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6,31-33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32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제목 : 하나님이 밥 멕여 주냐!
들어가며 :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오늘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에 나와 그 앞에 무릎 꿇고 진리와 정의를 갈망하며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간구하는 사랑하는 자녀들, 성도들 위에 넘치도록 임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드디어 창립30주년기념주일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뭔가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는데 요즘 경기도 많이 안 좋다고 하는데 이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대폭 축소하고 교우 가족들 중심으로 축제예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외부 손님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들 잔치로 마련하고자 하니까 오래 얼굴 못 본 가족들 함께 예배하고 교제 나눌 수 있도록 권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혹여라도 교회에 한 번 같이 가자고 권면하는 문제로 가족 간에 불편한 관계가 되지 않도록 지혜롭게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무쪼록 우리가 축제예배의 주제를 ‘서른즈음에, 리스타트’라고 정했으니 장년기 맞은 교회가 그 나이에 걸맞는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계기를 만드는 시간 될 수 있도록 많이 협조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들어가서 : 신학교를 갓 졸업한 한 전도사가 그냥 목사가 되는 것보다는 이웃을 섬기는 일을 해보고 안수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어떤 일이 섬기는 일일까 고민하다가 경찰관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찰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1차 합격하고 2차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면접관이 ‘거리에서 집회가 열렸는데 군중들이 극도로 흥분을 했을 때 가장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해산시키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이 전도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하더랍니다. “헌금 바구니를 돌립니다!” 과연 시위대는 해산했을까요? 단순히 웃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잠시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종종 교회에 다니지 않거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밥 멕여 주냐!’ ‘하나님이 밥 멕여 주냐?’가 아닙니다. 질문이나 비아냥의 물음표가 아니라 단정과 확정, 감탄의 느낌표로 말합니다. 그 말인 즉슨 절대 하나님은 우리가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저는 우리 교우들 보면서 그런 생각을 가끔 합니다. ‘요즘 같이 먹고 살고 자기 가족 쓰고 살기도 힘들고 어려운 시대에 시간 내고 돈 내고 열정 바쳐서 하나님 믿고 교회에 나오는 우리 교우들은 참 대단한 신앙인들이거나 바보들이겠다, 그것도 아니면 내가 참 훌륭한 목회자이거나 교활한 사기꾼이겠다!’ 하고 말입니다. 이 지점에서 웃음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안 나온다는 것은 이게 개그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의미이겠지요?!
세상은 이미 확정을 한 것 같습니다. 나 하나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서 무슨 하나님이고 무슨 교회고 무슨 얼어 죽을 신앙이냐? 죽기 살기로 돈 많이 벌고 잘 먹고 잘 살면 그것으로 장땡이다! 그렇지요! 하나님 믿고 교회 다니면 헌금도 내야죠, 시간도 내야죠, 봉사도 해야죠! 생활비도 부족한데 헌금이라, 성공을 위해 써야 할 시간도 부족한데 교회 가서 앉아 있고 교회에 봉사하러 가야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박 멕여 주냐!’고 비아냥거리듯 하나님을 거부하고 교회를 거부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난 몇 년간 OECD 가입국 지표 중에서 한국을 들여다보면 기가 막힐 겁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자살율 1위(10년 연속, 최근 전세계에서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 숫자보다 많음), 1인당 외래진료 횟수 1위, 의료비 증가율 1위, 1천 명당 임상의사 수 최하위, 가계부채 증가율 1위, 남녀 임금격차 10년 연속 1위,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자살율 1위, 유리천장 지수(여성의 사회참여나 직장 내 승진을 막는 사회적 장벽) 3년 연속 1위, 근속연수 최하위, 단기근속자 비율 1위, 장기근속자 비율 최하위, 저임금계층 비율 1위, 풀타임 노동자의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 최하위, 자동차 1만 대당교통사고 발생건수 1위, 인구 100명당 도로연장 뒤에서 1위(최하위권에서 선두를 다투는 수준), 도로연장 1km 당 자동차 보유대수 1위, 교통사고 보행사망자 비율 1위, 수학성적 1위(학업에 대한 흥미나 자신감은 최저 수준, 학업스트레스는 최고수준), 교사에 대한 존경심 뒤에서 1위, 아동의 삶의 만족도 뒤에서 1위, 빈곤국 대외원조 7년간 뒤에서 1위, 결핵발병율 1위, 결핵사망자수 1위,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 1위, GDP대비 정부·민간 분야 사회복지지출 뒤에서 1위, 청년층 고등교육 이수율 1위, 청년층 고등학교 이수율 1위, 고등학교 완수율 1위, 그러나 민간부담 공교육비 비율 14년 연속 1위, 기혼자 세제혜택 뒤에서 1위, 여성의 사회참여도 뒤에서 1위, 출산율 뒤에서 1위, 평균수면시간 뒤에서 1위, 성인학습의지 뒤에서 1위, 낙태율 1위, 1인당 독서량 뒤에서 2위, 스마트폰 보급률 1위(가격은 제일 비싼 걸로 방송됨), 공공도서관수 뒤에서 1위! 총 40가지 종목이었습니다.
최근엔 노동개혁 한다고 저임금 고강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기한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렸고 그나마도 쉽게 해고하고 대체인력 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임금피크제를 들고 나와 고용 문제를 세대 간의 대결구도로 몰아가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 저항하여 가두시위를 하면 기자고 뭐고 마구 연행해다가 벌금폭탄 때리고 가둡니다. 청년실업은 말할 것도 없지요. 대학 학자금 대출로 선심 쓰는 것 같았지만 졸업 후에는 이게 청년들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채보란 청년이 직장 구했다고 해서 ‘이제 십일조 하는 교인 하나 더 늘겠구나’하고 기분 좋게 생각했더니 웬걸! 학자금 갚는 일이 막막하다고 하니 십일조는 고사하고 교회에서 작은 도움이라도 주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남북관계나 국제관계나 이런 거창한 문제는 그렇다 치고 일상의 소소한 생활 자체가 힘들고 괴롭습니다! 도무지 정의가 없고 양심도 없고 부조리와 불합리가 판치고 상식도 없는 세상이 돼버렸습니다. 이러려고 하나님을 뒷방으로 밀쳐 두었던 것입니까?
이게 하나님이 밥 멕여 주냐며 하나님께 등 돌리고 배불리 잘 먹고 잘 사는 일에만 몰두한 결과입니다! 독재를 했건 폭정을 했건 그저 배곯지 않고 먹고 살게 해주었으니 감사하다면서 18년 장기독재를 하다가 암살된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게다가 선거만 잘할 뿐 도무지 무능한 여자를 단지 그 독재자의 딸이었다는 이유로 덜컥 대통령으로 만드는 사람들, 혈세 수십조 원을 금수강산 망치는 토목공사에 쏟아 부어 국민 살림살이를 벼랑 끝으로 밀어버린 사람, 텔레비전에 나와 거짓말도 밥 먹듯 하는 사람이 국민소득 4만 불 올려주겠다고 하니까 하나님이고 뭐고 뒤도 안 돌아보고 대통령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사는 이 나라가 바로 그 결과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릅니다. 세상만 그런 게 아니라 신자들도 이제는 그렇게 믿기로 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교회도 껍데기만 남은 하나님 이름만 부르짖지 물질적 탐욕과 신앙을 바꾼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그렇게 헬조선의 교회는 헬처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이게 듣기 좋게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게 좋을꺼야!’ 하고 편안하게 권하신 거라고 그동안 생각했는데 요즘 이 말씀을 다시 묵상해보니 이건 핏발서린 경고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지 않는 나라가 처하게 될 결과가 얼마나 엄청난지 잘 모르나본데,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뒷전에 미뤄놓고 엉뚱하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뛰어다녀봐야 다 헛수고이고 개고생이다. 이건 권유가 아니라 명령이다!’ 이런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준엄하게 우리에게 경고하시면서 그 무엇보다도 먼저 구하라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구절 여기저기 끌어다가 대고 신학적으로 신정론이 어쩌구 저쩌구, 역사적으로 이런 전례가 있었느니 없었느니 복잡하게 말할 필요 없습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소중한 것이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자녀답게 인간답게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이고 하나님의 의이다’ 이게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 복음의 핵심을 세속적으로는 정의와 상식, 인격과 양심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나님 자녀를 하나님 자녀답게,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려는 이 신앙, 이 정의를 저버리고 먹고 사는 문제, 소유의 문제에만 집착했으니 그 결과에는 하나님의 자녀도 없고 사람도 없고 그저 물질에 눈 먼 야수들만 남게 된 것이고 경쟁력 없는 약자들은 먹잇감이 되어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신세가 돼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 밥 멕여 주는 존재라고 명시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사람에게 먹고 입는 요구는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런 요구가 인간에게 중요한 것임을 알고 계시고 그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이십니다. 하나님께 굳이 그걸 달라고 칭얼댈 필요도 없고 ‘밥 멕여 주실꺼에요?’ 하고 물을 필요도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 아버지이고 어머니이시니까! 알아서 주시니까!
그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살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자 실천하면서 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걱정하는 문제, 즉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디에서 누울까 하는 모든 요구가 자동적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확신에 차 약속해주십니다. 이건 메인을 사면 따라오는 보너스, 사은품, 부록과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에 어떤 사람이 아카디아라는 최고급 승용차를 사서 기분 좋게 집에 타고왔더니 경차 티코가 주차장까지 따라들어오더랍니다. 그래서 왜 남의 집 주차장에 들어오느냐고 했더니 티코 운전자가 하는 말이 ‘아카디아를 사시면 드리는 사은품’이라고 했답니다. 사은품 경차를 얻기 위해서 최고급 승용차를 사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사은품, 보너스로 얻게 될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목숨 걸고 구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과 무엇이 다릅니까?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면, 정의가 바로 서면 먹고 입고 사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신앙적으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나가며 : 하나님이 밥 멕여 주냐고 비아냥 거리면서 하나님을 가급적 구석진 곳, 골방 같은 곳에 쳐박아 놓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우리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진지하게 반성하면서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밥 멕여주나요? 네, 맞습니다. 하나님이 밥 멕여 주십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우리의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그 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면 먹고 사는 일은 문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가, 정의가, 양심이 지배하는 세상이 만들어지면 위에서 언급한 이런 문제들은 결코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결코 이따위 탐욕과 이기심, 착취와 억압, 부조리를 도무지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하면서 여러분께 질문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밥 멕여 주십니까? 아멘으로 화답한 이들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라는 이 엄중한 명령을 진지하게 받아 충성하실 것으로 믿으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성어버이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