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는 하나님
성서본문(1) : 창세기 2,4-7
4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의 일은 이러하였다. 주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실 때에, 5 주 하나님이 땅 위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갈 사람도 아직 없었으므로, 땅에는 나무가 없고, 들에는 풀 한 포기도 아직 돋아나지 않았다. 6 땅에서 물이 솟아서, 온 땅을 적셨다. 7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성서본문(2) : 누가복음 12,28-31
28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풀도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히지 않으시겠느냐? 29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30 이런 것은 다 이방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31 그러므로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들어가며 : 60여년 동안이나 같이 살았던 노부부가 85세에 교통사고로 같이 죽고 말았습니다. 죽기 전 그들은 할머니의 권유로 건강식을 하며 10년 동안 건강하게 살았다. 그들이 천국의 문에 다다르자 베드로가 맞이하며 멋진 주방과 거품 목욕탕이 있는 커다란 저택으로 안내했다. 베드로가 이 곳이 당신들이 살 곳이라고 하자 노인이 가격은 얼마냐고 물었고 베드로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무료라오. 여기는 천국이오.”
다음날 그들은 멋진 골프 코스에 가서 골프를 즐겼다. 노부부에게는 매일 골프를 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고 그 골프장은 매주 세상에서 제일 멋진 골프장의 모습을 본 따 바뀌었다. 노인이 그린피는 얼마냐고 묻자 베드로가 답했다. “여긴 천국이라고 했지 않소. 무료로 칠 수 있소.”
그 다음날 멋진 부페에 간 그들은 세상에서 볼 수 없던 산해진미들이 많이 있었다. 노인이 다시 값을 묻자 베드로가 약간 화가 나서 대답했다. “아직도 이해를 못하오? 여긴 천국이고 공짜란 말이오!” 약간 움찔했던 노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저지방 저칼로리 음식이 있는 곳은 어디죠?” 베드로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설명했다. “당신이 먹고 싶은 것은 아무거나 다 먹을 수가 있어요. 그렇게 먹더라도 당신이 아프거나 살이 찐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요. 여긴 천국이니까 말이오.”
그 말을 듣자 노인은 쓰고있던 모자를 집어 던지고 소리를 버럭 지르며 발로 밟아댔다. 베드로와 할머니가 그를 진정시키고 자리에 앉혔다. 분에 못 이겨 씩씩대던 노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 할망구야! 이게 다 당신 탓이란 말이야! 당신이 그 맛 없는 뚤떼기와 미숫가루나 먹을 생각을 안 했더라면, 벌써 10년 전에 이곳에 왔을 거라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는 복 받으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천국, 여러분도 모두 천국에 가시고 싶으실 텐데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오늘 예화로 시작한 이야기처럼 아마도 천국, 우리가 바라는 천국은 그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즐겁고 행복하고 아프지 않고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으면서 좋은 집에서 사는 그런 곳, 그러면서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는 곳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우리가 바라는 천국의 이상이라는 것이 몇 가지를 제외하면 그리 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해낼 수 있는 그런 조건들입니다. 그러나 노동자에 대한 착취, 의료기술에 대한 독점, 서비스 이용에 대한 과도한 비용 청구, 국가적 복지개념 미비, 분단구조 등등의 이유로 현실적 여건을 만드는 일에는 참 무관심합니다. 아이러니입니다. 아마도 그런 악한 구조와 생각들이 있기 때문에 천국이 될 수 없는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정말 천국을 원한다면 이제 우리 사는 이곳에서 천국을 맛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헌신, 믿음의 투쟁이 모든 이들을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의심 없이 믿으시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오늘은 우리 신앙고백 중에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유지하신다는 구절에 관한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세상은 누가 창조했을까요? (하나님) 누가? 바로 하나님이시죠. 창조론이 맞습니까, 진화론이 맞습니까? (창조론)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의심 없이 당연하게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어떻게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고 그렇게 주장할까요? 성서에 씌여있어서?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믿는 것이지 우리가 아무리 우기고 고집한다 해도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안에서는 진리이지만 그것이 객관적 사실은 아닐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라고 확신하고 고백하는 것은 사실은 하나님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가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의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어떤 존재입니다. 인간의 감각과 이성, 능력과 기술로도 존재여부를 파악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뛰어 넘는 그 어떤 존재이십니다. 그런 존재가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고백은 그분의 놀라운 능력에 대한 찬양일 수도 있지만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는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가 하는 것에 대한 확신과 기대를 담은 고백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워크맨이라고 하는 조그만 카세트플레이어가 등장을 했습니다. 혁신적이었지요. 작고 견고한 것이 모양도 그럴듯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소유하지는 못했지요. 일제 소니였습니다. 그 당시 일제, 그것도 소니라고 하면 확실한 보증수표이자 고급전자제품의 상징이었지요. 이후에 유사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만 개중에는 뭔가 허접하고 부족하고 어색한 것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면 카세트 뒷면에 제조자 정보를 살펴봅니다. 그래서 ‘메이드인 제팬’이라고 쓰여 있으면 확실한 겁니다. 당시 ‘메이드인 제팬’은 보증수표와도 같은 문구였습니다.
누가 그 물건을 만들었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지요. 피카소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면서 다 한 번씩은 ‘저게 무슨 명작이야, 나도 그리겠다’ 하는 생각을 해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그림과 똑같이 그려낸다 하더라도 결코 피카소의 그림만큼 값을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피카소를 만드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치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고백은 우리가 보증 받아 마땅한 존재이며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존재, 하나님이 보중하는 존재, 그래서 마땅히 품위 있고 거룩하게 살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고백이라고 믿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억눌리거나 위협 받아서는 안 되는 존재, 생존의 위협받거나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지 못해서는 안 되는 존재, 사랍답게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땅히 조성되고 제공 받아야 할 존재,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함부로 취급받아서는 안 되는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는 사실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고백 안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존재라는 고백을 할 때마다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가 하는 것과 더불어 우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깨닫고 감사하며 고귀하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통해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우리 인간들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산도 강도 물도 언덕도 바다도 풀 한포기도 짐승들 한 마리 한 마리도 모두 하나님의 능력을 거치지 않고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은 없다는 고백도 우리가 한다면 자연생태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가 조금 더 겸손하고 조금 더 진지해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인 우리가 귀하고 소중하다면 하나님이 지으신 다른 것들 역시 소중한 것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의 의무요, 마땅한 선택이자 봉사임을 더불어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서 숨 쉬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한 일이던가요?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고비를 넘기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만 해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위기까지 합한다면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여러분은 기적 기적 하시면서 아쉬워할지 모르지만 지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기적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어떻게 이런 기적이 우리에게 일어났을까요?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유지하시고 우리 삶을 유지하시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고백합니다. 우리의 삶이 힘들 때, 가끔 동네 강아지가 늘어지게 하품하면서 길가에 쓰러져 자는 것을 보고는 ‘그래, 니 팔자가 상팔자다’하고는 부러워합니다. 그건 개가 지능이 없어서 그렇게 팔자가 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개 한마디로 보살피는 주인이 있고 끼니가 되어 밥을 주는 주인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팔자 편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우리는 한 마리 개보다도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스스로를 하나님의 창조물이자 하나님이 자녀로 삼으신 존재라는 고백을 하기 때문입니다. 들판에 피는 잡초 한 포기도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하물며 인간이야, 하물며 자식이라고 인정하신 사람이야 어찌 하나님이 돌보시지 않겠는가 하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우리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도합니다만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결과를 얻게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리고 우리를 유지하시고 지탱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있을 때 우리는 매순간 자신감 넘치고 활기차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를 유지하고 지탱하고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 있을 때 우리는 두려움을 잊게 됩니다. 목에 힘이 빡빡하게 들어간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 넌 뭘 믿고 그렇게 힘주냐고 합니다. 대단한 백그라운드가 있을수록 더 자신만만하지요, 우리의 백은 하나님이십니다. 어깨 늘어뜨리고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이 이처럼 우리 삶에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나가며 : 하나님을 우리의 창조주로 고백하고 우리를 유지, 지탱, 인도하시는 분으로 고백하시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하신 자비와 은혜가 임하셔서 당당하고 힘 있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