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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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선택과 하나님 나라

성서본문(1) : 창세기 2:15-17
15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16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성서본문(2) : 마태복음 13:44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 놓은 보물과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제자리에 숨겨 두고,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다."
 

 

들어가며 : 우리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거룩한 통치를 드러내시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그 깊고 너른 뜻을 깨닫고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자 열망하고 이 자리에 나온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크신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선언을 하나 하고자 합니다. 저는 창세기에 나오는 세계와 인간 창조에 관한 내용이 그 이야기 그대로, 곧이곧대로 일어났다고는 믿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언하는 바입니다. 놀라시는 분이 별로 없네요!

 

들어가서 :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가 아마도 창조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면 인간이 명을 거역하고 선악과(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게 될 것임을 분명히 알았을 텐데 왜 거기에 그 나무를 심어 놓아서 인간이 뱀의 유혹을 받아 열매를 먹고 타락하게 놔두었느냐’고 묻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신은 분명히 전지전능하지만 반면에 전혀 자비롭지 못하고 인간을 비참한 현실로 몰아넣은 주범이 됩니다. 그런 신을 믿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선악과와 더불어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자 하나님과 천사들은 아담 부부가 생명나무까지 따먹고 신과 같은 존재가 될지 모른다며 에덴동산에서 추방합니다. 이 말은 아담과 하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먹었다면 하나님과 똑같아 질 수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선악과는 지혜를 담당하고 생명은 시간, 영생을 상징하는 열매입니다.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와 생명이라는 시간을 소유하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신이 되는 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인간의 반쪽은 신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면 영원히 살았을 수 있었을까요? 창조 이야기에 따르면 선악과를 먹지 않았어도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만약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다르게 말한다면 우리가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아는 감각이 없는 존재라면 어떻겠습니까? 그건 아마도 백치 혹은 바보, 자아정체감도 없이 사는 머리가 빈 사람을 의미하는 지도 모를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이 신의 명령을 어겨서 그나마 선악과라도 따먹었기에 이나마라도 사는 것이라는 논리적 귀결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창조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창조신화 혹은 창조설화라고 칭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신과 인간의 관계, 신을 인간의 형상으로 이해하고 만들어낸 신화적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화처럼 단순하게 재미를 위해서 지어낸 것이 아니라 왜 인간이 세계를 꿰뚫어 볼 줄 아는 지혜는 있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시간의 한계를 가진 운명인가에 대한 고민과 나름대로의 해답을 담은 철학적 이야기로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좀더 우리 자신과 또 신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이해할 수 있는 지침이 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기독교의 본질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기독교의 핵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기독교가 선택의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진지하게 믿으면 믿을수록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심하게 됩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수동적이거나 노예상태의 어떤 존재로 만들지 않으시고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혼을 담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창조주의 명령도 어길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셨다니 이는 진실로 우리를 종이나 단순한 피조물이 아닌 아들과 딸로 인정하시고 만들었다는 깊은 신학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인간이 선악과를 먹을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이라고도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택 없이 살아가는 인생을 행복한 인생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지적수준이 높아질수록 자발적인 선택을 통해 그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개화되고 문명화된 성인으로써의 인간의 미덕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선택을 통해 인간으로써 살아갈 길을 열어주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선택의 권리, 선택의 자유, 선택의 선물을 잘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제 선택과 맞물린 또 하나의 주제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기독교의 목적은, 신앙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나라, 천국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대하여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우리가 시간적 한계에 도달한 후에 가게 될 어떤 미지의, 새로운 차원의, 아니면 우주공간 어디의 공간으로 믿는 선택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 우리는 세속적인 모든 즐거움을 끊거나 세상이 돌아가는 여러 현상에 무관심한 채로 그저 종교적 활동에만 몰두하고 죽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삶의 방식을 택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것과는 별도로 우리 삶을 영위하고 있는 현세 가운데 자라나고 일어나고 세워지고 나타나는 어떤 특별한 현상을 하나님 나라로 규정하고 우리의 참여와 헌신으로 그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경우를 선택한다면 먼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천국의 비전이 무엇이며 하나님 나라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연구하고 그런 나라가 실제로 우리 사는 세상 가운데 나타날 수 있는지 실험을 한 후 만약 가능하다면 (국제법적 내용이 아니라) 그런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의 노력을 바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가 갖는 선택의 본질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요? 선택의 기준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비유를 여러 곳에서 들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비유라는 것이 무슨 뜬구름 잡는 것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현실적 활동을 통해 나타납니다. 서 말의 가루를 반죽하는 매우 현실적이고 현세적인 활동에서, 밭에 나가 씨를 뿌리는 사람의 활동에서, 밭을 갈다가 밭 한 가운데서 발견한 보물상자에서, 자기 아들을 위해 혼인잔치를 베푼 임금에게서,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천국, 하나님 나라가 나타나는 것으로 예수님은 비유하고 계십니다. 즉 천국, 하나님 나라가 무슨 뜬구름 잡는 미래적인 어떤 장소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과 생활 한 가운데서 발견되고 만들어지고 쟁취되고 자라나고 침노되는 그런 어떤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택은 필연적으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한 가운데서 성취되어야 하고 고려되어야 하며 미래는 물론 현재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선택은 마땅히 성서적이며 예수적으로 우리 삶의 중앙에서 신앙의 일면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시절이 20년 전 독재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7-80년대에는 독재세력이 부르면 안 되는 금지곡을 지정했었는데 요즘에는 광주민중항쟁기념식에서 4천만의 애국가라고 할만큼 애창되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못 부르게 하여 기념식이 반 토막이 되는 일도 벌어졌다니 기가 막힌 일이니다. 무슨 정부와 부처, 공직자들이 툭하면 자기들 행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국회의원이건 일반시민이건 소송부터 걸고 보자는 지 모르겠습니다. 상식과 사실에 근거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무조건 일단 벌여놓고 보자는 방식이 천안함, 4대강, 대북정책, 언론사 장악, 대국민 소송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횡행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답답합니다. 이제 우리는 마 6,10의 가르침처럼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하고 더욱 뜨겁고 진실하게 기도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 기도의 실천이 이번 6.2지방선거를 통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정치적인 설교라고 하실 분이 잇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신앙인이 신앙적인 결단으로 하는 모든 것은 신앙입니다. 신앙인이 믿음에 따라 정치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데 마치 신앙 따로 정치 따로 라는 듯이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껍데기 신앙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그 나라를 이루시고 그 통치를 드러내시고자 들어 쓰실 사람이 누구인지를 진지하게 묻고 고민하며 신앙실천으로써 이번 선거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낼모레의 선택 역시 신앙적 선택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길입니다.

두툼한 우편물 봉투가 배달되었습니다. 출마자들이 많아서 일일이 꼼꼼하게 살펴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별로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나온 선거라 인쇄물 갖고는 판단이 잘 안 섭니다. 하긴 인쇄물에 찍은 공약대로 하는 사람도 없겠지만요. 그러나 다 보이시리라 믿습니다. 1등, 돈, 경제, 강대국, 부자라고만 외치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등수 관계없이 사람을 보고 돈보다는 바른 가치, 강자로 군림하기보다는 섬김, 부자보다는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그들을 위해 외치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무슨 당이니 무슨 당이니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과연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보탬이 될 만한 존재인지에 대해 물으시면서 선택하신다면 여러분의 작은 정치적 선택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선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나가며 : 철저한 신앙인으로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땅 가운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것입니다. 우리의 구체적 실천과 행동, 헌신과 결단 가운데 천국은 발견되고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선택이 하나님의 선택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여러분을 통해 쓰실 사람을 세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고 선택하시는 여러분들에게 크신 은총과 섭리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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