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은 한국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획을 긋는 해입니다. 바로 5.18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5.18 당시 광주는 외부와 철저하게 고립된 내륙의 섬과 같았고 언론은 일체 무시했으며 그나마도 남파간첩과 불순분자들의 선동에 의한 폭동으로 왜곡하였습니다. 5.18은 한국의 마지막 무장봉기였지만 민중들은 쿠데타 세력의 폭력적 진압에도 불구하고 평화적으로 결집하고 대응하여 한민족의 높은 민주주의 수준을 보여주었고 이를 높이 평가한 유네스코는 2011년 5월 25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한국사회와 민중은 민주주의에 대한 선택과 군부독재에 대한 거부를 분명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혈맹’이라고 믿었던 미국의 실체를 알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1979년 12.12사태를 통해 불법적 군사점령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세력이 군대를 동원하여 광주를 무차별적 폭력으로 진압하자, 광주민중은 미국이 개입하여 이를 막아줄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 사실은 한국군대의 이동을 위해서는 평시작전권을 가진 주한미군사령관의 재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로 자주적 민주주의를 세우고자 하는 투쟁은 반미운동의 성격을 띠게 되어 부산, 광주의 미문화원 방화사건으로까지 확대됩니다.
5.18민중항쟁이 올해 35주년을 맞습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한국 역사에 중대한 방점을 찍은 5.18은 국민적 합의와 동의에 따라 그 위상이 격상되었고 무자비한 폭력에도 용기를 잃지 않고 슬기롭게 대처한 광주시민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요즘 다시 인터넷 공간을 떠도는 글들을 보면서 참으로 참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5.18이 북한의 남파간첩 600명이 침투해서 벌인 게릴라 작전이라는 주장이나 5.18은 없애버리고 이승만, 박정희를 국부로 삼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버젓이 떠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일부지역에서 5.18을 재심하자는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이건 보수와 수구를 넘어서 정신병자이고 독재노예와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벌써 35년이나 된 이야기입니다만 민중은 끊임없이 이 기억을 지키고 전달했으며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줄기차게 들어온 이야기이지만 과연 우리는 5.18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희생자들, 유가족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막연하게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면서 남의 일처럼 생각한 것은 아닌지, 그저 내 한 몸뚱이 챙기기에 급급하고 내 입에 맛있는 음식 찾아다니며 내 삶의 풍요로움에만 젖어 있던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와 평등, 풍요의 절반은 5.18이 준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한일 경기가 열리는 축구장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구호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또 “나치가 공산주의자와 노동조합원, 유태인들을 덮쳤을 때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노동조합원도 아니며 유태인도 아니라는 이유로 침묵했던 나에게 그들이 들이닥쳤을 때 아무도 나를 위해 말해주지 않았고 말해 줄 사람이 남아있지도 않았다"는 마틴 니묄러 목사의 이야기도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5.18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 모두를 연결해주는 보이지 않은 끈을 외면할 때 내가 희생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쪼록 5.18 35주년을 맞이하는 이 즈음에 우리 존재의 기반 되신 하나님을 부르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