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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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잘 먹고 잘 살자!

성서본문 ; 누가복음 12,15-21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 16 그리고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 소출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고 궁리하였다. 18 그는 혼자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 19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20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21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이와 같다."

 

들어가며 : 오늘은 우리교회가 농촌선교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원래 농촌선교주일은 추석이 지난 첫 번 째 주일에 지키기로 하였으나 우리교회는 여건이 여의치 않아서 이제야 농촌선교주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농촌선교주일에 관한 감리교회 홈페이지 설명을 보면 ‘제27회 총회(2006년 10월 27일)에서 도시교회의 모태인 농촌교회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우리의 먹거리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 상생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도록 추석이후 첫 주일을 농촌선교주일로 지키기로 하였다’고 설명합니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뭔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튼 농촌선교주일은 그런 마음으로 지내는 주일입니다.

어 쨌거나 오늘 이 귀한 기회에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이 결실하게 된 이곳에 와서 우리 농촌의 이웃을 돌아보고 우리 생명을 위해 땀 흘리는 모든 일손들과 그 자신을 우리의 먹거리로 내어준 자연생명체에게 감사하는 기회를 갖게 된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큰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들어가서 :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지면서 경치가 급격하게 좋아졌습니다. 지난 추석 즈음에 부모님 뵈러 왔다가 설악산 쪽으로 넘어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이미 단풍이 빨갛게 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는 길에도 조금씩 보았지만 단풍이 절정입니다. 아무래도 우리 도시 사람들 눈에는 고개를 숙여 가는 알곡이나 익어가는 열매들, 채소들보다는 눈에 쉬운 경치들이 더 밟히게 되나봅니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도시라는 공간과 농촌이라는 공간 사이의 간극과 괴리가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러나 사실 농촌과 도시는 하나의 끈으로 엮여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도시에 살건 농촌에 살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자연에서 얻어진 각종 곡물과 채소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우리나라가 아무리 자동차 산업이 발달했다고 하고 반도체 산업이 호황이라고 한들 자동차를 씹어 먹고 반도체를 삼키면서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쨌건 자연으로부터 얻은 농산물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나라는 농업을 경시하고 공업만을 숭배하니 그 미래가 참으로 걱정입니다. 이미 세계 각국은 식량을 무기화하는 단계로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농업이 전멸하면 자동차 한 대 값으로 쌀 한 가마를 사들여야 하는 현실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자동차는 안 타고 다녀도, 컴퓨터는 안 두들겨도 살 수 있지만 밥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나라에서는 농촌이 노인들이나 살 수 있을만한 환경을 유지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발붙여 살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제 앞으로 20년 후만 생각해도 현실은 아찔합니다.

농 촌이라는 곳이 사실상 우리에게 아주 골치 아픈 곳이면서도 또 유효적절한 곳이 돼버린 것 같습니다. 농촌은 더 이상 수익이 날 수 없는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유발하는 곳입니다. 3D 업종이 돼버려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이 돼버렸습니다. 추곡수매 등등으로 쏟아 붓는 국가재정이 엄청납니다. 그러니 사실 골칫덩이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급속하게 가속화되고 있는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지역입니다. 특별하게 추가되는 지출 없이 그냥 노인들이 거기에서 그렇게 살다 늙어죽어가주니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수지맞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도시에 사는 젊은 세대들이 직장 등의 문제로 노인부모를 모실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노인들이 시골에 묻혀 살아주시니 그것도 또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게다가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들이 명절이 되면 잠시 공기 좋고 물 맑은 시골에 들러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으니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속편하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만!

이 미 많은 과학잡지에 먹거리에 따른 인간의 폭력성 혹은 공격성에 대한 임상연구가 실렸습니다.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진 먹거리를 먹으니 사람들의 삶도 죽음의 그늘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산품화 된 음식도 문제입니다.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뿌려대는 농약이나 비료들이 인체에 유익할 리 없습니다. 그런데 농약을 살포하면 가장 큰 손해를 입는 것이 누구일까요? 바로 농민 그 자신입니다. 그 독한 것을 겨우 마스크 하나로 막아내면서 하루 종일 뿌려대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그러니 사람에게 생명력을 제공해야 할 농산물이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를 죽음의 그늘 아래 머물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찌됐건 분명한 것은 농촌은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농촌이 죽어가고 있으므로 우리 모두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것은 농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것이고 모두가 사는 것이지요.

80 년대 민중신학을 연구하던 많은 신학자들은 예수님이 목수가 아니라 농부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수로만은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도 있겠고 예수님이 태어난 지역과 갈릴리 지역이 농촌지역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농업과 관련된 비유를 많이 들어 농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오늘 말씀도 농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통해 비유로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유산상속에 대한 문제로 요청을 해온 사람에게 예수님은 뜬금없이 농사를 잘 지은 부자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2009년 도시문화의 한 가운데 사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많 은 소출을 거둔 부자가 그 소출을 쌓아둘 곳이 없어 새 곳간을 짓고 거기에 쌓아둡니다. 그리고는 내가 많은 것을 쌓아두었으니 이제부터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그 즉시로 불러가신다면 어찌 되겠느냐고 하십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이를 악물고 살 때다. 그러니 좀 못 먹고 못 살더라도 나중에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그런 착각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젊었을 때는 인생을 즐길만한 여유도 없고 돈도 없어 그저 허리가 휘어져라 일만 했는데 이제 돈도 쓸 만큼 여유도 생겼는데 정작 인생을 즐길 건강이 없다고 아쉽다고 말입니다. 결국 무엇을 위해 그처럼 젊은 날을 살아왔는가 하는 후회만 남게 되겠지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꿈이요 목표일 것입니다. 물론 잘 먹는다는 말이 비싼 것, 좋은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잘 먹어야 잘 사는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살아라’가 욕처럼 쓰이기도 하지만 부모가 멀리 떠나 있는 자식에게 정감과 걱정을 듬뿍 담아 하는 말이기도 할 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에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느냐고 걱정스레 묻고 계십니다. 나중에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지 말고 지금 당장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부모로써 자식에게 바라는 가장 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 리는 오늘날 먹거리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가장 싼 것을 최선의 선택으로 여깁니다.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먹을 것을 줄입니다. 물론 좋은 일입니다만 이왕이면 우리가 잘 먹을 수 있도록 애쓰면 좋겠습니다. 좋은 것, 건강하게 하는 것, 생명력 있게 하는 먹거리를 지금 잘 먹고 있다면 잘 사는 것이겠지요. 지금 당장 우리의 생명력을 충만하게 할 수 있는 먹거리를 먹음으로써 충만한 인생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농촌이 건강해야 합니다. 노인들이 모여 마지 못해 농사나 지으면서 근근이 살아가는 풍토, 농약을 치지 않으면 잡초들을 견뎌내지 못하는 열악한 노동구조, 당장이라도 FTA 때문에 때려 치우고 싶지만 눈치 보면서 어쩌지는 못하지만 서서히 말려 죽이는 그런 정치판에서 농촌은 결코 건강하지 못하고 그 생산물을 먹는 우리도 결코 건강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먹 거리에 관해서는 지금 당장 건강한 먹거리, 우리의 생명력을 충만하게 하지 못하는 먹거리를 먹지 못한다면 미래도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 대충 먹고 나중에 여건 좋아지고 상황 좋아지면 그때가서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이미 주님께서 부르시려고 마음 먹은 부자처럼 늦어버린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잘 먹고 잘 살아야 할 때입니다.

 

나가며 : 잘 먹고 잘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나의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과 나, 또 우리의 부모님의 부모님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잘 먹어야 잘 삽니다. 잘 먹어야 우리가 평화롭게 살고 생명력을 누리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농촌이 살아야 합니다. 농촌을 살리는 것은 직접적인 우리의 행동과 관심, 실천을 필요로 합니다. 과자나 냉동식품 한 번 간편하게 사먹을 것 참고 건강한 먹거리를 먹을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우리 농민들이 정성스럽게 가꾼 농산물을 잡수십시오. 그리고 이 땅의 농촌이 더 이상 황폐화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의 작은 정성을 모아 봅시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요 방법입니다. 농촌을 살리고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도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성도들에게 은혜가 넘칠 줄로 믿으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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