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니 드 멜로 지음 / 김상준 옮김 / 분도출판사
이 시대 잊혀진 영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깨달음의 영성을 소개합니다. 깨어있는 성도도 성숙하기 위하여 연재하는 이 글을 통해 영성의 세계로 나아가십시오.
1210-0304
분석의 한계 2
내가 시카고에서 심리학을 공부할 적에 한 사제가 우리들에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사실 나는 필요한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었죠. 술이 날 죽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또, 정말이지 아무것도 심지어 아내나 아이들의 사랑까지도 알코올중독자를 고치지는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나도 처자식들을 사랑하지만 그것도 나를 고치지는 못하죠.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나를 바꾸어 놓는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가랑비가 내리던 그날 나는 도랑 속에 누워 있었습니다. 나는 눈을 떴고 이것이 날 죽이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난 그걸 보았고 그 후로는 단 한 방울도 입에 대고 싶은 욕구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 후에도 좀 취한 적은 있었지만 건강을 해칠 정도로 마신 적은 없었어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죠. 지금도 그럴 수가 없고요.” 이것이 내가 말하려는 것입니다. 깨달음, 자식이 아니라 깨달음이죠.
담배를 지나치게 피우는 버릇이 있던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사실 담배에 관한 별의별 농담들이 다 있지. 담배가 사람을 죽인다고들 하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을 보라구. 아무도 담배를 안 피웠는데도 모두 죽었잖은가.” 그런데 어느 날 그는 가슴이 답답해져서 뭄바이에 있는 암 연구소엘 갔는데, 의사가 말했죠. “신부님의 허파에 얼룩이 두 군데 있군요. 암일 수도 있으니 다음 달에 꼭 다시 오셔야겠습니다.” 그 후로 그는 담배를 건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전에는 흡연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던 것이고, 이제는 그걸 깨달은 것이죠. 그게 다른 겁니다.
우리 수도회의 창시자인 이냐시오 성인은 이 점을 잘 표현했습니다. 진실을 맛보고 느끼는 것 아는 것이 아니라 맛보고 느끼는 것, 느낌을 얻는 것이라고 불렀죠. 느끼게 될 때 달라집니다. 머리로 알 때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