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평화'의 달]
민족 상잔 비극의 역사로 얼룩진 6월입니다. 70년전에 일어났던 이 비극이 현재에도 한 맺힌 이산가족의 마음으로, 적대적 대결정책으로, 반공 이데올로기로 세뇌되고 정치적으로 억압 받은 민중의 삶으로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하나님께서 증오와 대결이 여전한 이 땅에 평화를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 알립니다!
1. 오늘은 성령강림 후 제4주일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명 평화의 길을 걷는 삶을 사시기를 당부합니다.
2. 수도권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되고 있어 지역감염 예방을 위한 노력에 교회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예배 참여시 체온 측정과 손소독제 사용, 마스크 착용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3. 방정빈 청년이 입대 후 일 주일 간의 첫 휴가를 나왔습니다. 건강하게 다시 만나게 되어 감사합니다. 즐거운 휴가를 보내고 복귀하시기 바랍니다 .
4. 교우들과 가정의 행복과 평화, 건강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 다음주일(7월 5일 . 성령강림 후 제5주일) 예배위원
인도 및 설교 : 방현섭 목사 / 기도 : 목회기도 /
봉헌위원 : 임미화 집사 / 성찬보좌 : 한효균 부장 / 안내 : 함옥분 장로

목회서신
성소수자? 비정규직? 우리랑 상관도 없는데…
지난주일 주보에 이동환 목사님과 관련된 사건을 소개하며 이 지면을 채웠습니다. 이동환 목사님이 성소수자 교인이 요청한 인천퀴어문화 축제에서 '성소수자 축복식' 집례를 맡은 죄(?)로 감리교회의 재판을 받게 되었다는 글이었지요. 지난 24일(수) 오후 1시, 광화문 감리회본부 앞 희망광장에서 이동환 목사님에 대한 기소 중단을 촉구하는 개신교 목사 및 신도들이 '성소수자 축복기도로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그 기자회견에 참석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조만간 기자회견을 한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었는데 정확히 일정을 알지 못하고 '연락이 오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다음날 기사가 나온 것을 우연히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동지들과 이동환 목사님께 미안합니다. 그 전날에 통화도 했던 어떤 목사님이 아무 얘기도 안 해준 것이 좀 섭섭하고 야속하긴 했지만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시대가 아닌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반성합니다.
사실 우리 교회 주보에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 몇 차례 반복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우리 교회에도 성소수자나 성적 취향의 문제로 차별 받는 교우가 있다면 저 역시 당연히 이 전선의 한 복판으로 뛰어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랑 직접 상관도 없는데, 굳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서구에서는 성소수자 문제가 사회의 첨예한 주제가 되었지만 한국은 아직 아니기도 하고요. 우리 교우들 중에도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런데? 왜? 굳이?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나와 상관 없으니까'라는 생각이 정말 상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나는 해당되지 않으니까, 상관이 없으니까, 타인의 일이니까… 하는 생각이 결국 관계를 단절시키고 유기체인 사회를 병들게 하며 개개인을 공동체의 보호로부터 고립시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차별과 억압의 화살이 언젠가는 자신에게 향하게 됩니다. 내가 보호해주지 않는 타인의 권리는 결국 나 자신도 보호받지 못하게 되는 근거가 됩니다. 그러니 성소수자, 아니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 병자, 장애인, 소수민족… 이루 꼽지도 못할 많은 이유로 차별 받는 사람들의 문제는 결국은 나 자신의 문제이고 또 나 자신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존중하고 또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는 선언이지요. 우리가 고백하다시피 예수님은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편안하고 존엄한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죄인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낮고 천한' 이 땅으로 오셔서 대신 십자가의 극형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다시 말하지만 고귀하신 예수님은 전혀 상관 없는 '낮고 천한' 이 땅의 인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사람은 자기와 상관이 없더라도 이웃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생기는 것 없어도 자기희생을 합니다.
내 한 몸 챙기고 내 가족 건사하기도 쉽지 않은 시대인데, 타인의 삶까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한다면 예수님께서 힘을 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비정규직 제로, 함께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인천국제공항이 여객보안검색 직원 1,900명을 '청원경찰' 신분으로 직접 고용하기로 하자 청와대 국민청원에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 주십시오'라는 글이 올라왔고 25만여 명이 동의하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2017년 인천국제공항을 지목, 방문하였습니다. 이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그에 따른 후속 조치입니다. 그런데 취업준비생들은 정규직이 갑자기 1,900명이 채용되면 신규채용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며 자신들이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연봉이 5천만 원, 알바하다 정규직 전환된다'는 등의 소문이 퍼지면서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연봉 5천'은 사실이 아니며 '정규직 직원의 자리를 뺏는 것도 아니다, 정규직이라고 임금 두 배 더 받는 것도 불공정하다'고 해명하였습니다. 비정규직은 고용불안을 야기하며 궁극적으로 전체 노동자들의 안정된 고용환경을 위협합니다. 그러나 청년들이 안심할 수 있는 적극적 해명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비정규직 노동자는 왜곡된 한국 노동의 현실이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극단적 경쟁과 차별을 유도하는 악법입니다. 비정규직 제도를 철폐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다시 극단적 선택을 하고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모두가 힘을 합쳐 지혜롭게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길로 나아가게 하십시오.

동해 묵호항에서 배로 3시간. 거리로는 그다지 많이 떨어져 있는 것 같지 않았지만 울릉도에 발을 내딛는 순간 ‘이 곳은 뭔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오키나와보다도 더욱 푸르딩딩한 바다가 눈을 시원하게 해줬는데(제가 그 동안 보았던 바다 중에 가장 아름다웠던 곳으로 오키나와의 바다를 손에 꼽고 있어서요), 얼마나 파랗던지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이 없어 보일 정도였습니다. 또 거뭇거뭇한 기암석들이 마치 병풍처럼 섬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같은 화산섬인 제주의 현무암이 아기자기하고 예쁜 느낌이라면 울릉도는 거칠고 야생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선이 굵고 시원시원한 풍경을 자랑했습니다. 그 동안 국내외의 적지 않은 곳을 여행해 보았는데 울릉도는 손에 꼽을 만큼 아름답고 독특한 풍광을 지니고 있더군요.
울릉도 사동항에 도착하여 배에서 내려 줄을 섰습니다. 코로나 청정지역이다 보니 방역에 더욱 신경을 쓰는 터라 철저하게 검사하고 있었는데, 한 시간여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것만으로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바다가 다 그렇지 뭐.’ 익숙해 질대로 익숙한 줄 알았는데 뜻 밖에 만난 생경하리만치 아름다운 바다, 생경한 갈매기의 울음소리, 생경한 산과 절벽을 바라보며 놀람과 설렘의 마음이 울렁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이 이와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매일 보는 풍경이 낯설게 보이고, 익숙한 단조로움에 균열이 생기면서 신비로움과 경외감이 어느 순간 나를 감싸고 있는 것이죠.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하늘과 바다와 산이 울릉도의 첫 인상이었습니다. 이후의 여정을 돌이켜보면 울릉도의 곳곳에서 비슷한 감흥을 여러 번 경함할 수 있었습니다. 가히 울릉도는 정말 아름다운 섬이었고, 타국으로 떠나기 전 아버지 덕분에 이 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작 울릉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름다운 풍광이 아니라, 좁디좁은 삶의 터전이 가져다주는 답답함의 느낌이었습니다. 아마도 이제 곧 한국을 떠나 라오스라는 낯선 터전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일반 여행자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더욱 예민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울릉도의 마을, 길, 생활 시설을 돌아보면서 이 곳에서 사는 것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시종일관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라오스보다 더욱 척박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울릉도는 생각보다 작은 섬입니다. 섬 크기도 크지 않지만 섬의 대부분이 산지로 되어 있기 때문에 평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교과서에서 들어봤음직한 ‘나리분지’가 유일한 평지인데 그렇게 넓지 않을뿐더러 가파른 산등성이를 타고 차로 몇 십 분을 올라가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런 상황이니 어떻겠습니까. 울릉도에는 농사지을 곳이 없고, 마을이 형성되기가 어렵습니다. 또 바다와 산으로 막혀있다 보니 마을과 마을 사이에 소통하기에도 버겁습니다. 말 그대로 섬처럼 고립되어 살 수 밖에 없는 땅이 바로 울릉도입니다.
최근 해안일주도로가 완성되었다고 해서 자동차로 울릉도 한 바퀴를 돌아보았습니다.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길인데, 길의 상황이 아주 열악했습니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 절반가량은 비포장에 가까운 길이었고 곳곳에 차선이 하나밖에 없어서(중앙선이 없는 일차선) 일일이 신호등으로 반대편 차가 오는지를 확인하고 움직여야 했습니다. 또한 해안근처의 도로가 아니면 길이 대부분 경사가 급격히 높은 언덕과 산지로 통하기 때문에 운전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연신 아직도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냐면서 신기해하신 것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울릉도는 정말 열악하고 폐쇄적인 장소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마을이라고 해도 바다와 인접한 언덕배기에 설기 설기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요. 보통 섬과 바다, 자연을 떠올리면 ‘자유로운 삶’이 연상될 텐데 이 곳은 오히려 척박하고 폐쇄적이어서 너무나 갑갑해 보였습니다. ‘라오스에서는 살아도 울릉도에서는 못살겠다.’ 아내와 제가 몇 번이고 나눴던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울릉도에서 목회하고 있는 신학교 동기들을 만나면서 이 곳의 또 다른 측면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울릉도 동산교회에서 3년째 목회하고 있는 조성태 목사와 유민정 목사는 둘 다 저의 신학교 동기이자 부부목사입니다. 여행 둘째 날 귀한 만남을 가지면서 이들이 울릉도에 들어오게 된 이야기, 이 곳에서 목회하는 이야기, 또 울릉도의 선교역사 등에 대하여 들었는데 성태와 민정이가 들려준 놀라운 사실 첫 번째는 울릉도의 현실이 내가 보고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척박하고 열악하다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지가 주지 못하는 행복함과 평안함을 풍성하게 느끼면서 목회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힘든 여건 속에서 바른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성도들의 삶과 절실한 기도가 이 곳 울릉도의 틈 속에 스며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울릉도에는 38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이 작은 섬에 38개의 교회가 있기 때문에 가는 곳곳마다 십자가를 볼 수 있는데, 심지어 산꼭대기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장소에도 교회가 있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울릉도의 척박한 현실은 기독교 신앙을 통해 극복되어왔고, 어려운 여건을 뛰어넘는 행복한 삶의 한 가운데에는 하나님을 향한 절실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성태와 민정이가 목회하는 동산교회에는 선교 110주년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올해가 울릉도 선교 111주년이 되는 해인데 그 시작이 바로 감리교였다고 합니다. 울릉도에 선교를 위해 공식적으로 방문한 전도자는 영국성서공회 소속의 매서인이었던 김병두(金炳斗)였습니다. 그가 감리교 소속이었기 때문에 울릉도에는 최초로 감리교가 세워졌으나(1909년도) 이 후 강원도에서 경상남도로(1907년), 경상남도에서 경상북도로(1914년)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선교지 분할의 약속 때문에 처음 개척된 교회가 감리교회에서 장로교회로 소속이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 울릉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는 장로교회입니다.
이번 울릉도 여행을 하면서 사람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아름다운 풍광이지만, 가장 절박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곳의 삶의 환경과 조건이고, 가장 깊이 있게 남는 것은 결국 그 환경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척박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왔던 신앙인들, 그리고 지금도 최선을 다하여 목회하는 조성태 유민정 목사를 비롯한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있기에 척박한 땅은 진정 아름다운 땅으로 회복되어 갑니다. 울릉도에는 아름다운 자연풍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신앙의 풍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드러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지녔으면 곧 보살이 아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수보리여. 실로 법 없이 아누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이다.
何以故오, 須菩提여. 若菩薩이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면 卽非菩薩이니라. 所以者가 何오, 須菩提여. 實無有法하여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니라.
만약에 보살이, 내가 누구를 멸도하였다고 한다면 이는 네 가지 상(四相)에 잡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다. 보살은 내가 없음을 아는 사람인데, 없는 내가 누구를 멸도했다고 하겠는가?
여기 법이 없다(無有法)는 말은 아·인·중생·수자가 따로 없다는 말이다. 그런 것이 있어서 아누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 아니다. 위없이 바른 깨달음이라는 그런 것을 얻을 자가 따로 어디에 있지 아니함을 깨닫는 것이다.
◆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여래가 연등 부처님 계신 곳에 법이 있어서 아누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겠느냐? 아닙니다. 제가 부처님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에는, 부처님께서는 연등 부처님 계신 곳에 법 없이 아누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습니다.
須菩提여, 於意云何오. 如來가 於然燈佛所에 有法하여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아. 不也니이다. 如我解佛所說義컨대 佛이 於然燈佛所에 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니이다.
연등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스승이다.
여래가 수보리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만약 연등 부처님 계신 곳에서 법을 지니고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얻었다면 그것을 무상정등각이라고 할 수 없으리라.”

옛날에 기러기 한 마리가 있었다. 가을철이 되어서 이동을 하려고 하는데 함께 사이 좋게 지냈던 거위가 마음에 걸렸다. 기러기는 거위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함께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헌신적으로 거위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거위들도 처음에는 매우 흥미있게 생각했다. 기러기의 수고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거위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갈 수록 거위들은 기러기에게 매서운 말을 했다. 경험도 없고, 지혜도 없는 공상적인 바보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기러기는 하도 깊이 자기 자신을 거위와 관련시켰기에 이제는 거위들이 그 기러기를 지배하게 되었다. 거위의 말이 기러기에게 무게가 되어 버린 것이다. 마침내 기러기는 그 무게에 눌려 더 이상 날지 못하고 말았다.
기러기가 한 일은 아름다운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과오였다. 거위라는 놈은 결코 기러기가 될 수 없지만 기러기는 곧잘 거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러기의 시도는 훌륭한 일이 었지만 한 가지 유의했어야 했다. 즉 자신을 보존했어야 했다. 거위들이 자신을 지배하려고 드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때 그 때는 떠났어야 했다. 이것은 천재에게도 해당된다.
이상은 1854년에 쓰여진 키에르케고르의 마지막 말이었다.
때로는 남을 가르치려는 오만이 자신의 발목을 잡습니다. 발을 담그기는 하지만 물들지는 말아야 하는 데 그게 어디 쉽습니까? 오늘도 많은 거위들은 자신의 한계를 보기보다는 자신들을 가르치려는 기러기를 탓하며 거위가 되기를 거부하는 기러기를 타살하며 기러기 없는 거위의 세상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러기이신 그분은 날기를 포기한 거위떼 속에서 피 흘려 죽으시며 가르치려드십니다. “그래 한 번 날아보자꾸나” 꿈꾸며 결단하는 거위를 기대하시며...
오늘 날개가 돋았는지 겨드랑이를 만져보시기 바랍니다.
[페이스북 예화공작소&희망충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