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성탄절은 우리교회에게 있어 매우 특별한 날이다. 성탄절은 부활절과 함께 교회의 2대 축제일 가운데 하나인데 그런 중요한 날 우리교회 예배당에서는 예배를 드리지 않고 연합예배에만 참석하였기 때문이다. 바로 용산 남일당에서 열린 ‘고난 받는 이웃과 함께 하는 성탄절 연합예배’에 참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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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에 꼭 하는 설교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가장 낮고 천한 땅으로, 그것도 가장 낮은 모습, 구유에 누인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성탄절 예배는 따뜻하고 포근하고 넉넉하고 좋은 곳에서만 드린다. 낮고 천한 이웃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구유에 누인 아기의 인형만 있지 정작 교회는 그런 아기의 모습을 거부한지 오래인 듯싶다. 올해에는 게을러져서인지 유난히 그 당연한 사실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몇 주 전부터 제안을 했다. 이번 성탄절은 고난 받는 이웃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 어떻겠느냐고, 여기에 덧붙여 성탄절 헌금으로 들어온 것은 전액 고난 받는 이웃에게 주면 어떻겠느냐고! 몇 주를 계속 물어보니 귀찮아서 그랬는지, 세뇌돼서 그랬는지, 아무튼 그러자고 흔쾌하게 대답을 했다. 그래서 내친 김에 하나를 더 물었다. ‘오전 11시에 교회에서 성탄예배 드리고 오후 3시에 또 가서 성탄절연합예배 드리는 것은 너무 형식적이지 않느냐, 오전이건 오후건, 교회에서건 밖에서건 예배는 한 번만 제대로 드리면 되지 왜 우리교회에서 꼭 해야하고 가가서 하는 것은 무슨 보너스 같이 생각할 필요 있느냐.’ 그랬더니 그냥 오후에 용산에서 한 번만 드리면 되겠다고들 찬성을 한다. 그래서 교인 전원이 용산에서 열리는 연합예배에 가기로 했다.
성탄절 오후 2시에 교회 승합차를 타고 나와 교인들 집을 한 바퀴 다 돌아 십여명을 태웠다. 곧바로 용산으로 오기로 한 식구들도 있었다. 가는 길에 북가좌동 평화교회(박찬배 목사)에서 직접 만든 빵을 용산에 전달하고 싶다고 들러서 가져가란다. 사실 시간이 빠듯한데 거절할 수 없어 들렸더니 차는 더 막힌다. 오전부터 추적거리며 내리던 거울비가 다행히 완전히 멈췄다. 미친 듯이 운전을 해서 겨우 3시에 교인들을 용산에 내려주고 나는 주차를 하러 갔다. 웬걸! 주차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오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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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시 반이 거의 다 되어 예배에 참여하였다. 한 마디로 놀랐다. 200여 미터 되는 골목이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지나가기도 쉽지가 않았다. 사람이 많이 모였으나 조용하고 진지하게 예배에 참여하고 있었다. 최근에 이렇게 기독교인이 많이 모인 것은 처음 본다. 의견을 모아보니 5-600명은 되겠다고 하니 말이다.
우리교회 식구들을 찾아 헤맸다. 맨 뒤쪽에 간신히 자리를 잡고 몇이 서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진 모양이다. 권오성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가 설교를 하는데 이미 예배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골목이 원래 바람이 많은 골목이라 순간순간 찬바람이 몸을 휘감아 부르르 떨게 한다. 성찬식을 하는데 그래도 성의를 보이느라고 맨 뒷줄까지 성찬기를 들고 왔다. 그러나 나는 받았지만 받은 사람보다 못 받은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식구들이 하나둘 발견되었다. 예배 순서지도 없어서 뭘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멍하게 서 있다가 어설프게 찬송도 따라 부르는둥 마는둥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예배는 끝이 났다. 어정쩡하게 한켠에 서 있다가 기독교대책위의 최헌국 목사를 만나 평화교회에서 보내준 빵을 전달하고 우리가 모은 성탄헌금 약 40여만 원을 유자녀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전달하였다. 그저 서서 몇 마디 나눈 것이 다였다. 그리고 그냥 가기 뭐해 빈소에 들러 댓 사람이 분향을 하였다.
딱히 뭘 하고 온건 없다. 예배를 드렸다는 느낌도 별로 없다. 정신없이 갔다가 추위에 떨면서 멍하니 사람들 틈에 서 있다가 왔다는 느낌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올 줄 몰랐는지, 아니면 이 좁은 골목에 대해 상황판단이 잘못 되었는지, 아무튼 여러 모로 불편했다. 교인들을 꼬셔서 데리고 온 목사로써는 여간 마음이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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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생각하면 할수록 잘했다. 탁원한 선택이었고 신앙적인 선택이었다. 사실 설교가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추운데 너댓 시간을 서있는 것도 아니고 매주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주눅들 필요까지야 있나 하고 생각하면서 좀 시설이나 상황이나 모든 것이 그랬지만 그래도 그 한 시간 동안은 고난 받는 이웃과 함께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물러 있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도 했다. 좀 불편한 점이 있다지만 따뜻한 예배당에서 보일라 열심히 돌리면서 편안하게 예배드리는 것보다는 그래도 좀 더 크리스마스틱하고 성탄절예배 답지 않는가, 낮고 천한 곳, 고난 받는 인류와 함께 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성탄절다운 성탄절을 보낸 셈이다. 그저 잠시라도 어려움에 처한 이웃과 함께 하였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으면 안 될 것도 없지 않은가! 우리교인들이 용산 유가족을 마주 볼 기회조차 없었을 텐데 이렇게 예배당을 문을 열고 나와 함께 하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이 이 예배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고 은혜를 누리기에 충분했다.
작년에 비하면 날씨는 따뜻했다. 사람은 배 이상 모였다. 우리교회로써는 처음으로 중요한 날에 교회에서 예배를 안 드리고 밖에서 드린 날이었다. 예배는 하나의 종교의식이 아니라 삶이다. 성탄절은 삶이 충만하고 인생들의 삶이 담겨 있는 예배를 드리는 날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성탄절 연합에배는 우리교회와 교우들에게 있어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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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방현섭 목사가 당당뉴스에 기고한 글로 당당뉴스에서 퍼온 글입니다.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