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립니다!
1. 오늘은 강림절 제3주일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강림절기의 의미를 새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코로나19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하여 예배당에서의 대면예배와 줌 온라인 비대면 예배를 병행하여 드리고 있습니다.
3. 올해 겨자씨헌금 집행을 위해 가급적 이번주일까지 12월분 헌금을 마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하시는 후원 기관이 있으시면 알려주십시오.
4. 교회 달력을 제작하였습니다. 각 가정에 개별적으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5. 교우와 가정의 건강과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 다음주일(12월 20일, 강림절 제4주일) 예배위원
인도 및 설교 : 방현섭 목사 / 기도 : 민지애 사모
봉헌위원 : 재정부장 / 성찬보좌 : 안주영 성도 / 안내 : 임미화 집사
목회서신
처 할머니께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지난주 초에 아내 정지수 집사의 할머니께서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으시고 치매기가 있으셔서 몇 년 동안 요양원 생활을 하셨는데 결국 수요일 밤, 향년 94세로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처음에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은 아내가 갑자기 화장실로 뛰쳐들어갔다가 잠시 후 나온 얼굴을 보니 펑펑 울었던 것 같습니다. 매년 한 번씩은 요양원에 찾아뵙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얼굴도 뵙지 못한 채로 그렇게 떠나셨습니다. 장교 생활을 하시느라 가족과 떨어져 사신 장인 내외 대신 할머니의 손에 자랐던 기억이 있는 아내는 할머니의 빈자리가 새삼 크게 다가왔나 봅니다.
장인은 삼 형제이신데 외국에 살고, 군대에 있거나 코로나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자녀손을 제외하고 모두 열네 명의 가족이 모였습니다. 미국에 사시던 둘째 작은 아버님은 다른 일로 한국에 들어오셔서 자가격리를 하던 중에 부고를 받으셔서 우연인지 필연인지 어머니의 장례식에 함께하실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장인께서 일부러 부고하지 않으셔서 빈소는 많이 한산했습니다. 장인의 교계 평판을 봤을 때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매우 분주했을 것입니다. 한산한 덕에 가족들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할머니를 회고할 수 있었습니다.
평양 부잣집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손재주가 좋으셨고 북쪽 사람답게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고 하며 네 살 된 맏아들(장인)을 업고, 돌아가실 때 계시던 요양원 인근의 고량포구(제 큰아들 방정빈 청년이 근무하는 부대 앞입니다)를 통해 피란하셔서 남쪽에서 가난하게 사시며 갖은 고생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종로 화신 백화점 앞에서 좌판 장사를 하시던 중 우연히 따로 피란 내려오신 남편을 만나 다시 합치셨다니 인생이 한 편의 드라마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한국 현대사의 가장 격동적인 시대를 살아오셨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통해 뒤늦게 할머니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입관예배를 집례하였습니다. 염을 마치고 수의를 입으신 할머니의 모습이 평온해 보여 가족들이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는 관에 들어가 봉인을 하면 깜깜한 관 안에서 완전히 세상과 단절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다시 만날 부활의 약속이 있고 고인과의 추억들이 오히려 더욱 새록새록 가족들의 마음에 부활하여 남을 것이니 영원히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고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후손들을 향한 고인의 당부의 마음이 잘 전해지도록 열심히 살자고 격려하였습니다.
저도 올해 봄에 큰아버지를 떠나보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은 항상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삶과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우리의 삶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죽음 앞에서도 여전히 우리가 살아갈 힘을 얻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저는 죽음이 우리를 더욱 잘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고, 살아 있는 동안 앞만 보고 달릴 것이 아니라 이웃과 가족을 보며 여유 있게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별 후에 슬퍼하지 말고 살아 있을 때 서로에 대해 관심과 공감으로 교제해야 하겠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이런 깨달음을 망각하겠지만 지금은 매순간의 관계에 집중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봅니다.
이관택 목사
카메라를 들고 만난 사람들
지난 화요일 아르바이트 영상 촬영을 위해 개그맨 김태균씨의 스튜디오에 방문했습니다. 제가 요즘 제작하고 있는 영상은 <서울에너지복지시민기금>이라는 단체의 행사영상인데 마침 개그맨 김태균씨가 그 단체 홍보대사여서 인터뷰 촬영차 방문한 것입니다. 스튜디오는 상암동의 한 지하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골목길 끝에 있어 찾아가는 것 조차 쉽지 않았고 더군다나 지하에 있어서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실내가 굉장히 밝았고, 인테리어를 잘해놨더군요. 한 쪽에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개인 컬렉션으로 꾸며져 있었고, 다른 한 쪽은 개인방송을 하기 위한 장비들이 방송국처럼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곳에서 김태균씨는 개인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나 봅니다. 직접 만난 김태균씨는 생각보다 키가 훤칠했고 생각했던 것만큼 친절했습니다. 처음만났을 때 조금 피곤해 보였는데 확실히 프로 방송인이라서 그런지 카메라 슛이 들어가자 표정이 완전히 달라지더군요.
저는 솔직히 알바의 개념으로 접근하다보니까 지난 3주간 영상을 만들면서도 <서울에너지복지시민기금>이라는 단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날 김태균씨를 만나고 대화를 하면서 이 단체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울에너지복지시민기금>은 서울에 있는 에너지 빈곤층(경제적인 사정으로 인해 여름과 겨울, 에너지가 부족하여 삶이 힘든 사람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 등 생태환경과 관련한 여러 문제들이 속출하고 있는 지금의 시대 속에서 보이지 않는 에너지 빈곤층을 찾아내고, 시민 및 기업과 연결하여 지원하는 일은 정말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 의미 있는 일이고 그 일에 나 자신이 영상작업으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 일인데 김태균씨를 만나고서야 그 사실은 겨우 깨닫게 되었네요. 돌아오는 길 내내 속에서 우러나오는 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이 얼마나 의미 있고 감사한 것인지에 대해 좀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어진 일을 처리하며 하루하루를 무의식적으로 흘려보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걸음을 걷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실 일들을 간구하고, 또 주어진 사건의 의미를 깊이 있게 묵상하다보면 삶의 차원이 달라질 텐데 아무리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를 수십 년씩 다녀도 그것이 그리 쉽지 않은가 봅니다. 땅의 시간을 살아도 하늘의 시간을 누려야 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특권인데, 어쩌면 그 귀한 복을 망각하면서 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더욱 고단하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난 4년간 다큐멘터리 제작 및 영상작업 활동을 해왔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남들이 좀처럼 관심 갖지 않는 현장에 가고, 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바로 제게 주어진 역할이었습니다. 지난 4년을 돌아보니 보람있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계획했던 것처럼 일이 잘 진행되지 않아서 답답해했던 내 자신 또한 발견하게 됩니다. 벌써 마무리 지었어야 할 비전향장기수 다큐멘터리를 아직도 부여잡고 끙끙거리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죠.
하지만 제가 카메라를 들고서 향했던 현장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더러는 개그맨 김태균씨처럼 유명인도 만나게 되지만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이 사회의 배제와 차별 가운데 있으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보여주는 진실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지난 4년간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평소에 동경했던 다큐멘터리 감독들. 존경하는 故박종필 감독님을 비롯하여 김동원(송환), 김일란(두개의 문), 김환태(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문정현(할매꽃) 등 수많은 영화감독들과 영화인들을 만났고, 세월호 의인이었던 故김관홍 잠수사의 가족과 동료 잠수사님들, 유경근 전 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국회의원 박주민 의원, 유명자 전 재능노조지부장, 박경석 노들야학 교장과 만났습니다.
특히 수많은 시간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익숙치 않은 카메라 앞에서 고백해주시고, 자신의 삶을 속속들이 보여주신 비전향장기수 안학섭, 양희철, 김영승 선생님께 감사함과 동시에 죄송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쉽지 않은 고통의 기억들을 꺼내는 과정이 정말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고령에도 불구하고 기억의 흔적들을 하나하나씩 되짚어서 정성스레 말씀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용산역 텐트촌에서 만난 홈리스 형들. 그 중에 2년 넘게 깊은 관계를 맺으며 우리의 작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해주신 홍종수(가명)님, 장애인으로 평생 시설에 갇혀 살다가 탈시설하여 드디어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하기 전 함께 제주여행을 갔던 김진석님과 유호경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제 카메라를 내려놓고 라오스에 가서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있는 제 삶의 과정 속에도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귀한 일들을 맡겨 주시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지나온 시간들이 소중한 만큼 기대감과 설레임을 가지고 다가올 시간들을 맞이해야겠지요. 그 가운데 늘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내가 되길 소망해봅니다. 그리고 좋은만남 공동체의 교우님들을 비롯하여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주신 모든 인연에 감사하며 2020년 한해를 돌아봅니다. 올 한해도 감당할 수 없는 은혜가 함께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새로운 시간, 새로운 세상에서도 부디 우리 모두가 땅의 시간이 아니라 하늘의 시간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시길 기도합니다.
수보리여, 하나로 모아진 모양은 그것을 말로 할 수 없는 것인데 다만 범부들이 그 일에 욕심을 내어 집착하는 것이다.
須菩提여. 一合相者는 是不可說이거늘 但凡夫之人이 貪者其事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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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깨달음을 얻겠다는 것은 부분이 전체를 얻겠다는 것이다. 내가 하느님을 뵙겠다는 것은 열매가 나무를 보겠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에 나의 눈길이 붙잡혀 있는 한, 나는 전체를 뵙지 못한다.
하나로 모아진 모양(一合相)이라니? 무엇이 하나로 모아진다는 말인가? 그 하나 속에 들어 있는 내가 어떻게 그 하나를 볼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할수록 머리만 어지럽다.
그만두자!
다만 어느 것에도 무엇에도 욕심을 내어 집착하지 말기로 하자. 욕심을 내면 범부라 했으니 집착을 버리면 절로 보살 아니겠는가?
◆
수보리여. 만약에 사람이 말하기를, 부처가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을 설했다고 했다면,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그 사람이 내 말의 뜻을 알았다고 보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세존께서 설하신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 아니라 그 이름이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기 때문입니다.
須菩提여. 若人이 言하기를 佛이 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 하면 須菩提여 於意云何오. 是人이 解我所說義不아? 不也니이다, 世尊이시여. 是人은 不解如來所說義니이다. 何以故오, 世尊이 說하신 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요 是名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니이다.
여래가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을 설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설한 바 없다는 말은 무엇인가? 말(言語)에 붙잡히지 말라는 얘기다. 말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 보는 즉시 떠나야 한다.
이어지는 뒷말로 앞말을 지워 버리는 스승의 가르침이 참으로 상쾌하다!
어느 날 한 남자가 길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한 나무 아래서 쉬게 되었다.
배가 몹시 고팠다.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자 중얼거렸다. “불고기가 먹고 싶다.” 그러자 놀랍게도 즉시 불고기 상이 차려졌다. 맛있게 먹었다.
피곤하고 배부르니까 잠이 솔솔 오기 시작하였다. “푹신한 잠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순간 놀랍게도 침대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상한 일이군.” 그는 침대에 누웠다. 편안하였다.
조금 시간이 지났다. “아름다운 여자가 다리를 주물러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자 말자 아름다운 여자들이 나타나서 다리를 주물러 주는 것이었다. 남자는 너무나 행복했다.
그런데 갑자기 두려움이 생겼다. “불행이 갑자기 들이닥쳐 지금의 행복을 빼앗아 가면 어떡하지? 이렇게 누워있을 때 갑자기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며 다가오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이 들자 말자 호랑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목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행복과 불행은 생각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좋은 생각은 행복을 가져다 전령입니다. 오늘은 좋은 생각으로 하루를 여시기 바랍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기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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