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배신, 바버라 애런라이크, 전미영 옮김, 304쪽, 13,800원
어떤 위험이나 위기감을 느꼈을 때, 과연 내가 혹은 사회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긍정적인 마음입니다. 시작할 때부터 긍정적인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이는 시작부터 실패할 마음을 품고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만 정답일까요?
우리들은 긍정적인 사람인가? 아니면 부정적인 사람인가? 라는 질문을 받을 때 과연 나를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교회에서 연 중 행사로 열리는 부흥회나 각 종 회사 웍샵이나 엠티 그리고 자기 계발서는 우리들에게 긍정적인 사람이 되라고 강요를 넘어서 압박감을 줍니다. 긍정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정글과 같은 약육강식 사회에서 버텨낼 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에 했던 질문에 ‘왜’라는 단어를 첨가했을 때에는 이 질문은 상당히 우리들에게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 책은 당연한 질문과 답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입니다. 왜 긍정적인 힘이 필요한가 우리는 항상 긍정적일 수 없는데, 부정적이면 안되는가 라고 다시금 우리들에게 질문합니다. 이 모든 긍정의 사회적 기류가 신기하게도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에 맞닿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안전망이 종교입니다. 따라서 긍정적이지 못한 것은 사회적 구조나 영향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이 긍정적인 생각과 개인의 노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치부합니다. 긍정은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오직 너에게만 관심을 갖고 그러면 성공할 있다라고 말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억압된 감정은 그 자체가 해로운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말로 그런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긍정적 사고가 '실패'해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암이 퍼지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럴 때 환자가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충분히 긍정적이지 못했다고, 애초에 암이 생긴 것도 부정적인 태도 탓이었다고 자책하게 된다. 이 지점에 이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충고는 "이미 피폐해진 환자에게 추가적인 부담이 된다."고 종양학 간호사 신시아 리텐버그는 썼다. 뉴욕 슬로안케터링 기념 암센터의 정신과 의사인 지미 홀런드는 암 환자들이 일종의 희생자 비난을 경험한다고 밝혔다. [바버라 애런 라이크, 긍정의 배신. 70-71쪽]
최근에는 행동만이라도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요구가 점차 가혹해지고 있다. 순응하지 않는데 따른 불이익이 점점 커져, 긍정적인 태도를 갖지 않으면 직업을 잃고 실패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피 인물로 낙인찍혀 완전히 고립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바버라 애런 라이크, 긍정의 배신. 70-71쪽]
긍정적 사고는 고용주의 손에 의해 19세기의 주창자들이 짐작도 하지 못했을 용도로 바뀌었다. 떨치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라는 권고가 아니라 직장에서의 통제를 위한 수단, 더 높은 실적을 내라고 들들 볶는 자극제가 되었다. 노먼 빈센트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을 낸 출판사는 1950년대에 일찌감치 기업 시장으로 눈을 돌려 "기업 임원 여러분, 이 책을 직원들에게 주십시오. 커다란 이익을 낼 것입니다."라는 광고를 냈다. 광고는 영업사원이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이 파는 상품과 자기가 속한 조직에 새로운 신뢰를 갖게 될 것이며, 내근 직원들의 효율성도 높아져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장담했다. 동기 유발이 채찍으로 사용되면서 긍정적 사고는 순응적인 직원의 품질 보증서가 되었고, 1980년대 이후 다운사이징 국면에서 고용 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채찍을 쥔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바버라 애런 라이크, 긍정의 배신. 70-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