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니 드 멜로 지음 / 김상준 옮김 / 분도출판사
이 시대 잊혀진 영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깨달음의 영성을 소개합니다. 깨어있는 성도도 성숙하기 위하여 연재하는 이 글을 통해 영성의 세계로 나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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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묵 2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한 독일인 대학자는 특별히 토마스 성인의 침묵에 대한 책을 한 권 썼는데, 요컨대 토마스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자기 신학을 집대성한『신학대전』서문에서 토마스는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고 하느님이 무엇이 아닌지를 알 수 있으므로, 하느님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고 하느님이 무엇이 아닌지를 알 수 있으므로,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고찰할 수 없고 하느님이 어떤 분이 아닌지를 고찰할 수 있다.” 그리고 보에시우스의『삼위일체론』에 대한 유명한 주해에서는 하느님을 아는 세 가지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창조, 두 번째는 역사를 통한 하느님의 활동, 세 번째는 하느님에 대한 최고 형태의 앎 ― 하느님을 “알려지지 않는 분”tamquam ignotum으로 아는 것. 삼위일체에 대한 최고 형태의 표현은 우리가 이에 대해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동양의 어느 선사의 말이 아닙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시성된, 여러 세기 동안 으뜸 신학자였던 사람의 말입니다. 하느님은 알려지지 않는 분임을 알라는 겁니다. 또 다른 데서는 알 수 없는 분이라고까지 말합니다. 현실·하느님·신성·진리·사랑들은 알 수 없는 것들입니다. 정신의 사고로는 파악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알고 있는 환상 아래 살고 있기 때문에 하고많은 문제들만 남겨 놓게 됩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알 수 없습니다.그럼 성서란 무엇일까요? 암시, 실마리지 묘사가 아닙니다. 아노라고 생각하는 한 진지한 신자의 광신이 사기꾼 이백 명의 힘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악의 장본일 수 있습니다. 진지한 신자들이 안다고들 생각해서 하는 짓을 보면 끔찍합니다. 모두들 “우리는 모른다”고 말하는 세계를 이룬다면 멋지지 않겠어요? 한 거대한 장벽이 허물어졌으니 경이로운 일이 아니겠어요?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