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해방'의 달]
'해방'은 구속이나 억압에서 놓여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민족사적으로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으로 고통을 받기도 하였습니다만 사회 인권의 측면에서도 여전히 우리를 억누르고 원치 않는 일을 강요하는 관습과 제도가 많습니다. 다양한 억압으로부터 놓여 하나님 자녀의 존엄을 누리며 살게 하십시오.
■ 알립니다!
1. 오늘은 성령강림 후 제7주일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명 평화의 길을 걷는 삶을 사시기를 당부합니다.
2. 수도권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되고 있어 지역감염 예방을 위한 노력에 교회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예배 참여시 체온 측정과 손 소독제 사용, 마스크 착용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정부가 종교시설에 대한 방역강화 조치를 시행하여 부득이하게 당분간 오전 10시에 예배를 드리며 공동식사와 성만찬을 하지 않겠습니다.
4. 오늘 예배 후에는 추후 온라인 예배를 드리게 되는 상황을 대비한 프로그램 활용법 학습을 하겠습니다. 적극 참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5. 교우들과 가정의 행복과 평화, 건강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 다음주일(7월 26일 . 성령강림 후 제8주일) 예배위원
인도 및 설교 : 이관택 목사 / 기도 : 함옥분 장로
봉헌위원 : 임미화 집사 / 성찬보좌 : / 안내 : 함옥분 장로

목회서신
교회를 사임한 해방신학자 목사
제가 일을 도우면서 함께 가담하고 있는 '한국신학연구소'라는 집단(?)이 있습니다. 이 집단은 감리교신학대학교 내의 불온한 교수들이 모여 만든 신학연구소입니다. 90년대 중반 포스트모던 신학 논쟁으로 교계를 떠들썩하게 했다가 감리교 종교재판에서 출교를 당한 홍정수 박사와 그 동조자들(김준우 박사, 한인철 박사 등)이 만들었던 '세계신학연구소'의 후신으로 현재는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학문적 성과들을 번역, 연구하고 소개하는 일을 중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소는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첫 번째 바울의 복음',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 등 주옥같은 원서들을 번역하는 귀중한 사역으로 개혁적 기독교 지성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지구 온난화와 온실가스 배출의 환경문제와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관련된 책도 꾸준하게 번역해내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기독교연구소의 기획실장이라는 (이름만의) 직책으로 예수목회세미나 등 각종 행사와 홍보 및 홈페이지 운영의 일을 돕고 있지요.
그동안 소장을 맡아 오셨던 김준우 교수님(제가 유일하게 은사로 생각하는 분입니다)이 사임하시고 홍인식 박사님(박사이지만 현실교회 목회도 하시는)이 몇 년 전 신임 소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홍인식 박사님은 남미에서 목회와 공부를 하신 해방신학 전문가이신데 한국에 들어와 목회와 강의를 병행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대학 다니면서 빈민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편에 당파적으로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하는 해방신학에 관심 갖고 꽤 열심히 공부했던 적이 있어 홍 박사님께 괜한 친근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 며칠 페이스북을 통해 보니 홍인식 목사님(여기부터는 목사라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이 교회를 사임하셨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홍 목사님은 보수적인 지역으로 알려진 순천의 통합측 장로교회인 순천중앙교회에 2016년에 청빙되셨습니다. (당연히 보수적인! 순천의!) 대형교회인데 어떻게 (대형교회의 생리와는 정 반대인) 해방신학자를 담임목사로 모셨을까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개혁적 목회자가 대형교회에서 목회를 하게 되었다니 좋은 실험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요. 그런데 불과 5년 만에 교회를 사임하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홍 목사님은 왜, 어쩌다, 무슨 일로 교회를 사임하게 되었는지 자세히는 밝히지 않으셨습니다. 맡는 교회마다 대개 5년 정도 하다가 임기를 마치게 되었다며 목사님은 자신의 이마에는 '해방신학과 5년짜리'라고 쓰여 있다고 합니다. 왜 교회를 떠나게 되셨을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개혁적인 신학사상과 이념을 가진 목회자를, 보수적인 신앙이 구원의 보증수표라고 믿는 대형교회가 환영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동대문의 보수적인 재건측(신사참배의 죄를 지은 교회는 불결하니 새로 지어야 한다는 교리를 가짐) 성터교회에서 목회하시던, 개혁적 기독교 인터넷 언론 뉴스앤조이 이사장 방인성 목사님이 해외여행 중에 해고 이메일을 받고 교회를 떠났다는 이야기도 기억이 납니다.
개혁적인 목회자와 보수적인 대형교회가 조화를 이루는 또 한 번의 실험이 이렇게 끝난 게 참 안타깝습니다. 아울러 예수, 예수가 원했던 세상과는 정 반대로 치닫는 오늘날의 교회가 안쓰럽습니다. 교회는 지금 차별금지법 제정에 이를 악물고 반대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미국 국방부가 주독미군 감축을 공식화하는 과정 중에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옵션을 제시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미국관리를 인용하여 보도하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였으나 부정적 입장을 보이자 3만5천 명 규모의 주독미군을 1만여 명 감축하겠다고 밝히며 아울러 방위비 증액에 부정적인 한국도 함께 논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과 대치 중인 한국에서 현재 2만8천 명 수준인 주한미군의 감축은 안보상 매우 민감한 주제입니다만 전세계 분쟁 지역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은 곳이 없다는 사실은 미군 주둔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합니다. 주한미군이 안보의 균형자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위기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볼 수도 있으며 사실 주일미군과 더불어 중국을 겨냥한 군사력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최근의 과도한 방위비 증액 요구, 코로나 방역에 비협조, 미군 범죄, 대북 육로 통행 반대 등을 고려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하며 한반도의 평화을 위한 새로운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감축 논의는 필요합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에서 해방군처럼 이 땅에 들어온 주한미군이 이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의 주인처럼 군림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군사력과 무기를 앞세워 보호의 명목으로 불균형한 관계를 강요하고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키는 주한미군이 이제는 이 땅을 떠나고 우리 스스로 서게 도우소서.

(37) 재앙이 드러낸 부조리 앞의 학교
1
그때부터 페스트는 우리들 전체의 관심사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여태까지는 그 이상한 사건들이 빚어놓은 놀라움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각자가 자기의 직장에서 그럭저럭 일을 보고 있다. 그러나 시가 폐쇄되자 그들은 모두(필자 자신도 그러했지만) 독안에 든 쥐가 되었으며, 거기서 그냥 견딜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가령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같은개인적인 감정이 처음 몇 주일째부터 갑자기 모든 사람들의 감정이 되었고, 공포와 더불어 그 오랜 격리생활의 중요한 고통거리가 되었다.
- 카뮈, 「페스트」, 『페스트·이방인』, 방곤 옮김 (범우사, 1998), 69.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년~1960년)는 프랑스의 작가, 저널리스트 그리고 철학자입니다. 『페스트』는 1947년 발표된 장편소설로, ‘페스트’라는 전염병, 그리고 이 비극적이고 집단적인 재앙을 마주한 인간, ‘인간 의지’의 저항을 그린 소설입니다.
2
학교에 두 가지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는 여전한 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안전입니다.
학교 교육은 거칠게 아이들에게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발달의 제공과 발달의 상향 평균화를 목적으로 합니다. 학교에 투자된 자원은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필요를 채워 주어야 합니다. 변화를 만난 학교는 이를 위해 등교 대면 수업뿐만 아니라 온라인 대면 수업, 온라인 과제 및 질의 응답 등의 방법으로 수업하고 있습니다. 교과뿐 아니라 동아리 활동, 토론모임, 논술대화 등 비교과 영역도 가능한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최대한 제공하고 있습니다. 공교육으로서의 학교의 시작이 그렇듯이 여전히 아이들 개인의 자기발달, 자아실현과 사회의 교육에서 발생하는 교육 불평등과 이로 인한 계층 간 불평등 해소는 학교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그리고 안전입니다. 안전이 고려되는 가운데 이러한 기능이 온전히 실현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의 경우, 3학년과 1, 2학년 격주 등교로 학교의 과밀화를 줄이고 있습니다. 발열 점검과 마스크 착용 지도는 등교 시, 수업 실시 전, 식사 전 선생님과 함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식사 시간의 경우 식탁에는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고 학년 별 식사 시간 차이를 두어 아이들의 접촉을 최고화하고 있습니다. 쉬는 시간 화장실 사용도 홀수 반은 앞 5분, 짝수 반은 뒤 5분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좀 과도해 보일 때도 있지만 학교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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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입시입니다. 이상적 학교 목적에 따른 운영과 안전의 고려 뒤 불편한 부분입니다. 학교는 입시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1, 2학년 격주 등교에도 불구하고 3학년만은 매주 등교합니다. 수시 입시 대비, 각종 교내 시상을 목적으로 하는 대회가 무리하게 진행됩니다. 대학 진학 지도를 이유로 집합 입시 강연이 실시됩니다. 그리고 방과 후 학습까지.
그리고 사교육입니다. 개학 연기, 온라인 수업 등으로 오히려 사교육 시장이 활기입니다. 과거 학교 방과 후 수업 폐지 요청이 있었습니다. 이 역시 사교육을 위해서였습니다. 교육 결손을 말하는 때 사교육으로 인한 교육 격차 심화가 제기됩니다.

아니, 너무 당연하지만 교육은 입시이고 다시 노동시장 구조입니다. 학교 교육의 위기가 입시라면 입시의 문제는 노동시장의 문제입니다.
2016년 기준 한국 성인(25∼64세)의 학력별 임금을 살펴보면 고교 졸업자의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전문대 졸업자 임금은 116, 대학 졸업자는 149, 대학원 졸업자는 198이었다.
- 고유선, 「학력 따른 임금격차 커졌다…고졸-대졸 임금차 OECD평균 상회」,
『연합신문』 (2018.9.11.)
이런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덮고 입시 그리고 학교 교육을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학교 교육의 위기, 불평등 심화, 안전 문제의 시작입니다. 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도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이유도 학교 또는 사교육에서 안전을 위협 받는 이유도 이와 함께 고민되어야 합니다.
오늘 위기에 답하지 못하는 자본주의 모순 속, 기본소득과 같은 사회구조 재편 논의에 학교가 들어간다면 노동시장의 재편은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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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를 만난 오랑시의 시민들은 보건대를 조직합니다. 이 보건대의 시민들은 의지적으로 페스트 앞의 무기력과 페스트가 보여준 사회구조의 부조리에 당당히 맞서게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병이 그렇죠.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불행 중에서 진실인 것은 페스트에서도 역시 진실입니다. 허기야 몇몇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구실도 할테죠. 그러나 병이 가져오는 비참과 고통을 볼 때, 페스트에 대해서 체념한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거나 눈먼 사람이거나 비겁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 카뮈, 「페스트」, 126.
학교 교육의 부조리가 드러나는 오늘, 우리를 향한 「페스트」 속 인물 ‘리외’의 충고입니다.
수보리여, 비컨대 사람 몸이 큰 것과 같다. 수보리가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사람 몸이 크다고 하셨지만 튼 몸이 아니요 큰 몸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須菩提여. 譬如人身長大니라. 須菩提가 言하기를 世尊이시여 如來가 說人身長大나 卽爲非大身이요 是名大身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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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몸이 과연 큰가? 개미한테 견주면 크다. 그러나 코끼리한테 견주면 크지 않다. 사람 몸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사람의 몸을 눈에 보이는 색신色身으로만 볼 때 그러하다. 사람의 몸은 색신이면서 동시에 법신法身이다. 법신에는 크기가 없다. 그래서 크다고 말하는 것이다.
“색신에는 상相이 있다. 그래서 튼 몸이 아니다. 법신에는 상이 없다. 광대무변廣大無邊이다. 그래서 큰 몸이라고 부른다.”(李文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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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야, 보살이 또한 이와 같다. 그가 만약에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을 멸도하리라고 한다면 그를 보살이라고 부를 수 없으니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여, 실로 아무 법이 없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처가 설한 모든 법이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 목숨도 없다.
須菩提여, 菩薩이 亦如是라. 若作是言하기를 我當滅度無量衆生이면 卽不名菩薩이니 何以故오, 須菩提여, 實無有法을 名爲菩薩이니라. 是故로 佛說一切法이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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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에 나·남·중생·목숨 따위가 없는 까닭은 그의 가르친 바 내용 자체가 그런 것들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생이라고 하는 것이 본디 없거늘 어찌 중생을 깨우치는 자가 있겠느냐?”
(王日休)
내가 중생을 구원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자기와 중생을 떨어뜨려 놓는다. 그러므로 그는 보살이 될 수 없다. 보살이란 자기와 남이 하나님을 몸으로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당신 몸에 손을 대어 병 고침을 받은 자들에게 내가 너를 고쳤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네 믿음이 너를 고쳤다”고 하셨다.

김씨는 사랑하는 아내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사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작은 회사에 다니는 김씨는 성실하게 일하고 검소하게 산 덕분에 느즈막이 작은 집 한 채를 마련할 수 있었고, 가족들과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오순도순 행복해 했다.
어느 날 김씨는 밀린 회사 업무를 처리하느라 밤늦게야 집으로 향했다. 골목 어귀를 지나갈 때 어떤 사람이 담벼락에 비스듬히 누워 신음하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홀낏 쳐다보고 무심히 지나쳤다.
집에 들어오니 아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과외 공부를 저녁 늦게까지 하는 아들이라 그 날은 좀 늦겠지 하고 큰 염려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12시가 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김씨는 그제서야 부랴부랴 아들의 친구, 친척집 등에 연락을 하였다. 아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밤을 하얗게 새운 김씨와 부인은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아들의 거처를 알 수 있었다. 어떤 병원에서 아들이 응급실에 있으니 빨리 오라는 연락을 왔던 것이다. 너무 큰 상처라 살 가망이 없어 보였다. 아들은 과외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다 그만 뺑소니 자동차에 어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제서야 김씨는 전날 밤 담벼락에 기대어 신음하던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 길을 지나가던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에 오랜 시간 방치되었다가 어느 노인의 도움으로 겨우 병원에 실려온 것이다. “조금만 더 일찍 병원으로 데려왔으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을 텐데..” 의사의 말에 김씨는 주먹으로 눈물만 훔칠 뿐이었다.
기독교의 가장 큰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바로 무관심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관심이 필요한 가난한 자, 고난 중에 있는 이웃들이 많습니다. 관념적인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지 말고 행동하는 레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나 악인은 알아줄 지식이 없느니라”(잠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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