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복음 6:27-36
27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치는 사람에게는 다른 쪽 뺨도 돌려대고, 네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는 속옷도 거절하지 말아라. 30 너에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사람에게서 도로 찾으려고 하지 말아라. 31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여라. 32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33 너희를 좋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만 너희가 좋게 대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한 일은 한다. 34 도로 받을 생각으로 남에게 꾸어 주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죄인들에게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다. 36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제목 : 죄인들도 그만한 일은 한다
설교일 : 2014년 6월 24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민족화해주간예배 설교]
들어가며 : 하나님의 화해와 평화의 능력이 오늘 민족분단의 아픔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며 민족화해의 희망을 간구하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빕니다.
저는 남북평화재단 함께나누는세상이라는 단체에서 북한 영유아를 위한 인도적 지원사업으로 우유, 분유, 밀가루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2009년 말부터 이 일을 시작하였는데, 아시다시피 남북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인도지원사업을 하면서 가슴 뿌듯하고 신나는 경험보다는 화가 나고 답답하고 절망하는 경험을 더 많이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난 4년간 영유아지원은 지속한다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다른 단체들에 비해 그나마 지원사업을 많이 한 편입니다만 그 사업량이 매우 미미한 것이 사실입니다. 다행히 모니터링 등의 목적으로 평양에 세 차례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제가 최근에 평양방문을 가장 많이 한 사람, 또 가장 최근에 방북한 사람 몇 십 명 중에 한 명입니다.
남북관계가 한참 활발하게 진행되던 시기에 100여 차례 이상 방북을 하고 수십 수백억 단위의 사업을 진행하였던 단체 실무자도 벌써 몇 년째 지원사업을 별로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오가던 길이 막히니 관계가 깨지고 오해가 증폭되며 충돌만 늘어갑니다. 오늘 이 예배가 남북이 관계를 개선하고 민족이 화해하는 전환점이 되는 뜻깊은 자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들어가서 : 저가 오늘 설교 청탁을 받고 할 말이 참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날짜는 다가오는데 무슨 주제로 무슨 설교를 해야 할지 난감한 경험을 해야 하였습니다. 북한 다녀온 이야기를 하라면 할 말이 많겠지만 민족의 화해를 위한 설교를 하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어렵더군요. 통일을 왜 해야 하느냐, 왜 민족이 화해를 해야 하느냐??? 사람이 공기를 마셔야 산다는 당연한 것을 설교한다는 것은 필요하지도, 의미가 있지도 않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설령 다른 민족이라 할지라도 다투고 싸우고 원수로 지내는 것은 옳지 않고 성서의 가르침, 예수님의 가르침도 아닙니다. 인류는 서로 사랑하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서로의 행복을 위하여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 인류에게 주어진 보편적인 양심이지요. 그런데 하물며 수천 년 동안 함께 살아왔던 같은 민족끼리라면 그것은 새삼스레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원래 하나의 민족이었고 동족 간 전쟁으로 분단된 현실에서 화해하고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굳이 설명이 필요하고 의미부여가 필요한 일이 아닌, 그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무슨 특별한 주장이나 무슨 새로운 주장이 아닙니다. 수천 년 살아온 우리의 정서와 우리 안에 내재된 DNA의 요구이며 인간의 양심입니다. 그런데 그 당연한 일이 벌써 70년째 요원하니 우리 민족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새삼스레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저는 누가 우리의 원수인가를 자문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이 우리의 원수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군대에서는 여전히 북한을 주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지만, 세상에 자기의 부모, 형제, 사촌, 친척, 사돈이 어떻게 원수가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들 합니다. 피가 땡기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어쩌다 한 번씩 성사되는 이산가족 상봉만 봐도 그것이 과연 원수들의 관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는데 과연 우리는, 우리가 처한 현실은 원수는 고사하고 가족, 이웃, 동포, 같은 민족이라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지 부끄러운 마음으로 돌아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남이가’ 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범죄자에 가까운 집단들, 지역감정 조장하면서 이익을 챙기는 집단들이 주로 하는 말입니다. 죄인들도 자기 가족을 사랑하고 친척을 챙기고 지인들을 밀어주고 땡겨주고 하는데 우리는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민족의 화해를 위해 별다른 노력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를 더욱 마음 아프게 합니다만 그래도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에 따라 이 길을 지치지 말고 꾸준히 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민족의 화해를 이루는 길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상대방의 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입장에 서보면 십중팔구는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반공교육을 받으며 자라온 사람이기 때문에 어렸을 적에는 북한 사람들이 온통 빨갛고 머리에 뿔, 엉덩이에 꼬리가 있는 마귀처럼 생겼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개성에 처음 가서 북한 사람들을 보니 마귀는커녕 우리와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이웃이었습니다. 개성은 남쪽의 공단이 들어가서 그런가 했습니다만 평양에도 가보고 사리원, 남포에도 그저 동포이고 한 핏줄인 이들밖에 없었습니다. 작년에 평양에 갔을 때는 오랜만에 온 남쪽 동포를 보고서는 다들 ‘어려운 길 뚫고 오느라 고생했다, 반갑다. 곧 다시 오시라’며 한결 같이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원수가 아니라 동포, 한 민족, 이웃이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한국전쟁 이전에는 남쪽보다 북쪽에서 기독교 교세가 더 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봉수교회, 칠골교회라는 상징적인 교회 두 개와 수백 개의 가정교회만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북쪽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그 많던 기독교인들은 다 어디에 갔느냐고요. 그랬더니 이런 말을 하더군요. 한국전쟁이 나고 미군 비행기들이 폭격을 해대니까 교인들이 설마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를 폭격하겠느냐 하고는 예배당으로 피신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예배당에도 폭격이 있었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죽었습니다. 그 이후 기독교를 신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100% 사실은 아닐지 몰라도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또 한국전쟁 당시에 평양에 엄청난 폭탄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1평방미터 당 세 발의 폭탄이 떨어졌답니다. 전쟁 후에 완파되지 않은 건물이 딱 한 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은 역사자료에도 남아있을 테니 거짓말은 아닐 겁니다. 인터넷만 검색해봐도 전쟁에서 더 많은 인명피해를 본 것도 북쪽입니다. 그렇다면 북쪽에서 남쪽을 보는 감정 역시 좋지 않을 것이고 원수라고 여길 것입니다. 양자가 다 피해자임에도 양자가 다 서로를 원수라고 바라볼 것입니다. 이런 아픔들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그쪽도 똑같이 느끼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엊그제 참으로 가슴 아픈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전역을 3개월 앞둔 임모 병장의 총기난사와 무장탈영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임모 병장이 관심사병, 엣날에 하던 말로 고문관이라서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분단에 있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한 희생자의 아버지가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는데 ‘GP라는 곳이 지옥과 같다, 언제라도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개인의 정신상태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겪고 있는 분단병이라는 집단병리현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민족이 화해하지 못하면 우리의 아들들, 젊은이들이 계속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나가며 : 내일이 제 생일입니다. 돌이켜보면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제 생일을 기쁘고 즐겁게 지내본 기억이 별로 없네요. 불행한 역사, 치유되지 못한 역사로 인해 한 사람이 태어난 날 조차 제대로 축복받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일일 것입니다. 제 생일을 제대로 차려 먹기 위해서라도 속히 민족화해의 성업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저를 위해서라도 많이 애써주십시오.
함께 방북했던 분의 이야기를 하면서 말씀을 마칠까 합니다. 방북기간 중에 주일이 되어 칠골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남쪽의 어느 교회에서나 볼 수 있는 똑같은 성가대의 찬양을 듣고 똑같이 설교하는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우리 모습을 보면서 매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칠골교회를 방문한 이들을 소개하는데 남아공에서 온 관광객들이 특송을 한다고 합니다. 이들이 타악기를 두드리고 춤을 추면서 ‘자불라니 코리아’를 노래하였습니다. ‘기뻐하라 코리아여’라는 의미입니다. 그 노래를 들으니 지구 반대쪽에 있는 나라에서도 평양을 찾아와 코리아를 응원하고 위로하는데 정작 우리는 분단되어 다투고 있는 현실이 너무 가슴이 아프면서도 통일한반도의 희망으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같이 가셨던 분이 눈물 콧물 침물을 흘리면서 정말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우시는 겁니다. 이 분은 공군 전투기 조종사 출신입니다. 이분은 군생활 하면서 아침에 잠에서 깨면 머릿속으로 평양 시가지를 그렸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전투기를 몰고 가서 폭탄을 쏟아부어야 할 지점을 떠올리는 상상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 분이 제가 일하는 단체와 평양을 찾게 되었습니다. 주위에서는 ‘당신의 군생활 정보가 북쪽에 다 있을꺼다, 가지말라’ 고 말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함께 갔지요. 그분은 자기가 폭격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이들이 자기의 반쪽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하시더군요. 이 지점이 바로 민족화해의 출발점입니다.
가족과 친척, 자신에게 잘 해주는 것은 죄인들도 ‘우리가 남이가’라고 하면서 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수조차도 기꺼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민족화해! 거창하게 들리는 말입니다만 새삼스레 다시 이야기 할 것도 없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고, 인류의 평화를 바라는 이들에게는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내리신 민족화해의 명령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명령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 민족의 DNA에 새겨진 양심과 정서를 따라서 살아가는 당연한 본능입니다. 민족화해를 위해 그 삶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께 하나님의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