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통일'의 달]
식민지배에서 벗어나자 마자 우리의 의사와 관계 없이 두 동강 나 대결과 갈등의 상처를 입은지 벌써 75년이나 되었습니다. 민족의 하나됨은 양자가 함께 마음을 모아야 함에도 간격을 좁히기가 쉽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외국의 간섭을 벗어나 이 민족이 통일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알립니다!
1. 오늘은 성령강림 후 제9주일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명 평화의 길을 걷는 삶을 사시기를 당부합니다.
2. 오늘은 강원도 인제 방인웅 장로님 댁에서 임시 야외예배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함께 참여하지 못하신 분들께 양해를 구하며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섬겨주시기를 바랍니다.
3. 다음주에 진행하기로 했던 묵상과 생활 나눔 기도회는 한 주 연기하여 셋째 주일(16일)에 진행하겠습니다. 꼭 참석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4. 교우들과 가정, 직장의 행복과 평화, 건강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5. 옥바라지선교센터가 노량진수산시장 강제이전 반대투쟁 기금 마련을 위한 벼룩시장을 준비하며 8월 21일까지 기부물품을 받고 있습니다. 뜻 있으신 분들의 기부를 부탁합니다.
■ 다음주일(8월 9일 . 성령강림 후 제10주일) 예배위원
인도 및 설교 : 방현섭 목사 / 기도 : 임미화 집사
봉헌위원 : 안주영 성도 / 성찬보좌 : 윤재민 청년 / 안내 : 방정혁 학생
이모저모
급작스럽게 임시(!) 야외예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코로나고 뭐고 심심한 게 제일 힘들다!"
함옥분 장로님이 요즘 입에 달고 다니시는 말씀입니다. 어디 장로님뿐이겠습니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년이 넘도록 코로나19가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족쇄를 채워 마음 놓고 모임을 갖지도 못하고 야외예배도 가지 못하였으니 말입니다. 코로나가 인간의 육신뿐만이 아니라 정신과 관계에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당연히 좀이 쑤시지요!
지난주일 오후 공동식사를 마치고 차량운행을 나서려는데 일단의 무리(?)가 그냥 헤어지기 아쉽다며 근처 커피숍에 가서 차 한 잔 마시자고 작당을 하였습니다. 저도 해야 할 일처리를 하고 조금 늦게 합류하였습니다. 테이블 두 개를 합쳐 둘러 앉아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정치 사회 이야기, 직장 이야기, 개인사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19로 위축된 교회 행사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맘때면 '평화통일 공동기도주일 예배'와 '한여름 밤의 꿈'을 진행할 시기이지요.
강원도 인제에 계시는 방인웅 장로님, 김영순 권사님 부부께서 요즘은 닭을 키워 유정란을 파시는데 부화한 닭 중에 수탉이 많아 골치라는 이야기를 제가 하였습니다. 면역력이 중요한 시기에 중복이 되었음에도 교회에서 삼계탕 한 그릇 대접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마음 같아서는 교우들을 인제라도 모시고 가 백숙이라도 먹고 왔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이 말이 발단이 되었네요. 8월 둘째 주에는 휴가 일정이 있는 가정들이 있으니 다음 주라도 당장 가자는 겁니다. 급작스럽게도 임시 야외예배(?) 일정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마침 강원도에 부모님을 좀 뵈러 갈 일이 있어서 여쭤보니 환영하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이번 임시 야외예배 모의의 전모입니다.
기획과 실행이 순식간에 진행되는 게 작은교회의 장점이기는 하지만 전체 교우들의 일정을 조정하고 동의를 구하지 못하고 너무 급작스럽게 행사를 하게 되어 매우 죄송합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말 나온 김에 추진하자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비가 하루 종일 꽤 많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서 좀 걱정이긴 합니다. 그냥 차타고 가서 예배하고 점심 먹고 잠깐 산촌에 내리는 비 구경하다가 일찍 되돌아오는 일정이 되겠지만 그저 아쉬운 마음만 적당히 달래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오가는 빗길에 어려움 당하지 않고 잘 다녀올 수 있도록, 짧은 외유이지만 어려운 시기에 나서는 길이니 서로 섬기며 배려하는 야외예배가 되도록 협력하시고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리산 피아골에서 집중호우에 휩쓸린 피서객을 구조하던 20대 김국환 소방관(소방교)의 안전줄이 끊어지면서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7월 31일 오후 3시경 방생한 사고였습니다. 당시 피서객은 급류에 휩쓸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상태였으나 김 소방교가 안전줄에 의지하여 물로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안전줄이 끊어진 것입니다. 소방당국은 특수구조대와 헬기를 투입해 사고 18분 뒤 김 소방교를 구조하였으나 의식이 없었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후 4시경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김 소방교가 구조하려던 피서객 역시 네 시간 가량의 수색 끝에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2017년 소방관이 된 김 소방교의 동료들은 그가 "평소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소방관이었다."며 비보에 안타까워했습니다. 해마다 급류로 조난당한 피서객을 구하려다 순직한 소방관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피서객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소방관들의 숭고한 희생과 노고에 감사와 존경을 바칩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위험에서 구출하며 돕고자 자신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희생하는 소방관들의 노고와 희생에 감사드리며 이들의 헌신에 하나님께서 보답해 주시고 故 김국환 소방교의 영혼을 편히 쉬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도 그 희생에 감사하며 본받는 삶을 살겠습니다.
제2화 일탈과 방황(1)
순진했지만 그렇게 진지하진 않았던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이후의 삶은 못된 짓만 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보이고 싶지 않던 일들을 들추어내려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말도 거칠고, 싸움도 잘했다. 아니 잘하게 만들어졌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이다. 나보다 2살~3살 많던 동네 형들이 중학교로 진학하고 형들은 나보다 3살 많던 형들과 싸움을 시켰다. 나는 죽기 살기로 싸워야 했고, 지칠 때까지 싸워야 했다. 아마도 이길 때까지 싸우게 했던 것 같다. 한 명을 이기면 또 다른 한 명이 나와서 토너먼트로 싸운다. 나는 나보다 몇 살 많던 형들을 이기기 시작했고 동네에서, 학교에서도 나는 무서운 사람이 되었다. 다음날 학교에 갔을 때 선생님이 소스라치게 놀라셨다. 얼굴에 손톱으로 긁힌 상처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학교폭력, 동네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어가는 모습이 아닐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건달들 싸움 교육하는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작은 방 속에서 둘이 팬티만 입고 지칠 때까지 싸웠다-영화 ‘똥개’처럼). 나는 이 일들을 자랑삼아 우쭐대며 나를 과시하듯 떠들어 댔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진가를 보여준 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 친구가 전학을 왔다. 그 친구는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자신이 짱(탑)이었다고 으스대고 다녔고 그 모습이 내 눈에 거슬렸다. 기회를 엿보던 어느 날 점심 때 나는 그 친구를 이유 없이 식판으로 마구잡이로 때렸다. 나를 말리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 후 나는 명실상부한 ‘짱’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학교와 학급에서 싸움으로는 탑이 되었다. (흡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영화와 비슷했다)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고 나에게 회개라는 명목은 당시의 일들이었다. 아무 잘못도 없던 동기들을 사정없이 때리기도 하고, 누군가 의뢰가 오면 나를 추종하는 아이들 10여 명을 데리고 쫓아가 때려주기도 했다. 같은 반 아이들은 나에게 친근하게 말 한마디 붙이지 못했고, 가끔 말을 걸 때면 반말로 건네는 말들이 귀에 거슬릴 정도였다. 그렇다고 아주 못된 짓만 한 것은 아니다. 당시 6학년 3반의 아이들을 누군가 때리거나 약 올리면 어김없이 내가 가서 처리해줬고, 교실이 너무 소란하면 조용히 시키기도 했다. 그렇지만 폭력은 어떤 집단에서도 용납되지는 않는다. 그 당시에는 그런 것을 가르쳐 준 사람도 없었고 듣지도 않았다.
이런 존재였기에 학교에서는 블랙 리스트에 올라 선생님들이 꺼리는 학생이 되었다. 6학년 담임선생님(아직도 ‘이0수’라는 그 이름을 잊을 수가 없다)은 나를 너무 싫어하셨다. 어느 날 아침마다 있던 국민의례시간에 떠들다 걸렸던 적이 있는데 그날 엄청 매질을 당하고, 아니 싸다구를 맞고 칠판에 딱 붙어서 한 가운데 있는 태극기를 하루종일 쳐다보고 있으라는 벌을 받았다. 반 아이들은 그 모습을 몇 시간을 내내 봐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태극기가 싫어졌다. 아니, 이렇게 강요하는(고문인가?) 국가와 학교 그리고 그 ‘이0수’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이 싫어 졌다. 나에게 저항의식이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다.
우리집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애매모호한 기독교집안이다. 명절 때는 제사대신 예배를 드린다. 아버지는 항상 자식들에게는 헌금을 챙겨주셨다. 200원을 주시면 100원은 헌금을하고 100원 떡볶이를 사먹었다. 당시 100원에 밀떡 8개를 주는 것이 동네 떡볶이 업계의 ‘rule’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는 꼭 가야 했다. 아버지 본인은 정작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서 “학습세례”인이라고 말씀만 하셨고, 술 드시면 카세트테이프로 나오는 복음성가를 틀어놓고 울기도하고, 노래도 가끔 따라 부르시기도 하셨다. 그런데 교회는 안 가신다. 요즘 말하는 가나안 성도쯤 되셨던 것 같은데 난 그래도 아버지가 신앙심이 있다고 믿는다. 지금에 내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한 장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문열의 원작 소설로 소도시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엄석대'라는 절대 권력의 형성과 붕괴의 모습을 그렸다. 엄석대는 회유와 협박, 폭력으로 권력을 유지하였다.
18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여래에게 육안肉眼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 육안이 있으십니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여래에게 천안天眼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 천안이 있으십니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여래에게 혜안慧眼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 혜안이 있으십니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여래에게 법안法眼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 법안이 있으십니다.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여래에게 불안佛眼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게 불안이 있으십니다.
須菩提여, 於意云何오. 如來有肉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이시여. 如來有肉眼이니이다. 須菩提여, 於意云何오. 如來有天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이시여. 如來有天眼이니이다. 須菩提여, 於意云何오. 如來有慧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이시여. 如來有慧眼이니이다. 須菩提여, 於意云何오. 如來有法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이시여. 如來有法眼이니이다. 須菩提여, 於意云何오. 如來有肉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이시여. 如來有肉眼이니이다. 須菩提여, 於意云何오. 如來有佛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이시여. 如來有佛眼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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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에게 ‘눈이 있다’는 말은 그가 무엇을 알아본다는 말이다. 똑같은 골동품을 보아도 눈이 있는 사람만 그 물건됨을 알아본다. 눈이 없으면 보면서 보지 못한다.
그러면 그 ‘눈’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 골동품을 알아보는 눈을 얻으려면 다른 길이 없다. 그것을 볼 줄 아는 사람한테서 배워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골동품을 보고 보고 또 보아야 한다. 음악을 듣는 귀도 마찬가지다. 베토벤의 음악을 알아듣는 귀가 없으면 베토벤을 감상할 수 없고, 베토벤을 듣고 듣고 또 듣지 않으면 그 ‘귀’를 얻을 수 없다.
부처님에게 다섯 가지 눈이 있다는 말은 중생에게도 다섯 가지 눈이 있다는 얘기다. 다만 부처님과 중생의 다른 점은, 부처님은 있는 눈을 떠서 보고 중생은 있는 눈을 뜨지 못해서 보지 못하는 데 있다. 눈이 있어도 멀었으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눈으로 무엇을 본다는 것은 보는 자와 보이는 것 사이에 아무 막힘이 없어서 ‘하나’를 이룬다는 얘기다. 내가 저 돌멩이를 보는 순간 돌과 나는 서로 통하여 하나로 된다. 내가 돌을 보는 동안 돌도 나를 본다. 벽에 창을 뚫으면 그 창을 통해 방 안과 방 바깥이 서로 통하여 하나를 이룬다. 눈은 창과 같다. 눈이 맑다는 말은 눈에 아무 다른 것이 섞여 있지 않다는 말이다. 맑은 눈이 곧 밝은 눈이다.
육안肉眼에 대하여는 따로 설명할 것 없겠고, 천안天眼은 하늘의 눈이다. 온 세상을 한꺼번에 두루 보아 빠뜨리는 것이 없다. 육안은 하나의 관점을 지니지만, 천안은 모든 관점을 동시에 지닌다. 육안으로는 앞을 보면서 뒤를 동시에 볼 수 없다. 뒤를 보려면 돌아가거나 돌리거나 해야 한다. 그러나 천안은 앞 뒤 위 아래를 함께 본다. 사람이 천안을 얻으면 만물을 공평무사公平無私로 보게 될 것이다.
혜안慧眼은 지혜의 눈이다. “지혜의 불꽃이 언제나 밝은 것”을 혜안이라고 했다.
(顔丙) 무엇을 지혜롭게 본다는 것은 순리대로 밝게,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이다. 지혜로운 자만이 지혜롭게 본다.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게 본다. 열심히 보지만 있는 대로 보지 못한다. 혜안은 꿰뚫어 보는 눈이다. 대상의 속에 들어가서 대상을 본다. 사람이 혜안을 얻으면 아무한테도 속지 않는다.
법안法眼은 진리의 눈이요, 진리를 보는 눈이다. 개구리를 보면서 개구리를 통하여 진리는 본다. 우주의 이치를 본다. 사람을 보면서 사람을 통하여 존재의 법(길)을 본다. 이 말은 공空을 본다는 말과 같다. 제법諸法이 모두 공이기 때문이다. “제법이 공임을 깨닫는 것(了諸法空)”을 법안이라고 했다.(顔丙)
불안佛眼은 부처의 눈이다. “성性을 밝게 꿰뚫어 보아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을 영원히 없애는 것(見性明徵, 能所永除)을 이름하여 부처님 눈이라고 한다.”(六祖) 보는 자와 보이는 자를 없앤다는 말은, 내가 꽃을 볼 때 나도 없고 꽃도 없다는 말이다. 다만 봄seeing이라는 의식意識이 있을 뿐이다. 그것을 ‘마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이 부처의 눈을 얻으면 모든 것에서 부처만 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천상천하에 부처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범부가 다섯 가지 눈을 갖추고 있으나 마음이 어둠으로 덮여 있어서 스스로 보지를 못한다. 어두운 마음과 헛딘 생각만 없애면 예장翳障(그늘과 장애)을 멸하여 다섯 눈이 밝게 떠질 것이다.”(李文會)
여래에게는 다섯 눈이 있고 우리한테는 한 상이 있을 뿐이나 / 如來有五眼 張三秖一雙
흑백을 분간하고 청황을 가려 보기는 일반이로다. / 一般分皁白 的的別靑黃
둘 사이에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오뉴월 땡볕에 눈서리렷다. / 其間些子爻訛處 六月炎天下雪霜 一川禪師
오뉴월 땡볕에 눈이 내리면 어찌 되겠는가? 내리면서 자취없이 사라진다. 중생의 눈은 잔상殘像이 남아 있어서 눈앞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지만, 부처님의 눈은 보면서 자취가 사라져 언제나 맑고 그래서 무엇을 보아도 그 참모습을 본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요한복음 9:39)이었다.
우리가 그의 도움을 받아 무엇을 제대로 보고자 한다면 먼저 우리 자신이 ‘못 보는 자’임을 고백해야 한다. 내가 스스로 본다고 말하면, 바로 그것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므로, 우선 그 눈부터 멀어야 한다.
번뇌가 없으면 열반이 없다. 우리가 어둠 속에 있지 않고서야 어찌 밝은 세상으로 나갈 것인가? 중생의 어리석음을 원망할 게 아니라 그것을 고마운 발판으로 삼을 일이다. 아아, 맑은 눈으로 보고 지고, 보고 지고! 아침에 그 눈을 뜨면 저녁에 숨이 져도 좋으리.
미국 남부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떤 사람이 큰 목화밭을 갖고 있었다. 그는 그 마을에서 제일 큰 부자였다. 그에게는 노예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 신앙이 좋은 한 노예가 있었다. 그는 고달픈 노예생활에도 불구하고 늘 긍정적이며 즐거운 표정을 지으면서 살았다. 그래서 주인이 이 노예에게 별명 하나를 지어주었다. 그의 이름이 모세 였기에 ‘모세 목사’라고 불렀다.
어느 날 아침 주인이 보니 모세 목사가 안색이 좋지 못했다. 주인이 노예에게 물었다.“모세 목사, 안색이 좋지 않은데 어디 아픈가?”
모세 목사가 주인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사실은 어제 밤에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께서 ‘내일 이 마을에서 제일 큰 부자가 죽을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후 쯤 되었는데 다른 노예가 급하게 와서 말했다. “주인님, 모세 목사가 죽었습니다.”
누가 부자입니까? 토마스 J. 스탠리 라는 부자 연구가에 따르면 부자란 “고도의 소비성향 생활 방식보다는 증식 자산을 소유하는데 훨씬 더 큰 기쁨을 얻는 사람들”로 정의 하였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자기 몫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탈무드에서는 “자기 운명에 만족할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부자는 무엇을 갖고 싶을 때 가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돈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진정한 부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많이 소유한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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