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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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성서

성서본문 ; 레위기 19:1-4

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의 하나님인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 3 너희는 저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공경하여라. 너희는 또 내가 명한 여러 안식일을 다 지켜라.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4 너희는 우상들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 쇠를 녹여 너희가 섬길 신상들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들어가며 : 아기 예수의 나심을 기다리며 아기 예수가 오신 바로 그 곳에 같은 모습으로 함께 하기를 원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가 충만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전 세계 언어로 성서를 번역하고 보급하고 일을 하는 성서공회를 지원하기 위하여 교회가 뜻을 모은 날입니다. 우리가 아직 미약하여서 성서보급 사업은 하지 못하지만 장차 큰 일을 이루는 교회가 될 줄로 믿으며 여러분이 많은 관심과 의무감을 가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보급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성서를 제대로 읽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일은 더욱 중요합니다. 없으면 할 수 없다지만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의 중요성을 모르고 그 능력을 누리지 못한다면 참으로 안타깝고 애석한 일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성서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함께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들어가서 : 예수라는 사람이 약속된 그리스도, 즉 이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라는 것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기독교라고 한다면 그런 약속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유대교입니다. 그러니 유대교는 비록 예수가 바로 그 그리스도, 메시야, 구세주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점이 다르지만-오히려 죄인이라고 여겨 그들의 법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니- 분명히 기독교라는 종교가 발생하게 된 모태이니 아버지나 혹은 형님뻘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요즘 아무리 자기가 최고고 자기 말만 맞다고 떠들어 대지만 실상 많은 부분 유대교로부터 빚을 져왔고 유대교의 의식과 신학, 교리 등을 차용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신약은 많은 부분 구약에 근거해있고 구약을 모방하였음이 학자들에 의해 하나둘 밝혀졌습니다.

그런 유대교에서는 구약성서를 그들의 경전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경전 중에 경전으로 인정합니다. 이 다섯 권을 오경이라고 칭하는데 주로 율법을 담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키고 실천해야 할 법적인 근거가 바로 이 오경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오경으로부터 유대교의 거의 대부분의 종교와 사회, 생활의 근거들이 도출되고 연구되고 해석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탈무드도 바로 이 오경을 해석하고 설명한 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오경은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를 떠나 어찌 보면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성서 중에 성서, 가장 에센셜한, 정수를 담고 있는 부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오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거룩하다’는 말입니다. ‘거룩하다, 거룩’이라는 말은 지난 번에 설교했던 내용처럼 우리가 뜻을 정확하게 모르지만 많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하긴 별로 써본 적이 없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지요! 이 단어는 인간의 단계를 넘어서 가장 고귀하고 순결하고 진실하고 위대한 어떤 상태를 형용하는 단어입니다. 세속적이고 평범한 인간들이 이 단어를 쓸 일이 별로 없어서 잊혀진 단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경에서는 이 단어가 마땅히 하나님에게만 사용되어야 할텐데 하나님만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사용된다는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만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너희도 하나님처럼 거룩해질 수 있다, 가장 고귀하고 순결하고 진실하고 위대하신 분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 인간, 세속적이고 탐욕적이며 어리석고 평범하고 그저그런 인간들도 고귀하고 순결하고 진실하고 위대하고 선하고 등등등 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혁명입니다. 인간이 타락하게 된 것은 하나님 같이 되기를 바라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첫 사람이 금단의 열매에 손을 댄 이유가 바로 하나님처럼 된다는 유혹 때문이었던 것을 기억한다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이 말씀은 하나님이 스스로 인간에게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니 인류가 안고 있는 숙원사업이 해결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성서 중에 성서, 성서의 본질적인 핵심이 우리에게 전하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성서는 우리가 하나님처럼 거룩해지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서를 통해 우리 삶이 바뀌고 성서를 통해 우리 삶이 깊어지게 됩니다. 영혼이 맑아지고 인생이 진지해지며 섭리를 통달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의 인생이 잘 풀리고 복 받고 옳은 길을 따라 걷게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받는 성도들은 모두 성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얻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서가 우리를 거룩하게 인도하는 힘이 있는 것은 바로 성서가 지도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6에서 예수님은 스스로를 길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거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추구할 수 있고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인데 그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길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법을 담은 책이니 성서는 바로 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맵니다. 술, 마약, 도박, 각종 취미에 미친 듯이 빠져 들어갑니다. 아무 것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자살을 택합니다. 그 수가 점점 늘고 줄지 않습니다. 다들 지도를 얻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방향을 찾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성서를 가졌고 성서를 보는 눈을 가졌습니다.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마다 성서를 통해 다시금 방향을 잡을 능력과 성서를 통해 능력을 회복하는 은총을 얻은 존재입니다. 성서를 통해 삶의 방향을 잡고 옳은 길을 따라 걷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성서는 거울과 같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거울은 남을 비춰주기 위해 있는 것도 아니고 햇빛을 반사시키려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자신을 비춰보는 것입니다. 성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자신을 비춰보기 위한 것입니다. 성서를 읽으면서, 성서를 풀이하는 설교를 들으면서 그 말씀이 자기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성서를 왜 읽어야 하고 왜 그 시간에 나와서 그 풀이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까! 이스라엘 역사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유대교 이야기라고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나, 우리들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비춰보지 못한다면 결코 성서는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갖지 못합니다.

사람이 역사를 배우는 것은 지난 일을 돌이켜보는 반성의 시간을 통해 더욱 본받을 것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해내기 위해서입니다. 잘 한 것은 계속 잘 해나가고 잘못한 것은 두 번 실수 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 가운데 역사의 법칙을 발견하게 되지요. 성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서에도 긍정적인 내용과 부정적인 내용이 함께 나옵니다. 어떤 경우는 극명하게, 어떤 경우에는 은폐된 상태로 우리 앞에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어떤 관점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비춰보는 관점, 우리 삶을 살아가는 관점을 익히게 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를 돌아보는 사람의 삶은 풍성하지만 자신을 비춰보지 않는 사람은 그 얼굴에 뭐가 묻고 행색이 어떤지를 알지 못합니다. 성서를 통해 자신의 삶과 우리의 위치와 이 땅의 역사를 비춰볼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성서는 밥입니다. 사람이 밥을 먹어야 삽니다. 그러나 성서에 쓰인 대로 밥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도 삽니다. 그러니 성서의 하나님 말씀도 일종의 밥입니다. 흔한 말로 쌀밥은 육신의 양식이고 성서는 영혼의 양식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쌀밥에만 정신이 팔려서 쌀밥 구하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고 쌀밥 먹는 일에만 혼신을 다 하다 보니 육신은 비대해지고 비만으로 시달리는데 생명의 양식, 영의 양식은 소홀히 해서 인간성이 더욱 피폐해지고 관계는 단절, 삶은 파괴되는 현상을 많이 목격하게 됩니다. 수레바퀴가 두 개 있고 새의 날개가 두 개가 있어 두 개가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사고가 나고 말썽이 생깁니다. 바로 오늘날이 그런 현상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매일 예배를 마치고 이현주 목사님의 시를 외우며 식사기도를 하는데 그 시가 영혼이 양식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먹거라 / ... / 여러 날을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온 쌀인데 그렇게 허겁지겁 삼켜버리면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우리가 성서를 곱씹고 묵상하고 삶의 한 부분을 떼어 그 말씀을 묵상하는 일에 바치면 우리 삶에 그 말씀을 섭취하여 얻은 영양소가 풍부하게 열매를 맺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나가며 : 신앙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겠지만 우리가 거룩해진다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바로 지금 여기가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우리의 어버이 되신 하나님처럼 우리도 거룩해져야 합니다. 그것은 부모를 닮은 자녀의 순리이고 또한 의무일 것입니다. 성서를 통해 또 성서를 잘 읽고 통찰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우리 삶에서 이루고 누리는 성도들에게 크신 용기와 능력을 베푸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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