조례와 감정노동가이드북 등에서 법 준수 및 감정노동자 보호를 권고하고 있지만, 강제력이 존재하지 않아 아직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며 제대로 된 보호방안 마련을 요구하였습니다. 청소년들을 향한 부당한 폭력과 착취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하며 노동권을 보장하여야 합니다. 노동가능인구가 감소하는 시대에 청소년 노동자는 귀중한 자산입니다.  [민중의소리 기사 참조]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인구가 줄고 노동가능인구도 감소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사회는 어린 나이에 노동현장으로 나온 청소년 노동자들을 환대하고 감사해야 함에도 성폭력과 폭언, 착취와 협박의 일상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부도덕한 기성세대들이 반성하게 하시고 국가도 이들의 권리보호에 더욱 큰 관심을 갖게 해주십시오.

 

 

 학교종교교육이란 무엇인가?

 

 1

 

그리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강제당하지 아니하는 것이 소극적 신앙 고백의 자유와 소극적 신앙실행의 자유의 가장 본질적이고 유일한 내용이라 할 수 있으므로, 종립학교가 학교 강제배정제도에 의하여 신앙을 가지지 않았거나 학교와 다른 신앙을 가졌음에도 그 학교에 입학하게 된 학생들을 상대로 참가의 실질적인 자율성을 보장하지 않거나 자유로운 상태에서의 동의를 받지 아니한 채 특정 종교교리를 전파하는 종파교육 형태의 종교교육을 강행하여 학생이 자신이 원하지 아니하는 종파교육에 노출되게 하는 것은 이러한 소극적 신앙고백의 자유와 소극적 신앙실행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인 침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대하고 절박한 침해라고 볼 수 있다. 

- 대법원 판결, 「2008다38288 손해배상(기)」, 2010. 4. 22.

 

2006년 대광고등학교 학생 강의석 사건으로 알려진 종교교육 사건의 결론, 대법원 판결입니다. 종립학교가 강제배정된 학생에게 자율성을 보장하지 않은 채 종교교리를 전파하는 종파교육 형태의 종교교육을 하는 것은 학생의 자유에 대한 중대하고 절박한 침해라는 판결입니다.

강의석 사건은 근본적으로 학교종교교육에 대해 물었습니다. 종립학교의 설립 목적으로 학생에게 종파교육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종교교육이 종파교육이 아닌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학교종교교육의 시작은 1885년 배재학당, 1886년 이화학당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변화의 계기는 1969년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도와 1974년 고교평준화 제도입니다. 이제 학교종교교육은 선택하지 않은 학교에 온 학생에게 강요될 수 없으며, 비공식적 교과로서 종교교과는 교육과정 편성에 있어 공식화되어야 하는 요구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교부(현 교육부)는 1981년 12월 제4차 교육과정(1981-7)을 발표합니다. 이제까지 비공식적 실시되었던 종교 수업은 ‘자유선택교과’란 이름으로 교육과정에 포함되었습니다. 자유선택교과는 학생을 향한 종교교육 강요의 회피와 종교교과 공식화 요구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이후 학계에서는 학교종교교육의 방향 설정과 관련한 연구 성과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대체로 그 모델은 ‘신앙 교육(education of religion)’, ‘종교학 교육(education about religion)’, 그리고 ‘종교적 교육(religious education)’ 등입니다.

 

2

 

신앙 교육(education of religion)

전통적으로 신앙교육은 종교 수업에서, 신앙인 학습자에게는 신앙의 영적 성숙을 위하여, 비종교인 학습자에게는 전도를 목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형태입니다. 학생에게 영적 언어들과 분위기를 제시하여 종교로 회심하고 촉구하는 장점이 있지만, 비종교인에게는 강제로 특정 교리들을 주입하고 받아들일 것을 은연 중에 압박하여 오히려 종교에 대한 반감을 사는 단점이 있습니다.(이두리, 『학교 종교교육 담다』,         꽃피움, 2018, 100쪽)

일반적으로 종립학교는 학교가 신앙교육을 위해 설립되었기 때문에 신앙교육으로서 종교교육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모두 예배를 드려야 하며, 모두가 종파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학교를 배정받은 학생, 학교 선택권이 없는 아이들에게 종파교육은 강의석의 예와 같이 강요를 넘어 폭력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이웃종교 또는 비종교 학생에게 종파교육의 강요가 가져올 부정적인 측면을 애써 가벼이 여기고 있습니다.

 

종교학 교육(education about religion)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였던 윤이흠은 다양한 종교들이 ‘공존’하면서도 특정 종교가 사회의 ‘문화가치체계’를 완전히 주도하는 위치에 있지 못하며, 유교적 위계질서, 불교의 인연관과 업보사상, 기독교의 사랑, 무속의 기복적 태도 등 한 사람이 여러 종교의 가치관을 동시에 수용하고 있다는 점 등에 근거하여 한국 사회가 ‘다종교상황’에 놓여있다고 진단합니다.

(윤이흠, 「다종교문화 속에서의 종교 교육」, 『종교연구』 2, 1996, 4~5쪽) 

종교학 교육, 종교에 관한 교육은 이러한 진단에 바탕합니다. 이 모델의 교육은 종교에 대한 객관적 이해를 높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객관적인 지식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무엇인지 아는 지식에서부터 종교와의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기대까지를 포괄합니다.(이두리, 100쪽) 이뿐만 아니라 종교적 인간(특정 종교인이 아닌)으로의 인간 이해를 통해 새로운 인간 가치 발견이라는 측면을 강조한 교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 교육(religious education)

종교적 교육은 종교적 색채 없이 종교적 가치, 경건성, 영적 각성과 같은 체험을 의도하는 것이 그 목표입니다. 교회나 절에 가지 않는 비종교인들도 종교적 가치관과 심성을 지니고 세상에서 종교인으로서의 가치대로 살아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종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교육하여, 종교라는 이름 없이도 세상이 종교화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는 비종교인에게도 자연스럽게, 평등하게 종교의 가치를 소개하며 아울러 그들의 변화를 지향함으로써 보다 좋은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두리, 101쪽)

종교적 교육은 현재 학교에서 실시하는 인성교육과 많은 유사성이 있습니다. 종교적 교육에서 주요한 주제로 삼는 종교적 가치가 인성교육의 가치와 매우 닮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배려, 나눔, 소통과 같은 가치는 종교적 교육의 중요한 주제일 뿐 아니라 인성교육의 핵심 가치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현재 종교적 교육은 인성교육과 많은 부분 중첩되어 학교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이 모델로서 종교교육의 필요성과 독자성을 말하는 것은 매우 취약합니다.

 

3

 

학교종교교육은 아마 모든 교과 중 제일 마지막으로 몰리는 과목입니다. 제도적으로 일단 수학능력시험에 포함되지 않은 과목이며, 학교에서는 내신 성적에 들어가지 않는 과목입니다. 내용에 있어서, 종교 교리교육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이미 거부되었습니다. 종교의 역사는 『세계사』가, 종교의 내용은 『공통 사회』가, 종교의 교리는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이 다루고 있습니다. 게다가 인성적 측면이라면 『인성교육』이 보다 발전된 형태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난감한 과목입니다. 

학교종교교육이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입시에 지친 학생에게 다른 과목들처럼 힘들게 할 필요가 있나.” 영화 상영 시간입니다. “여기는 기독교 학교야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지.” 설교 시간입니다. “입시와 관계가 없더라도 인문학 교육으로서 여전히 종교학은 필요하지.” 오늘 좀 억지스러운 종교교육의 이유입니다. 가끔은 다른 교과의 열성적인 선생님을 볼 때, 월급 받는 게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nunc et hic, now and here)’에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 세계 안에 있는 자신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신들은 이 새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하며 그 여러 자신과 연대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종교교육을 바라봅니다. 종교교육은 ‘너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종립학교 종교교육은 설립목적의 추구와 학생의 선택권 사이에 당분간 갈등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보다 더 학생 중심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변화된 세상은 기독교 선교의 ‘황금어장’(마태복음 4장)으로서 이해하는 종립학교의 교육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학생은 수단이나 도구나 대상이 아니라 자체가 목적입니다. 변함없는 교육의 진리입니다.

학교종교교육의 현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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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수보리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내어야 할 것이니, 모양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고 소리·냄새·맛·감촉·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며 마땅히 아무데도 머물지 않고 마음을 낼 것이다. 

 

是故로 須菩提여, 諸菩薩摩訶薩은 應如是로 生淸淨心이니 不應住色生心하여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이요 應無所住而生基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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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눈이 보살이다. 눈은 보이는 사물의 상像을 망막에 비치는 순간 지워버린다. 그 사이가 없다시피 하여 비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할 정도다. 그래서 우리는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다. 만일 우리 눈이 보면서 보지 않기(상을 망막에 비치면서 지워 버리기)를 하지 않는다면(한번 비친 상을 그대로 망막에 붙잡아 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귀의 고막도 마찬가지다. 음파를 잡으면서 놓아버린다. 그래서 고리를 듣는 것이다. 한번 잡은 음파를 그대로 고막에 붙잡아 둔다면 우리 귀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할 것이다.

 

눈과 귀만 그럴까? 아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우리 ‘몸’은 무엇 하나 붙잡아 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채우고 끊임없이 비운다.

 

내가 만일 내 몸처럼만 산다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깨끗한 탕일 터인데… 못하구나, 사람이 사람 몸만 못하구나!

 

수행인의 맑고 깨끗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는 육조 스님의 가르침이 친절하고 소박하다.

 

“모든 수행인은 마땅히 남의 옳고 그름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할 수 있고 나는 안다고 하면서 아직 배우지 못한 사람을 마음으로 가벼이 여기면 이는 맑고 깨끗한 마음이 아니다. 자성自性에 언제나 지혜를 내고 평등한 사랑을 행하고 마음을 아래로 내려(下心) 일체 중생을 공경하면 이것이 곧 수행인의 맑고 깨끗한 마음이다. 만약 자기 마음을 스스로 깨끗하게 하지 않고, 맑고 깨끗한 자리를 애착하여 그 마음이 머무는 곳이 있으면 이것이 곧 법상法相에 붙잡히는 것이다. 모양을 보고 모양을 집착하여 모양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면 그가 곧 헤매는 사람(迷人)이요 모양을 보고 모양을 떠나 모양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을 내면 그가 곧 깨달을 사람(悟人)이니, 모양에 머물러 마음을 내는 것은 구름이 하늘을 가린 것과 같고, 모양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을 내는 것은 하늘에 구름이 없어서 해와 달이 밝게 비추는 것과 같다. 모양에 머물러 마음을 내면 그것이 곧 망념妄念이요 모양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을 내면 그것이 참된 지혜(眞智)니, 망념이 일어나면 어둠고 참지혜가 비추면 밝다. 밝으면 번뇌가 일지 않고 어두우면 육진六塵(마음을 어지럽히고 더럽히는 여섯 가지 境, 곧 色·聲·香·味·觸·法)이 다투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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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헤이븐즈는 1924년 미국 최고의 조정경기 선수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금메달 기대주였다. 조정경기에서 빌 헤이븐즈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이미 세상에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미국의 올림픽 선수팀이 출발하는 바로 그날 그의 아내가 출산하게 되었던 것이다. 빌 헤이븐즈는 파리로 가야 할지, 아내 곁을 지켜야 할 지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아내와 담당의사는 염려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했지만 빌 헤이븐즈는 평생의 꿈이었던 올림픽 금메달을 포기하고, 새 생명을 출산하기 위해서 수고할 아내 곁에 머물기로 결심했다. 

빌 헤이븐즈는 자기가 올바른 결정을 한 것인지 아니면 잘못한 것인지 28년이 지난 1952년까지도 스스로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해 핀란드 헬싱키에서 개최된 올림픽에 출전한 아들로부터 전보를 받고서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사랑하는 아버지, 제가 세상에 태어날 때 어머니 옆에서 저를 기다려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아버지가 28년 전에 받으셨을 금메달을 목에 걸고 집으로 갑니다.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 프랭크로부터.”

 

어떤 결정을 하든 그 결정은  답이 있습니다. 먼 훗날 그 결정을 후회하든지 아니면 잘 했다고 만족하든지 그것은 자신의 몫입니다. 인생은 결단의 연속인데 모든 결단의 이어짐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는 것이 신앙의 깨우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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