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니 드 멜로 지음 / 김상준 옮김 / 분도출판사
이 시대 잊혀진 영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깨달음의 영성을 소개합니다. 깨어있는 성도도 성숙하기 위하여 연재하는 이 글을 통해 영성의 세계로 나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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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된 사람 1
깨달음을 추구하면서 요구를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오히려 교통 규칙을 지키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교통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범칙금을 내게 되죠. 미국에서는 운전할 때 우측 통행, 영국과 인도에서는 좌측통행, 그걸 지키지 않으면 범칙금을 내게 되죠. 감정이나 요구나 기대를 상하게 할 여지가 없어요. 그저 교통 규칙대로만 하면 되는 거죠.도대체 자비가 어디서 오는지, 죄가 어디서 오는지들 묻습니다. 깨어 있을 때 알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바로 지금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면 도대체 내가 어떻게 그걸 설명해 드릴 수 있을까요? 자비심이란 무엇인지를 어떻게 알겠어요? 아시다시피 더러들 그리스도를 본드고 싶어 하지만, 원숭이가 색소폰을 분다고 해서 음악가가 되지는 않죠. 그리스도의 외적 행동을 본뜸으로써 그리스도를 닮을 수는 없는 겁니다. 여러분이 곧 그리스도라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자신의 기질, 자신의 성격그리고 상대자의 성격과 기질이 주어진 조건에서 무엇을 할지 정확히 알게 됩니다. 누가 그걸 말해 주어야 하는 게 아닙니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무엇이었던지 여러분이 바로 그 무엇이라야 합니다. 외적 모방으로는 아무 데도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자비란 부드러움을 뜻한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자비를 설명해 드릴 길이 없습니다. 절대로 없어요. 자비란 매우 딱딱할 수도 있으니까요. 매우 거칠 수도 있죠. 사람을 붙잡고 마구 흔들 수도 있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수술을 할 수도 있고, 온갖 종류가 있죠. 자비란 매우 부드러울 수도 있지만 그걸 알 길은 없습니다. 오직 여러분이 사랑이 될 때 - 달리 말해서, 환상과 집착들을 떨쳐 버ㅗ릴 때 - “알게” 되는 겁니다.
“나”와의 도일시를 점점 덜함에 따라 모든 사감과 모든 사물과의 관계가 더 쉬워집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상처받거나 사랑받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인상적이기를 갈망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누구에게 인상적일 필요가 없게 될 때의 안심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오, 얼마나 홀가분한지. 마침내 행복이죠! 무얼 설명할 필요나 강박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겁니다. 만사 오케이. 설명할 게 뭐가 있어요? 또 사과할 필요나 강박도 느끼지 않게 되는 겁니다. 나라면 “미안하오” 보다는 “난 깨어났소”가 훨씬 듣기 좋겠습니다. “그런 행동을 해서 미안하오”보다는 “우리가 만난 이후로 난 깨어났소. 그런 행동을 하는 일은 다시 없을 거요”라는 말이 훨씬 듣기 좋겠단 말입니다. 왜 사과를 요구해요? 따질게 있어야지요. 설사 비열한 짓을 했다 치더라도 사과할 여지는 없는 겁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